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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실을 표현한 것 중 가장 웅장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각종 위궤에 화려한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는 국왕의 행차일 것이다. 국왕의 행차는 주로 궁궐밖으로 나가는 경우를 말하는데 종묘나 선농단 등에 제례를 올릴때나 왕릉을 참배할 때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 목적과 의장의 수량에 따라 대가노부.법가누부.소가노부의 3종류가 있다고 한다. 국왕이 탄 가마를 중심으로 수많은 군병이 호위를 하고 문무백관들이 따르게 함으로써 국왕의 위엄을 드높이고 민간에 왕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를 갖게 한다.

 고궁박물관에는 전통적으로 전해내려 왔던 국왕의 행차에 쓰였던 왕실의 가마와 의장행렬에 사용된 각종 깃발과 상징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국왕의 행차모습을 이해하는데에는 그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그린 의궤를 보는 것이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하는데 좋고, 각각의 의장물들을 보면서 그 목적과 상징성을 이해하는 것이 조선왕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국왕의 행차에 대한 기록을 가장 많이 남긴 왕은 정조대왕으로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을 참배하고 수원화성을 머무르는 행차에 대한 기록을 화려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화성행해도병 중 환어행렬도 부분. 정조가 사도세자 묘소인 현륭원에 행차했을 때 거행된 8가지 주요 행사장면을 그린 <화성행행도> 중 <환어행렬도>이다.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행행궁에 잠시 들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조선시대 국왕의 행차모습을 화려하고 묘사하고 있는 그림이다. 

* 어가행열의 구성


어가행렬 앞부분으로 행사를 주관하는 관원들로 구성된 도가를 둑과 교륭기를 내세우는 가전시위, 그리고 행렬호위를 맡은 군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쪽에 말이 끄는 가마인 가교가 있는데 아마도 정조대왕를 위한 예비가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행차에서 정조대왕을 말을 타고 있다.

1)도가: 어가행렬의 가장 앞에 서는 시위인원으로 왕의 거동을 준비한 관부의 책임자들로 구성된다.
   당부관원, 한성판윤, 예조판서, 호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의 순서로 등장한다.
2) 선상군병: 국왕 행렬의 전체 호위를 맡는 군사들로 투구와 갑옷을 입고 검을 갖춘 군장차림을 하였다.
    행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후상군병과 짝을 이루어 배열하였다.
3) 가전시위: 어가 앞부분의 시위를 담당하였다. 둑과 교룡기를 내세우 국왕의 전체 행렬에 대한 통솔권을 상징한다.


교룡기 뒷편으로는 취타대를 비롯하여 각종 왕의 상징물을 들고 있는 의장이 배치되어 있다. 왕실행차에 중요한 요소인 각종 의장물들의 실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그림이다.

4) 의장: 왕의 상징물로 어가 행렬에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배치하였다. 의장기와 의장물로 구성되는데
    모시는 주인공의 위상에 따라 가짓수를 달리 하였다.


어가 행령의 중심이 되는 장면으로 정조대왕이 행렬 중앙에서 말을 타고 있으며, 그 뒤로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가 보인다. 행렬 뒷편으로는 왕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과 군사로 이루어진 어연시위가 보인다.  뒷편으로 신하들고 후상군병들이 따르고 있다.

5) 여연.어연시위: 왕의 가마가 등장하고, 이어 상의원, 내의원 등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들과 군사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이다. 어연시위의 마지막에 행렬의 총괄 부서인 병조의 표기가 등장하여
    침범할 수 없는 왕의 영역을 표시한다.
6) 각후각차비.수가백관: 승지, 사관과 같은 왕의 측근 신하들과 어가를 따르는 문무백관들로 행렬의 뒷부분에서
   왕의 가마를 수행하였다.
7) 후상군병. 앞부분의 선상군병과 함께 어가행렬의 전체 호위를 담당했던 군사들이다.

