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그림 중 풍속화 성격과 현대적인 의미의 기념촬영과 같은 의미를 같는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궁중 화원들이 임금의 행차를 그린 반차도나 궁중의 행사를 그린 병풍이나 족자, 의궤 등이 있으며, 권문세가를 중심으로 한 양반가를 비롯하여 일반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를 그린 그림들이 있다.
그 중 궁중화원이 공식적인 행사장면을 그린 그림이 아닌 일반 사가에서 각종 행사를 그린 그림을 사가행사도라고 한다. 그 내용은 특정인이 국왕으로부터 궤장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사궤장연회도, 회갑 등의 잔치를 그린 그림과 각종 모임을 그리 계회도, 기로회도, 방회도 같은 그림이다. 이는 대부분 고위 권문세가나 사대부들이 각종 모임을 가지면서 그 내용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오늘날의 기념촬영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행사도의 구성은 모임광경을 그린 그림 주최자의 서문, 참석자 명단 등을 적은 좌목으로 구성된다. 이런 행사도는 책의 형태를 한 첩이나 족자의 형태로 만들어지며, 병풍으로 만드는 경우는 있는 것 같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이런 그림은 고위관직을 지낸 양반들의 동료의식과 풍류의식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다. 이런 행사들은 초기에는 양반 고위층만이 그렸는데 조선후기와 구한말에는 제법 경제력을 갖춘 중인층으로 이런 모임과 행사도를 그리는 풍습이 확대되고 있다.
신관도임연회도. 지방의 관아에서 지방관이 주최한 연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중앙에 감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감사가 주최한 연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연회의 주인공인 감사가 호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왼쪽편에는 10여명의 고위 인사들이 앉아 있다. 주인공인 감사는 다른 사람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감사 앞에는 술상이 있고, 기녀와 악공이 술상 앞에 앉아 있다. 오른편에는 아이들이 앉아 있는데 아마도 일가친척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녀들이 칼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그 주위로 악공들이 연주를 하고 그 장면들을 이 연회에 초정된 지역의 많은 인사들이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다.
칼춤을 추고 있는 기녀
관아 출입문.
이 작품은 지방관이 주체가 되어 한 지방의 관아에서 열린 연행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대청의 중앙에는 감사가 호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주변 인물보다 유난히 크게 그려져 주인공으로서 그의 신분과 지위가 부각되었고 참석자들은 신분과 지위에 따라 자리한 위치가 다르다. 정확한 시기와 장소는 알 수 없지만 인물과 의습선의 표현에 의해 1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사계정사도
이 작품은 사계 방응현(1524~1589)의 손자 방원전이 선조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1609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건물지에 정자를 다시 짓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림의 상단에는 각기 다른 전서체로서 제목이 있고, 그 주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중간에 위치하며, 하단부에는 '사계정사도'라는 글이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남지기로회도. 17세기에 한양 남쪽에 있는 고위 양반가에서 70세 이상된 기로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이다. 원본은 아니고 후대에 그림을 모사한 것이라 한다.
그림은 70세 이상된 기로들이 양반가 사랑채의 넓은 대청마루에서 정원 연못의 연꽃을 감상하면서 연회를 갖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잔치에는 어린 아이들도 한쪽에 앉아서 구경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한양에 있는 양반가인데 그 저택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화려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쪽 좌목에는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의 명단과 예조참판 이경직이 쓴 서문이 적혀 있다. 아마도 이모임에 참석한 사람 중 최고 고위직이었던 모양이다.
1629년 6월 5일 남대문 밖 근처에 있는 홍성주의 집에 모여 만개한 연꽃을 감상하며 70세 이상된 기로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이다. 이 작품은 기로회 장면과 함께 글과 좌목으로 꾸며졌으며 가장자리에 예조참판 이경직의 서문이 쓰여 있는데, 같은 내용의 그림을 옮긴 후대의 모사본이다. <출처:고려대박물관>
북일영도. 지금도 사직동에는 활터가 있는데 아마도 그 곳에서 열린 연회를 묘사한 그림으로 보인다.
북일령은 훈련도감의 분영으로 궁궐의 호위를 맡았던 부대의 하나이다. 관우는 경희궁 무덕문 밖 지금의 사직동에 있었는데 활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림에도 북일영의 건물과 그 옆에 위치한 활터를 대등한 비중으로 묘사하고 활 쏘는 장면을 모사하였다. <출처:고려대박물관>
남소영도. 한양의 지키던 병영에서 열린 연회를 그린 그림이다. 연회가 열린 남소영 건물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하다.
