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 불교의식구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이다. 공양탑은 지금도 거대한 건축물의 모형이 많이 있듯이 당시에 있었거나 전해오는 목탑이나 석탑의 모형으로 탑에 넣거나 전각 내부에 전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의, 가사띠장식, 지팡이머리 장식은 주로 고승들의 위엄을 강조해 주던 생활용구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서유기에 손오공이 들고 다니던 여의봉과 삼장법사의 모습을 연상하면 그 용도가 쉽게 떠 오를 것 같다. 금강저는 라마교 영향을 받아서 사용되었던 밀교법구로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일반적인 불교의식구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공양탑, 청동소탑 (고려, 13~14세기). 청동으로 주조해서 만든 공양탑으로 황룡사 목탑같은 모습보다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목탑의 모습을 연상키는 형태로 보인다.
다향한 형태의 목탑이나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공양탑은 목탑이나 석탑을 재현한 소형 금속제탑으로, 사리와 함게 탑에 넣거나 전각 내부에 안치하엿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으로 주조하였으며 문과 창호, 난간과 기둥, 지붕과 마루 등 건축적 구조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고려시대 당시의 건축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철제 은입사 여의. 손오공의 여의봉과는 다른 모습으로 원래 여의의 모습이 이렇게 생겼던 것 같다.
손 모양을 본뜬 여의는 처음에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마음대로 긁을 수 있다하여 여의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이후 불교의 법회에서 설법을 하거나 강론을 할때 강사가 지녀서 위엄과 예법을 바르게 세우는 상징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길상과 복덕의 의미로 장심품으로도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가사띠 장식(고려, 12세기)과 지팡이머리장식 (고려, 12~13세기) 서역으로 경전을 구하러 먼길을 떠나던 삼장법사 일행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석장은 승려의 지팡이로 원래 수행자가 산이나 들을 거닐 때 독사나 독충을 쫒는 도구였다. 화려한 석장은 지체 높은 승려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한다. 석장 장식의 맨 위에 탑 모양이 있고, 고리 안의 앞뒷면에 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청동 금강저(고려). 원래 인도의 무기라고 하는데 상당히 강력한 느낌을 준다.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무기에서 유래한 형태로 번뇌를 깨드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밀교법구이다. 제석천이 지닌 상징물이기도 하다. 고려 후기에 중국 원과 교류하면서 유입된 라마교의 영향으로 이와 같은 밀교법구가 유행하였다. 양 끝의 뾰족하게 돌출한 부분의 갯수에 따라 독고저, 삼고저, 오고저로 나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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