* 자료출처: 고궁박물관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궁궁 홍씨와 함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행했을 때 거행된 8가지 주요 행사장면을 그린 <화성행행도> 중 <환어행렬도>는 화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숙박을 위해 시흥행궁으로 들어가는 어가행렬을 묘사한 것이다. <환어행렬도>의 중간부분에는 '둑'과 '교룡기'를 필두로 한 국왕의 행렬, 정조의 어마와 혜경궁의 가교 및 이를 3중으로 호위하고 있는 군병이 묘사되어 있다. 호위군병 등 6,200여명에 달하는 인원과 1,400여 필의 말이 동원된 행렬의 장대함이 한 눈에 느껴질 정도로 탁월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출처:고궁박물관>


임금가마. 왕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형태의 가마이다. 사림이 메고 이동하는 가마로 가까운 거리나 궁궐내에서 행차할 때 사용하는 가마이다. 근정전 앞에 볼 수 있는 답도는 이 가마가 지나가는 길이다.

조선시대 왕이 행차 시에 탔던 가마이다. 지붕이 있는 형태의 가마라고하여 유옥교라고 표기되었다.  위로 볼록하게 솟은 지붕 위에는 둥근 보주를 올리고, 네 귀퉁이 봉황머리 장식에는 고리를 달아 유소를 길게 내려 뜨렸다. 주칠을 한 사각의 몸체는 곳곳에 금니로 문양을 장식하였는데, 네 모서리에 용을 그린 둥근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에 각기둥을 둔 후 아랫부분에 난간을 돌렸다. 난간 부분에는 백택, 기린 등 상상의 동물들을 그려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몸체 상단의 네 면에는 주렴을 드리운 검은 휘장을 달아서 차양처럼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좌우 가마채는 두 개씩 조립해서 연결한 것으로 총 길이는 6m 가량 되며 앞뒤로 8명씩, 총 16명이 어깨에 메고 이동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봉황가마

 봉황문양으로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이다. 지붕 및 출입문을 비롯한 가마의 네 측면을 봉황으로 장식하였고, 길이를 짧게 한 붉은 색 휘장에도 봉황을 금박하였다. 지붕은 두 단을 지어 올렸고 삼각의 단 위에는 여덟마리의 봉황을 두르고 비녀못을 끼운 보주를 올였다. 지붕의 각 면에는 구름문양을 그렸으며 네 모서리의 봉황 장식에 유소를 길게 드리웠다. 몸체는 방과 출입구 두 부분으로 나뉘며 앞면과 측면에 난 창문은 들어열개식으로 하고, 출입문은 양쪽으로 여닫게 되어 있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를 만들어 고정하여 매도록 하였으며 끝 부분은 봉황머리로 장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말이끄는 가마인 가교. 먼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말이 끄는 가마이다. 그 모습을 정조대왕 행차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앞뒤로 말의 안장에 걸쳐서 사용한다.

가교는 가마채를 말의 안장에 연결하여 두 마리의 말이 앞뒤에서 끌고가는 가마이다. 임금이나 왕실 웃어른의 장거리 행차 때 이용하였으며, 정조임금이 화성행차 시에 사용했던 경가교가 이것과 같은 형태였다. 주칠을 한 몸체는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꽃, 명찰, 바퀴, 칠부, 수자문 등 갖가지 문양으로 양각되었으며, 양 측면 아랫단은 등나무 자라로 표면을 장식하였다. 창은 겹창으로 만들었으며 미닫이형의 안장은 박쥐와 넝쿨 문장을 투각하였고 지붕에서부터 검은 비단 휘장을 내려 창문을 가렸다. 사각지붕은 곡선으로 나지막하게 솟았으며 정상에는 납작한 모양의 금색 모주로 마무리 하였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를 마들어 고정하였고 끝부분은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가마의 세부명칭


어가행렬에 사용된 부채들이다. 쌍용부채, 붉은꽃 부채, 봉황부채, 꿩깃부채 순이다. 상징적의미도 있지만, 더위를 식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포함된 의장물이다.

