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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의 국가의례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younghwan 2010. 11. 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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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에서 유교는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유교 사회에서 '예禮'는 사회질서와 국가의 권위를 규정짓는 사상적 기반이 되는 것으로 조선사회에서는 매우 중시되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예'를 구현하는국가적인 의례로서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의 5가지를 오례라 하고 법과 통치이념으로서 규정하였다. 길례는 종묘와 사직에 제를 올리는 것으로 가장 중시된 의례이며, 가례는 결혼 등의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하는 의식을, 빈례는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을, 군례는 군대의 의식과 예절을, 흉례는 국장을 포한 상 중에 행하는 의식을 말한다. 조선의 국가 의례는 법률적 성격을 갖는 성종 때의 '국조오례의'에 상세히 정의되어 있으며, 그 세부적인 절차까지 세밀하게 운용되었다.

 고궁박물관에는 조선의 오례에 대한 이해와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각종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종묘제례를 설명하기 위한 제기류를 비롯하여, 의례를 준비하기 위한 절차를 정의하거나 결과를 정리한 문서 등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궁궐에서 정리한 의식의 절차 중에는 궁녀들이 실무를 담당한 분야에서는 한글로 세밀하게 정리한 내용들이 있는데 글씨가 또렷하고 깨끗하게 잘 적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그 내용의 복잡함으로 인해서 세종이 창제한 한글이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없어지지 않고 보존.전승된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종묘 정전영녕전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실은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는데, 이 곳 고궁박물관에서 내부 신실 모형으로 그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0 종묘 신실의 구성
 -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종묘의 각 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건물안 1칸에 신주를 모셔두는 작은 방인 감실이 있다.
 - 감실중앙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신주장이 있다. 신주 위쪽은 건(작은수건)으로 덮여 있는데 왕은 백색건을,
   왕비는 청색건을 사용한다. 
 - 신주장 앞에는 발이 드리워져 있다.
 - 신주장 좌측에는 어제와 국조보감 등을 보관하는 책장이, 우측에는 어보를 보관하는 보장이 있다.
 - 신주장 옆에는 제례를 지낼 때 신주를 옮겨 모시는 신랍이 있다. 신랍 위에는 궤가 있으며 신주를 이 궤에 의지해 모신다.
 - 감실 앞에는 주렴과 노란 명주천으로 만든 휘장인 연장이 드리워져 있고, 감실 전면 위쪽에는 구름과 연꽃 조각으로
   장식된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 신실과 신살 사이에는 발을 내려 공간을 구분하며 신실 바닥에는 돗자리를 깐다.
 - 제례를 지낼 때에는 감실 앞에 제상 4개를 설치하고, 감실 앞쪽의 건을 바깥에 줄소상을 놓는다.
 - 신실 입구 양쪽에는 용선, 붕선, 용개, 붕개 등의 의궤를 세운다. <출처:고궁박물관>


종묘관원 근무 수칙을 적은 현판


종묘제례의 상차림 그림.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은 종묘제례의 절차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리고 아래에 의식의 절차를 상세하게 기록한 8폭 병풍으로 고종 때에 제작한 것이다. 6폭에 상차람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종묘제례 상차림 중 제상


종묘제례 상차림 중 준소상. 준소상은 제상에 올릴 술을 술잔에 따르는 예를 행하는 제기이다.


기타 제기

종묘제례
종묘제례는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놓은 종묘에 지내는 제사로, 사직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의례이다. 종묘제례는 봄, 여름, 가을, 납일 등 5대제를 비롯하여 설이나 추석 혹은 국가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 등에도 지냈다. 제례의 진행 절차를 보면, 먼저 신을 맞이하는 신관례와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례를 행한다. 이어서 왕이 첫번째로 술잔을 올리는 의례를 행하고 왕세자와 영의정이 각각 두번째와 세번쨰로 술잔을 올린다. 술을 올리는 의식이 끝나면 왕이 술을 마시는 음복을 하고 마지막으로 축문과 신에게 예물을 폐백을 태우는 례를 행한다. 제례가 행해지는 동안에는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춘다. 음악은 역대 임금의 문덕과 무공을 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무용은 6명씩 6줄로 줄지어 추는 육일무를 추었는데 대한제국 이후로는 팔일무를 춘다. 제례음식으로는 각종 과일과 곡식을 올리며, 옛 조상들이 상고시대에 고기를 익히지 않고 먹었던 것을 본떠 소, 양, 돼지 등의 날고기를 사용한다. <출처:고궁박물관>


왕실 제례의 순서와 제사음식 배치 그림.


