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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박물관에 전시시대 조선시대 회화 중 궁궐과 궁궐행사를 그린 그림들이다.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물인 국보 249호인 동궐도가 대표적인 궁궐을 묘사한 그림이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궁궐행사를 그린 그림들은 주로 직업화원들이 그린 그림이 대부분인 듯 하며,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많이 그려진 의궤의 그림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장면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기록의 의미가 강한 것들로 문인들이 그린 산수화나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린 풍속도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하며, 오늘날의 사진가들이 행사현장 기념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목적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들 그림이 회화로서의 가치가 낮아 보이지는 않아 보이며 그 가치를 논할 때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한 풍속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대 박물관에는 창덕궁,창경궁 일대를 그린 동궐도와 함께 현재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 일대를 그림으로 그린 서궐도도 소장하고 있다. 서궐도는 동궐도에 비해 그림으로서는 약간 수준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궐 전각을 묘사함에 있어서 상당한 전문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잘 그려진 그림이다.


서궐도안. 서궐은 현재 광화문 서쪽편에 위치한 경희궁 일대를 말하며 지금은 정전인 숭전전을 비롯하여 일부 전각들만 복원되어 있어 아주 작은 궁궐처럼 보이지만, 서궐도 그림으로 보면 현재의 동궐에 비해서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는 궁궐이다.


소궐도에 묘사된 정전인 숭정전이다. 숭정전 건물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게 팔려서 사찰전각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동국대 법당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 현재 경희궁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옮겨져 있다고 하며, 한때는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였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의 사직터널이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서궐 또한 동궐처럼 숲이 잘 꾸며져 있었던 것 같다.


경희궁 전각들. 한때는 상당히 많은 전각들이 경희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궐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궁권, 즉 경희궁을 의미한다. 자를 대고 윤곽선을 정확하게 긋고 각 건물의 지붕에 이름을 써 넣었다. 수묵의 윤곽선도 또렷하고 자신감이 있게 그린 것으로 보아 계화에 뛰어나거나 산수에 능숙한 화원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궐도안>은 서궐도로 그려진 완성본이 전하고 있지 않는 지금. 옛 경희궁의 전모를 확인하는데 훌륭한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출처:고려대박물관>


동궐도 중 창덕궁 후원 주합루 부근을 그린 그림이다. 주합루와 부용지. 영화당의 모습이 보인다.


이그림은  창덕궁과 창덕궁을 그린 동궐도 16권의 화첩 중 제5권이라고 한다.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16권의 화첩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이 화첩은 그 중의 제5권이다. <동궐도>에는 전당, 누정, 재실 등 건물의 명칭을 적어 두어 건물의 이름을 알게 하고, 연못, 우물, 괴석 등 자연이 실재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묘사하였다. 또한 기둥의 칸수, 주춧돌과 기단 같은 구조물에서 부터 기와골이나 창호 등의 생김새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이를 통해 복원이 가능할 정도이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성균관 친림강론도


이 그림 중 뒷편 배경을 그린 것으로 성균관 명륜당과 동.서재를 간략하게 묘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균관 마당에서 천막을 치고 강론을 하는 모습이다. 기록적인 의미가 강한 그림으로 참석인물의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령남씨전가경완도. 그림 왼쪽에 연회에 참여한 서연관 39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그림은 중종때 왕세자였던 인종이 자신을 가르친 스승들을 모시고 연회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행사도이다. 이 행사는 경복궁 근정전 마당에서 열렸는데 마당 한쪽편에 천막을 치고 행사를 벌리고 있다. 연회에 참석한 대신들이 마당에 앉아 있고, 중간에 무녀들이 춤을 추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마당에 열렸다는 것은 이 행사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유물은 <중묘조서연관사연도>, <명묘조서총대시예도>, <선묘조제재경수연도> 등 세 종류의 그림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긴 화권이다. 조상의 행적이 담긴 행사도는 후손 대대로 계승하는 경우 여러 본을 만들어 대서종가에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이 유물도 의령남씨 집안에 전승되던 그림 중에 하나이다. <중묘조서관연도>는 1535년 경복궁에서 당시 왕세자이던 인종이 자신을 가르치던 서연관들에게 내린 법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 뒤에 붙어 있는 좌목에는 이 연회에 참여한 서연관 39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장소는 경복궁 근정전의 정전이며, 어도 왼편에 차일을 설치하여 연석을 마련한 사연의 형식으로 베풀어졌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순명비발인반차도. 의궤 등에 많이 남아 있는 그림인 반차도이다. 이 그림은 순종비의 국장때 발인하여 산릉에 이르는 행렬을 그린 것으로 20세기에 조선시대 양식에 의해서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반차도는 1904년 순종의 비인 순명왕후의 국장 때 발인하여 산릉에 이르는 행렬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인물과 말은 동작이 거의 없고 목판화의 윤곽선이 비교적 뭉특한 것이 19세기 후반의 반차도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1904년 대한제국시기로 관제 개편에 따라 검정색 양복 차림의 군병이 등장하고 있으며, 경무청, 장례원 같은 새로운 명칭도 나타난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삼간택후예별궁반차도.

