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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고려의 자기문화, 비색청자

younghwan 2011. 2. 1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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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일신라 말기인 9~10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당삼채에서 시작되어 당나라때 청자가 만들어졌다고 하며, 통일신라말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을 일부 계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황소의 난에서 시작된 당나라 말기의 혼란상을 피해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중국 기술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들이 있는데 세계 문화 교류를 돌이켜 보면 크게 무리가 없는 주장인 듯 하다.

 고려 초기의 가마들은 수도 개경을 부근에서 중국 월주요의 자기들을 생산했다고 하며, 1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 송나라와 일본과의 중요한 교역거점이었던 전북 부안과 전남 강진이 청자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청자 제작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대변되는 고려청자 특유의 색과 장식기법으로 고려만의 자기를 만들게 된다. 현재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자기와 문화재로는 고려청자를 첫손가락에 꼽고 있을 정도로 그 제작수법과 예술성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은은한 녹색은 흔히 비취색, 곧 '비색'에 비유된다. 비색을 띤 청자에 고려 사람들은 깊은 애정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 송나라 사람들도 중국 청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 비색 청자 유약은 반투명하며, 그릇 표면에 갈라진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비색 청자는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바까지 가장 세련된 색을 띤다. 12세기 중엽부터는 상감 청자가 유행하여 비색 유약에서 상감무늬가 잘 드러나는 맑고 투명한 유약으로 바뀌게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사자장식 주전자와 받침, 고려 11세기


완(찻그릇), 고려 10~11세기.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했던 차를 마시는 다도문화와 관련됫 찻그릇인 완이다.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색과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꽃 모양 완 (찻그릇), 고려 12세기


꽃 모양 접시, 고려 12세기.

고려 고분에서 출토된 아름답고 완벽한 12세기 전반 절정기의 순청자이다. 이와 유사한 접시가 중국 송나라 접시에도 보이지만, 이 접시는 꽃잎의 표현과 유약의 아름다움에서 고려청자 고유의 세련된 멋이 느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접시, 고려 12세기


받침, 고려 13세기, 꽃 모양 잔받침, 고려 13세기


연꽃 모양 향로, 고려 12세기. 비록 뚜껑이 없지만, 그 조각수법과 조형미 상당히 뛰어나다.

이와 같은 형태의 향로는 상형물이 장식된 뚜껑이 있어 뚜껑의 상형물을 통해 향을 피우도록 구성되어 있다. 향로의 기본적인 조형은 중국 당대 금속기에 있으며, 북송대에 운영된 하남성 청량사 가마터에서도 청자향로편이 출토되었다. 비록 상형장식 뚜껑은 없지만 실용기와 감상용기의 성격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참외 모양 병, 고려 1146년 경, 국보 94호

고려 17대 인종 임금의 무덤인 장릉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양의 병은 중국 고대 청동기인 준이라는 병에 기원을 둔다. 뛰어난 색과 완벽한 균형미로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의 대표적 명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경기도 장단군에 있는 고려 인종(仁宗)의 릉에서 ‘황통(皇統)6년(1146)’이란 연도가 표기된 책과 함께 발견된 화병으로, 높이 22.8㎝, 아가리 지름 8.8㎝, 밑지름 8.8㎝ 크기이다. 참외 모양의 몸체에 꽃을 주둥이로 삼아 표현한 매우 귀족적인 작품으로 긴 목에 치마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받치고 있는 단정하고 세련된 화병이다. 담록색이 감도는 맑은 비색 유약이 얇고 고르게 발라져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 7·8호 가마터를 중심으로 동일한 청자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양식은 다른 고려 고분의 출토품에도 보이며 중국의 자주요와 경덕진 가마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병이 발견된다. 고려 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과 비색의 은은한 유색이 돋보이는 참외모양 화병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


조롱박 모양 주전자, 고려 12세기


죽순 모양 주전자, 고려 12세기

죽순의 '순'과 '손'은 중국어 발음이 같아 죽순은 자손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동양화에서는 축하나 기원을 뜻하는 의미로도 통하여 청자를 죽순 모양으로 만들어 애용했던 것 같다. 이 주전자는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작품이다.


석류 모양 주전자. 고려 12세기

이 주전자는 자손 번창, 특히 아들을 상징하는 석료를 소재로 하였다. 4개의 석류를 서로 맞붙여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각각의 석류에는 하얀 퇴화 점으로 시알갱이를 표현하여 석류의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어룡 모양 주전자, 고려 12세기, 국보 61호.