남소영은 어영청의 분영으로 도성 남쪽의 방위를 맡았던 곳인데, 현재 장충동과 한남동을 잇는 고개에 위치하던 남소문 근처였다. 이곳의 관우는 규모가 상당히 컸는데 그림에는 그 중 한 건물에서 베풀어진 연회의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임오사마방회도첩. 고위관료를 지낸 인사들이 노인이 되어서 옛날을 회상하면 갖는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동기모임과 같은 성격의 모임이다.
임오년(1582) 소과에 합격한 급제자들이 46년 후인 1630년에 회동하여 방을 개최한 사실을 기록한 화첩이다. 이 화첩은 그림.좌목.수창시.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회 장면은 건물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묘사하였는데 실내에는 12명의 노인들이 품계에 따라 방위를 달리하여 자리 잡았다. 필선은 가늘고 조심스러우며 채색은 두껍지 않게 칠해져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만력기유사마방회도첩.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동기모임 성격의 행사이다.
1609년 사마시에서 급제한 사람들이 60주년을 맞아 1669년에 회방연을 개최한 사실을 기록한 화첩이다. 모입 장소는 1등으로 합격했던 이민구의 집이다. 마당에 차일과 병풍을 설치하고 자의를 깔았다. 차일 아래에는 화방자 3명이 북쪽에 앉고 5명의 손님이 남쪽에 앉았다. 노란색 관을 쓴 무동이 춤을 추고 다섯명의 기녀와 네 명의 악공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이경석사궤장연회도첩. 고위관료를 지낸 양반들에게 가장 큰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국왕으로부터 궤장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열린 잔치를 묘사한 그림이다. 이 화첩에는 우암 송시열의 서문 등 당시 고위층들의 기념시 등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 화첩은 1669년 11월 당시 영중추부사 이경석이 궤장을 하사받은 사실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이다. 사궤장은 70세가된 조신이 치사를 청하였을 때 궤장을 내려 관직에 더 머무르도록 한 제도로 경로 정책 중의 하나였다. 화첩에는 그림 외에 현종의 교서, 참연제신의 좌목, 이경석의 사은전문, 송시열의 서문, 참연제신의 송찬시가 차례로 실려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송도용두회첩
1612년 개성부의 동료 네명이 모두 장원급제자였던 사실을 특별히 여겨 시장원계를 개최하고 제작한 계회도이다. 1612년 당시에는 6목의 계병을 제작하였지만 세월이 지나 모두 유실되었으므로 1772년에 홍명한이 이를 중수하여 두벌의 계병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계병의 중수 이후에 다시 화첩으로 이모한 것이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양반들의 모임을 그린 화첩
북관유적도첩. 북관에서 용맹을 떨친 인물들의 일화를 모아 그린 화첩으로 이 그림은 충무공이 녹둔에서 오랑캐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고려 예종대부터 조선 선조대까지 북관, 즉 함경도에서 용맹과 지략으로 무공을 세운 인물들의 일화들을 모아 그림으로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설명해 놓은 역사고사화첩이다. 이 그림은 <수책거적도>로 이순신이 임진왜란 발발 전에 말직을 지낼 때의 일이다. 1587년 녹둔도에서 조산만호이던 이순신이 가을이 되어 수확 할 무렵 오랑캐가 침입하자 목책을 방어하여 농민을 보호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임란전승평양입성도병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평양성을 명나라 연합군과 함꼐 탈환한 전투 장면을 그린 역사첩이다. 평양성 탈환은 행주대첩 소지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육전 3대첩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 병품은 10첩을 한 화면을 운용하였고 화면 중간을 가로질러 평양성을 배치하였다. 평양성 탈환 작전은 북.서.남면을 집중 공격하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화면 우측의 함구문, 중앙의 보통문, 왼편의 칠성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사가의례를 그린 사가행사도는 사궤장연회도, 경수연도와 같이 집안의 행사를 그린 것과 계회도, 기로회도, 방회도와 같이 사대부들의 각종 모임의 광경을 그린 것이 있다. 사대부들의 모임 광경은 책의 형태를 한 첩이나 족자로 제작된다. 첩의 경우 표지에 제목을 그리고 첫 장에 모임의 장면을 그리고 그 뒤에 모임에 참석자들의 이름.생년.과거등제년.품계.관직명 등 좌목을 써 넣었다. 족자의 경우, 그림의 상단에 전서체로 계회의 명칭을 적고, 중단의 넓은 화면에 모임장면을 묘사하고, 하단에 좌목을 써넣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그림은 당시 사대부들의 관직생활을 통한 동료의식과 문사적 풍류의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좌목에 기록된 참석자들의 인적사항에 의거하여 제작연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실명씨 초상. 조선시대에 일반 양반 사회에서 많이 그렸던 그림 중 하나인 초상화이다.
신헌 초상. 이기지 초상
신헌 초상. 이기지 초상.
이이명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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