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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태인 고현동향약과 무성서원, 관련 인사들

younghwan 2010. 2. 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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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 고현동 향약은 향음주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성서원을 비롯하여 많은 장소에서 향음주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약의 공동재산 및 문서를 보관하던 정소인 동각을 중심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향약이 유지되어 왔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곳에서 향약과 관련된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향약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무성서원 강당의 주련 

소송을 조정.결정한 문서

1860년대에 관행적으로 유지되어온 동각의 경제적 이익을 관에 의해 박탈당하였다가 다시 회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동각을 설립한 가문, 동각에 관련된 사람(심부름꾼 및 고지기) 그리고 동각의 실제 운영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무성서원의 역사 등을 기록한 책

무성서원과 관련된 역사와 서원의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향음 주례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어, 무성서원에서는 향음 주례를 시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무성서원 사당에 봉안된 최치원 초상화

향약과 향음주례가 시행된 곳
성종 6년 정극인이 고현동 안에서 향약.향음주례를 시행한 장소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세운 학당에서 시행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향약을 시행하면서, 향약 모임을 거행하는 장소가 정해졌다. 대체로 향약의 공동 재산 및 문서 등을 보관하는 장소, 즉 동각과 같은 곳에서 향약이 거행되었을 것이다. 한편, 무성서원에서도 향약 모임이 열리기도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무성서원에 향약 관련 내용의 주련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무성서원이 향약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외 고현동 선비들의 휴식처였던 송정, 유상대 등에서 향약 모임이 열렸을 가능성이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실록을 보관하던 상자와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구한 태인 선비의 기록인 '임계기사'

임진왜란 당시 태인 선비 안의.손홍록이 전주 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경기전 안에 모셔져 있던 태조 초상화를 옮겨 보존한 사실을 적은 기록이다. 그 결과 실록이 보존될 수 있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한일합병 후 일본국왕의 은사금을 거절하다 체포되고, 이후 일제에 저항하다 감옥에서 순절한 고현동 선비 춘우정 김영상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

 
무성서원 관련 각종 문서

용계서원 관련 각종 문서

고현동 일대의 유교 교육시설
세종 3년 태인현 치소에 관립 중등 교육기관인 향교가 설립되었다. 중종 때 현감 신잠은 고을 안에 5곳의 학당을 설치하여 교육을 장려하였다. 이 때 고현동에는 남학당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정극인이 세웠던 학당을 고쳐 세운 것이라 한다. 조선 중기 이후 고현동에서는 무성서원과 용계서원, 인근에는 남고 서원 등 사립 중등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태인에서 간행한 유학자들의 시를 모은 책 

한글가사가 있는 고현동 선비 성은 김경흠의 문집.

혼인 때 주고 받은 글

태인현 성황사 내 신상

왕실의 장수와 평안을 기원한 명찰


부인상, 동녀상, 동자상

호랑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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