머리는 용, 몸통은 물고기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을 어룡이라고 한다. 이 주전자의 경우 용이 날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비룡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서해에 사는 물고기 일종인 호가 어룡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전해온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주전자로 높이 24.4cm, 밑지름 10.3cm이다.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동물을 형상화했는데, 이런 물고기모양은 옛날부터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건축물에 많이 장식하였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용의 머리모양이고, 이빨과 지느러미, 꼬리 끝에는 백토(白土)를 발랐다. 얼굴의 털이나 지느러미들을 매우 가늘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주전자 몸체에는 비늘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중앙부에는 앞뒤로 커다란 갈퀴모양의 옆지느러미가 묘사되었다. 손잡이는 연꽃줄기 모양으로 주전자의 몸체 위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고, 뚜껑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본떠서 만들었다.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기이하면서도 각 부위를 갖춘 한 마리의 상상의 동물모습을 하고 있다. 비취빛의 유약색과 더불어 지느러미와 꽃무늬에 나타난 세밀한 음각 표현은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주전자는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 중에서도 매우 기발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모란 용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연꽃 넝쿨무늬 매명, 고려 12세기, 국보 97호.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몇점의 유물 중 하나로 고려청자 특유의 색과 곡선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둥근 어깨부터 허리와 굽에 이르는 부드러운 선의 흐름은 고려청자가 가진 특유의 곡선미를 잘 보여준다. 몸체에 음각된 화사한 연꽃넝쿨무늬가 매병의 우아한 곡선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매병으로, 높이 43.9㎝, 아가리지름 7.2㎝, 밑지름 15.8㎝이다. 원래 매병의 양식은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고려 초기에 전래된 이후 곡선이나 양감에서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여 고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되었다. 이 매병은 작고 야트막하나 야무진 아가리와 풍만한 어깨와 몸통, 잘록한 허리, 그리고 아래부분이 밖으로 약간 벌어진 곡선에서 전형적인 고려자기 임을 알수 있다. 아가리는 일반적인 매병 양식으로 각이 져 있으며 약간 밖으로 벌어졌다. 몸통에는 연꽃덩굴 무늬가 전면에 힘차고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맑고 투명한 담록의 회청색 청자유가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있으며, 표면에 그물 모양의 빙렬(氷裂)이 있다. 유약의 느낌이나 작품의 모양새를 보면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가마에서 구워 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12세기 고려 순청자 전성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모란무늬 항아리, 고려 12세기, 국보 98호

상감 청자의 무늬는 대부분 가는 선으로 된 선상감이 많고, 이 항아리처럼 넓은 면을 섬세하게 상감한 예는 매우 드물다. 그릇의 형태는 당시 유행하던 동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릇의 단정한 모양과 양면의 시원스러운 모란무늬가 잘 어울린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항아리로 크기는 높이 20.1㎝, 아가리지름 20.7㎝, 밑지름 14.8㎝이다. 몸통에는 앞뒤로 모란이 한 줄기씩 장식되어 있다. 모란꽃은 잎맥까지도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몸체의 한 면마다 가득히 큼직한 문양을 넣어 인상적이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특히 꽃은 흰색으로 잎은 검은색으로 상감하였는데, 꽃을 중심으로 잎을 좌·우·상·하로 대칭되게 배열하였다. 유약은 맑은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으로 매우 얇고 고르게 칠해져 있다. 유약의 느낌이나 항아리의 형태로 보아 12세기경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항아리는 꽃과 잎이 큼직하게 표현됨으로써 흑백의 대비가 강하여 시원한 느낌을 주며, 상감기법의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도자기는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이다. 특히 '자기'의 제작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내는 자기는 최상의 기술로 완성된 섬세한 예술품이다. 한국에서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9세기말에서 10세기 초 무렵이다. 그동안 쌓아온 토기 제작 기술과 중국 월주요 자기의 영향으로 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에 가까운 중서부 지역에 있었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청자가 제작되었고, 초기에 비해 제작 기술이 정교해졌다. 고려자기는 11세기 중엽부터 눈에 띄게 발전하여 12세기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다. 특히 청자는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서 기와나 타일 같은 건축자재까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청자'의 완성과 도자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연 '상감' 기법의 개발이다. 고려는 13세기에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나라 안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는데, 이런 상황은 청자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색 청자의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은 점점 사라지고, 처자의 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14세기 후반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남부 지방이 황폐해지자 강진과 부안의 장인들 또한 살길을 찾아 내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때문에 자기 생산이 널리 확대되고 자기를 사용하는 계층의 폭이 넓어져 고려 말의 상감 청자는 조선시대 '분청사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려청자의 시작과 발전
한국에서 언제부터 자기를 생산했는지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로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청자를 직접 만들게 된 것은 중국 청자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부터이다. 삼국시대에는 약간의 중국 청자가 무덤에 넣는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중국 청자와 백자가 실생활에 쓰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이 위치한 중서부 지역에서 중국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은 자기를 생산하였다. 11세기에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 청자의 중심 제작지가 되었으며, 점차 완성도 높은 청자를 생산하게 되었다. 12세기 전반에 이르면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과 다양한 장식기법으로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려 청자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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