1) 쌍용부채
원형 부채모양 의장물로 종이로 초배첩한 후 붉은 명주로 다시 배접하였다. 앞뒷면 똑깥이 청룡과 황룡 두 마리를 내려오는 모습과 오르는 모습으로 그렸다. 후대에 안료로 덧칠한 부분이 많아 본래의 완료 색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군데군데 금분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2) 붉은꽃 부채
둥근 부채 모양의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한 후 붉은 명주로배접하여 가장자리에 꽃송이를 돌린 후, 두개의 동심원을 그리고 내부에 좌우로 꽃넝쿨을 그렸다. 꽃을 그린 둥근 부채는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수레에 꽃을 그린 흥화단선을 사용한 데서 유래하는데 차츰 그림을 자수로 대체한 홍단선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3) 봉황부채
방형의 부채모양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한 후 붉은 명주로 배접한 위에 앞뒤 똑같이 날아 오르는 봉황을 좌우에 그렸다. 명주로 드림을 드리웠다.

4) 꿩깃부채
윗부분을 둥글린 방형의 부채모양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한 후 붉은색 명주로 다시 배접하고 가장자리에 꿩의 고리를 그린 후 그 안에 두 마리의 꿩과 꽃을 그렸다. 뒷면은 본래 파란색 명주 바탕에 모란을 그렸으나 모두 바래서 바탕탯이나 안료색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 출처: 고궁박물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가의 상징물로 나무로 만든 칼과 도끼이다.

금장도.은장동
금장도와 은장도는 나무로 만든 칼을 금색과 은색으로 칠하거나 단청하고 각종 길상문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한 의장물이다. 손잡이에 구름 문양을 새기고 매듭을 달아 장식하였다.

금월부.은월부
금월부와 은월부는 용이 도끼를 물고 있느 모습을 나무에 조각한 후 금칠.은칠하여 봉에 꿰어 만든 의장물이다. 월은 날이 한쪽에만 있는 큰 도끼이고 부는 작은 도끼이다. 특히 월은 천자가 장군을 임명할 때 수여하는 의물로서 전권을 넘겨준다는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금고깃발과 영깃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깃발인데, 어가 행렬의 군사적 의미를 말해 준다.

금고깃발
명령을 전달하는 신호로 북이나 징을 치던 취타대를 인도하는데 사용된 군기이다. 황색바탕에 검정색으로 '금고' 두 자르 붙였으며 붉은색 비단으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영 깃발
장수의 명령을 전달하는데 쓰던 군기이다. 가장자리가 없는 푸른 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령 令'자를 붙였다. '영기'와 더불어 영전, 영표 중 한가지를 소유하여야 비로소 명령을 전달받았으며, 영내에 출입하도록 허락하였다. 만약 없으면 비록 장수가 온다 하더라도 명령을 따르지 않으며 영내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좌독기와 좌독기드림

좌독기
조선시대 사용된 군기로 행진할 때는 주장의 뒤에, 멈추었을 땐 장대 앞 왼편에 세웠다. 사각형의 검은 바탕에 흰색과 붉은 색 비단을 덧대어 정중앙의 태극을 중심으로 팔괘와 낙서를 표현하였다. 동.서.남.북.중앙의 오방에 해당하는 다섯가지 색의 드림을 함께 달아 사용하였다. 낙서는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때에, 낙수강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마흔 다섯개의 점으로 된 아홉개의 무늬를 일컫는다.

좌독기드림
좌독기와 함께 달았던 기 드림이다. 기 드림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도록 다섯 가지 색으로 만들었는데, 붉은 바탕의 드림은 남방을 상징하는 것이다. 기면에는 일곱 개의 원 안에 28수 중 남방의 별 자리인 정, 귀, 유, 성, 장, 익, 진을 상징하는 들개.양.노루.사슴.말.뱀.지렁이를 그려 넣었다


기성도병 중 평안감사 선유 부분.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기성도병> 가운데 평안감사가 대동강에서 선유하고 있는 장면이다. 평안감사가 탄 정자선 뒤로 좌독기와 다섯가지 색의 드림이 휘날리고 있다.