왕과 왕비의 제삿날을 적은 판.


선희궁의 제례순서. 선희궁은 영주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사당이다.


북도각릉 전도형 중 함흥본궁.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후 4대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는 본궁이라 부르고 살았으며 후에 태조 및 신의왕후와 신덕왕후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북도각릉 전도형
함경북도 소재. 태조의 4대조 선조들의 능과 태조와 관련된 사적지를 풍수도 형식으로 그린 것으로 산릉도 6폭과 사적지 6폭의 총 12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집경건 옛터 그림. 태조 이성계 초상화를 모셨던 사당인 경주 소재 집경전의 옛터를 그린 그림이다. 설날.한식.단오.추석 등에 제사를 지냈다. 태종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사당으로는 전주의 경기전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전국적으로 많은 곳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사당을 두었다고 한다.


장릉에 올리는 축문 법식. 장릉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그의 비 힌헌왕후 구씨의 능으로 경기도 김포에 있다. 장릉에는 역대 능참봉의 이름을 비롯하여 왕릉의 운영에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역대 장릉 참봉 명단, 역대 장릉에 임명되었던 능참봉 관련 기록이다. 능참봉은 종9품의 벼슬로 왕릉을 관리하고 제사를 담당하였다.


능의 제사 음식배치 그림


장릉의 제기 사용 기한을 적은 책. 장릉에서 사용했던 제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연한을 기록한 책이다. 자기는 3년, 유기는 10년, 철기는 5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생신날 올린 다례 제사 음식 목록. 의례절차 중 궁녀들이 그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글로 그 기록이나 지침서를 남겨 놓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대표적인 한글 서체로 궁서체가 있는데 이는 궁녀들이 사용한 글씨체라고 하며, 필체가 상당히 깨끗하고 또박또박하다.


제기를 수놓은 병풍. 중국 고대사회에서 제사에 사용하던 청동기 그릇을 수놓은 병풍이다. 제기는 인간이 신에게 행하는 예의 표상으로 제기를 기린 병풍은 왕실에서뿐만 아니라 양반 사대부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하였다. 이 병풍은 각폭마다 4절의 제기를 배열하고 각 제기의 명칭과 제기에 새겨져 있는 명문과 설명 등을 매우 정교한 궁중자수기법으로 수 놓았다.

국가의 제사, 길례
길례란 국가에서 지내는 여러 제사를 뜻하며 오례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제사 지내는 대상의 격에 따라 대사.중사.소사로 나누어진다. 왕실의 역대 왕과 왕비를 제사 지내는 종묘 제례와 땅과 곡식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 제례는 국가 존립의 근본이 되는 제례로서 격이 가장 높은 대사에 속하며, 대제라고 불렀다. 중사는 농업을 위주로 한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바람.비.구름.우레 등 자연신과 농업과 양잠을 주관하는 신, 공자 그리고 역대 시조 등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소사는 가장 격이 낮은 제사로서 무병장수와 신변의 안전 등을 기원하기 위해 별이나 귀신, 명산대천 등에게 올리는 제사 등이 있다.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기록한 그림. 왕.왕비.대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는 절차를 그린 반차도이다.