간택된 왕비나 세자빈이 가례를 앞두고 별궁에 머무르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가는 행렬을 그린 것이다. 행렬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볼 때 전도 및 호위군, 의녀와 유모, 내새, 시중드는 종, 도감의 관리 등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반차도는 인물과 기물의 위치와 순서, 종류와 수량을 나타낸 그림으로 그 내용을 명료하게 알기 위해 인물이나 기물의 옆에 그 명칭과 숫자가 표기되는 것이 보통이다.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병. 19세기에 많이 그렸던 왕실행사를 그린 기록화를 병풍으로 제작한 것으로 왕세자가 교명과 책인을 받는 행사를 묘사한 그림이다.

19세기는 궁중행사를 그린 진하도병을 8폭 혹은 10폭의 대형으로 제작한 것이 특징인데, 이 진하도명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10폭의 이 도병은 왕세자가 교명 및 책인을 받은 수책 장면과 고종이 인정전에서 문무백관의 진하를 받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위도총부의 도총관 이회정이 쓴 서문과 맨마직에는 9명의 부총관 이름이 적힌 글이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대사례도 중 왕이 활을 쏘는 장면이 <어사도>이다.


종친.의빈.문무관 등 신하들이 짝지어 활쏘는 모습을 그린 <시사도>이다.


대사례도 중 결과에 따라 시상을 하는 모습을 그린 <상벌도>이다. 옆에는 대사례도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대사례는 왕이 성균관에서 석전례를 지낸 뒤 신하들과 행하는 활쏘기 의식을 말한다. 활쏘기는 육예의 하나로서 사자는 이 과정을 통해 단순히 기예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함양하였다. 이 화권은 1743년 윤4월 7일에 거행된 대사례의 광경을 그린 것으로, 오른쪽부터 왕이 활쏘는 모습을 그린 <어사도>, 종친.의빈.문무관 등 신하들이 짝지어 활쏘는 모습을 그린 <시사도>, 결과에 따라 시상하는 모습을 그린 <상벌도>의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 뒤에는 '어사삼획'이라하여 영조의 활쏘기를 기록하고 시사관 30명의 좌목과 성적, 병조판서 서종옥이 쓴 대사례도서를 차례로 수록하였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서총대시연도. 창덕궁에서 열린 연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1560년 9월 19일 명종이 창덕궁의 서총대에 친림하여 재상들이 시연한 가운데 베푼 작은 연회를 그린 것이다. 표지에 '서총대시연도'라는 표제가 붙어 있고 홍성의 선문, 그림, 81명의 참연제신의 좌목 순으로 꾸며져 있다. 명종은 이날 창덕궁 후원에 있는 서총대에서 문신에게는 어제를 내려 시를 짓게 하고 무신에게는 짝을 지어 활쏘기를 시켰다. 그리고 어찬을 나누어주고 내탕고에서 호표피와 태복마필을 꺼내 성적이 좋은 사람들에게 상으로 하사하였다. 기녀드리 한 줄로 앉아 있고 그 뒤에는 거문고, 대금, 피리, 비파, 장고 등을 연주하는 악공 10명이 나란히 앉아 있어 연회가 한창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준천당랑시사연구첩. 영조때 시행한 청계천 준설을 끝내고 그 공로를 치하하는 연회를 기록한 그림이다.

준천은 하천의 바닥을 파내어 물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홍수에 대비하는 하천정비 사업을 말한다. 영조는 1760년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어 온 개천의 준설을 결심하고 2월 18일부터 준천 역사에 들어갔다. 준천이 종료된 다음날 영조가 창덕궁의 후원에 있든 춘당대에서 준천소 당상과 낭청 이하 패장을 시사하고 이예에 이르기까지 전원에게 사찬하는 등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이 화첩의 그림은 바로 이 장면이 그려진 것이다. 그림 뒤에는 어제연구, 입시관원들이 지은 제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관원들의 제시는 어제시에 운을 맞추어 갱진한 것으로 우의정 민백상, 영돈녕 김한구, 판돈녕 이창의, 한성부 판윤 홍계회, 호조판서 홍봉한, 부총관 채제공 등 모두 27명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 화첩은 춘당대 시사 때 영화당에 입시한 자리에서 갱진에 참여한 관원들이 제작한 계첩으로 파악된다. <출처:고려대박물관>


1901년 고종황제 오순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연회를 기록한 의궤

이 의궤는 1901년 7월 26일부터 9월 29일에 걸쳐 경운궁 함녕전에서 거행된 진연에 대한 기록이다. 이 진연은 황제인 고종의 오순을 칭경하기 위해 황태자가 주관하여 올린 예연이었다. 이 의궤는 모두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수에는 택일, 좌목, 도식을 싣고 있다. 도식에는 <함녕전외진연반차도>, <함녕전내진연반차도>, <함녕전야진연반차도>, <함녕전익일회작반차도>,<함녕전익일야연반차도> 등 행사장의 평면과 좌차, 각종 기물의 위치 등을 문자만으로 도해한 반차도를 먼저 싣고, 뒤이어 각 반차도를 회화적으로 묘사한 행사도와 각 진연에 공연된 정재와 그에 쓰인 각종 물건들의 그림도 그려져 있다. <출처:고려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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