어가행렬의 의장

사용하는 의장기에는 군대에서 쓰는 군기와 순수한 왕실 의장기들이 있다. 의장기를 그림의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왕권을 상징하는 용을 그린 기, 사신을 그린 기, 상상의 동물을 그린 기, 팔괘 등 우주의 생성원리를 표현한 기, 해.달.별.봉우리 등 영원한 자연물을 그린 기, 문자를 쓴 기가 있다. 의장물에는 도끼.칼.창 등과 같이 권력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군사적 성격도 갖춘 것들과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 실용적 성격의 개.산.부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어가행렬을 청각적으로 빛내 주는 나팔.북.각 등 고취악기들이 있고 의자.먼지털이.침그릇.세숫대야.향합.향로 등 일상 용품에 속하는 것들도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교룡깃발과 황룡깃발. 국왕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깃발들이다.

교룡깃발.
국왕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의장기로 용기.용대기,황룡대기라고도 한다. 어가행렬시 주로 선두 호위군사와 국왕의장 사이에 위치하여 국왕이 전체 행렬을 움직이고 통솔함을 보여준다. 3m에 이르는 이 깃발은 왼편의 <화성행행도병> 중 <환어행렬도>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행렬시 군복을 입은 장교가 말을 탄 채 받쳐 들고 4명의 군사가 깃대에 잡아맨 끈을 사방에서 한 가닥씩 잡아 당기게 되어 있다.


벽붕깃발, 삼각깃발, 백태깃발

삼각깃발.
조선시대 임금이 거동할 때 군중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사용한 의장기의 하나로 대가노부.법가노부, 소가노부 등에 사용하였다. 백색 바탕의 사각 깃발로 머리에 세 개의 뿔이 달린 말 모양과 그 드 주위로 청.적.황.백의 네 가지 색채의 구름 문양을 그렸다. 뿔이 셋 달린 삼각은 '선왕의 법도를 이루면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백택깃발
조선시대 임금이 궁중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사용한 의장기의 하나로 대가노부, 법가노부에 사용되었다.  백택은 유덕한 군왕의 치세기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로 용머리에 푸른 머리털을 지녔고 네발로 달린다고 하며, 말을 할 줄 알고 만물을 통달하여 덕이 깊다고 여겼다.



구한말 왕실에서 사용한 침대. 중국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가구이다.

조선왕실의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던 가마는 크게 연과 여로 나뉘는데, 연은 왕과 왕비, 왕세자가 타는 가마로 말이 끌거나 사람이 메었고, 여는 주로 사람이 메는 가마로 보통 사람들도 탈 수 있는 가마였다. 왕실의 가마는 주로 국가 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왕실 가족이 궐밖으로 행차할 때 사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왕의 가마는 어가행렬 속에서 여러가지 의장으로 꾸미고 수 많은 군병이 호위하며 문무백관을 따르게 함으로써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였다. 국왕은 연 이외에도 궁궐 아팎에서 지붕과 벽체가 없는 가마인 남여도 사용하였다. 공주와 옹주를 비롯한 궁중 여성들은 덩이라는 가마를 탔다. 한편 대한제국때는 봉교가 새롭게 등장하여 황실에서 쓰였다. 사람이 타는 가마 외에도 향정자.용정자.채여 등 의물을 운송하는 작은 가마도 있었다. 어가행렬은 목적과 의장의 수량에 따라 대가노부.법가노부.소가노부로 나뉘었다. 중국의 조칙을 맞이하거나 종묘에 제사를 드릴 때는 규모가 가장 큰 대가노부를, 문소전.선농단에 참여할 때는 법가노부를 사용하였다. 소가노부는 능 참배 등 교외로 나아갈 때 사용하는 가장 간단한 규모의 행렬이었다. 어가 행렬에 사용하는 의장은 크게 깃발 종류인 의장기와 그 외 여러가지 의장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의장들은 왕의 존재를 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고 행렬을 부각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었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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