대표적인 가례인 왕자의 결혼식과 관련된 문서인 친영홀기,동뢰홀기,조현례홀기이다. 친영홀기는 왕자 결혼식 중 왕자부인의 집으로 직접 가서 부인을 맞이하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것이다. 동뢰홀기는 왕자가 친히 신부를 맞아 동궁에 도착하여 서로 절을 하고 술잔을 나누어 마시는 예식이다. 조현례홀기는 결혼식의 첫날 밤을 지낸 다음날 처음으로 부왕과 모비를 뵙는 의식 순서를 기록한 것이다. 가례인 왕자의 결혼식에는 궁에서 준비해야하는 것이 많고 그 세부적인 절차를 궁에서 하기 때문에 궁녀들이 행사를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글로 또박또박하게 그 절차를 적어 놓고 있다.


수교도. 왕세자의 성인식인 관례의식 절차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순명황후 능을 이전하면서 쓴 애도하는 글


열성지상등기.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에 관한 행록, 행장, 교서 등의 여러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명릉 그림. 명릉은 조선 숙종과 계비 인현 왕후 및 인원 왕후의 능을 말한다.

 
춘당대어사 현판. 정조가 춘당대에서 활쏘기글 행한 사실과 성적을 적고, 정조의 탁월한 무예를 찬양하고 경축하는 현판이다.

가례.빈례.군례.흉례

 가례는 왕실의 경사스러운 행사를 말한다. 왕이나 왕세자가 혼인할 때, 왕비.왕세자.왕세자빈을 책봉할 때, 왕세가자 입학할 때, 과거시험의 합격자를 발표할 때, 왕.왕비.왕대비 등의 기념일을 축하할 때 등 왕실의 여러 경사때 행하는 의식이다.
 빈례는 외교와 관련되는 국가 의식을 말한다. 중국 사신을 태평관에서 접대하는 연회와 일본,유구,여진족 사신을 대궐에서 맞이하는 의식 등이 있다. 왕실에서는 각국의 사신을 격식에 갖추어 맞이함으러써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상대국과의 원할한 외교를 이루고자 하였다.
 군례는 왕이 활쏘기나 무예행사, 군대 사열에 참여하는 등의 의식을 가리킨다. 왕은 병권의 최고 권력자로서 군례에 몸소 참여하여 이들을 격려하고 군사 지휘 계통의 원할한 운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흉례는 상장에 관련된 의식과 산릉의 제사, 시호와 책보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왕이나 왕비, 왕세자와 세자빈 등이 승하하실 경우 국장를 치르게 되는데 그 장례식에 관련된 일체의 의식과 신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 으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출처:고궁박물관>

왕실의 권위와 국가의례
조선은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하여 운영된 국가였다. 유교국가에서는 '예'가 최고의 권위와 타당성이 있는 규범질서이고 각종 국가 통치 제도와 백성의 생활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장치였다. 조선은 왕실의 정치적 권위와 왕조의 정통성을 국가의 다섯가지 의례인 오례를 통하여 확립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의례로서 오례의 체제는 '고려사, 예지'에서 처음 나타났으나 전형적인 국가 의례로 정착된 것은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였다. 조선 초 '세종실록'의 '오례'로부터 시작한 국가 의례는 성종대에 '국조오례의'로 정립되었으며 '경국대전'과 함께 조선왕실의 권위를 지켜주는 통치 이념의 기본 의례서가 되었다. 오례는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를 말한다. 길례는 왕실의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제와 땅과 곡식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 등의 각종 국가 제례를 가리키며 제사지내는 대상의 격에 따라 대사.중사.소사로 나누었다. 가례는 왕실의 혼례와 성년례인 관례, 왕비나 왕세자.왕세자빈의 책봉 의식 등 경사스러운 예식을 말하며, 빈례는 국가의 손님, 즉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을 말한다. 군례는 군대의 의식과 예절을, 흉례는 상 중에 행하는 모든 의식을 일컫는다. 종묘와 사직의 제사는 국가 의례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 추존왕과 추종왕비의 신위와 공신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지칭한다. 사직은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이며 국가 성림이 근본이 되는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은 왕조 시대에는 흔히 국가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었고 이곳에서 드리는 제사는 최고의 국가의례로 인식되었다. 왕은 하늘과 땅에 제사를 드리는 의식을 장엄한 음악.춤과 함께 성대하게 치름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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