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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고려 전성기의 도자기

younghwan 2011. 2. 1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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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도자기의 제작은 차문화의 확산과 관련이 깊으며, 초기 가마터에 출토된 유물 중에는 차을 마시는 찻잔인 완의 비율이 50%를 넘기도 한다. 고려의 자기문화가 가장 세련되게 꽃피었던 시기는 고려 중기인 12세기였던 것으로 보이며, 국보로 지정된 고려청자의 상당수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기에는 완이 주로 만들었으나 중기에는 매병, 향로, 주전자, 베개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가 만들어 졌으며 그 형태나 빛깔에 있어서도 고려청자 고유의 특징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에는 청자를 생산하는 가마 또한 개경 중심에서 전북 부안, 전남 강진 등의 가마에서 우수한 품질의 도자기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중국 남송과 일본의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서 그 교역로 중간에 위치한 전북 부안이나 전남 강진이 도자생산과 중개에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어서 도자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칠보무늬 향로, 국보 95호, 고려 12세기. 뚜껑, 향을 담는 연꽃 대좌, 받침으로 구성된 향로이다. 여기에 다양한 기법으로 정교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향로를 받치는 앙증맞은 세마리 토끼이다. 최소한의 크기로 향로 무게를 지탱하도록 만든 장인의 솜씨가 뛰어나다.

고려 전기의 청자 향로로, 높이 15.3㎝, 대좌지름 11.2㎝의 크기이며 뚜껑과 몸통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향이 피어올라 퍼지도록 뚫어서 장식한 구형(球刑) 부분과 그 밑에 받침 부분으로 되어 있다. 구형 부분 곳곳의 교차 지점에는 흰 점이 하나씩 장식되어 있다. 몸통은 두 부분으로 윗부분은 둥근 화로 형태인데, 몇 겹의 국화잎으로 싸여있고 다시 커다란 국화잎이 이를 받치고 있다. 아래 부분은 향로 몸체를 받치고 있는 대좌로, 3 마리의 토끼가 등으로 떠받들고 있다. 대좌의 옆면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토끼의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나타냈다. 유약은 회청색으로 은은한 광택이 난다. 이 작품은 상감청자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고려 청자에서는 드물게 다양한 기교를 부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적인 섬세한 장식이 많은 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이 잘 잡힌 안정감 있는 뛰어난 청자 향로이다. <출처:문화재청>


도철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고대 중국의 제기인 정(鼎)을 모방해서 만든 향로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의식이나 제사에 향을 피워 놓기 위한 청자 향로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의 청동기인 정을 모방한 청자 향로가 많다. 이 향로의 안쪽 면에는 글자기 있지만 읽기는 어렵다. 그 아래쪽에는 파도와 배를 탄 인물상이 음각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도철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이 또한 고대 제기인 발이 3개달린 솥인 정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당시에 이른 형태의 향로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려청자 향로에는 동식물 형상을 한 것도 있지만 이처럼 중국의 청동기인 방정을 충실히 모방한 것도 많다. 몸체에 양각된 도철은 중국 청동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사자 장식 향로, 고려 12세기, 국보 60호. 12세기 청자 사자 향로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당시에 이런 종류의 향로가 여럿 있었던것으로 보이는데 송나라 사신이 극찬을 했다고 한다.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 21.2㎝, 지름 16.3㎝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사자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3개의 짐승모양을 한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데, 전면에 구름무늬가 가늘게 새겨져 있다. 몸체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를 배치하였다. 뚜껑은 대좌에 앉아있는 사자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사자의 자세는 뚜껑의 왼쪽에 치우쳐 있어 시각적인 변화에서 오는 조형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사자는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앞을 보고있는 자세이며,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표현했다. 사자의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소용돌이모양의 털이 표현되었고, 꼬리는 위로 치켜올려 등에 붙인 모습을 하고 있다. 유약의 색은 엷은 녹청색으로 광택이 은은하다. 구조적으로 보면 몸체에서 피워진 향의 연기가 사자의 몸을 통하여 벌려진 입으로 내뿜도록 되어있는데, 아름답고 단정하여 이 시기 청자향로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사자향로에 대해서는 중국 송나라 사람들도 극찬을 하였던 훌륭한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어룡 장식 향로, 고려 12세기


연꽃넝쿨무늬 주전자와 받침


연못 동자무늬 완(찻그릇), 고려 12세기

무늬를 찍는 틀을 이용하여 그릇 안쪽에 무늬가 도드라지도록 만들었다. 동자는 신성함, 다산, 풍요 등을 상징한다. 동자 무늬는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에 많이 보이는데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넝쿨무늬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중앙박물관>


국화 넝쿨무늬 완(찻그릇), 고려 12세기, 국보 115호.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상감청자 연구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청자 제작의 전성기인 12세기 제작 경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의종 13년(1159)에 죽은 문공유의 무덤에서 묘지와 함께 출토된 것으로 전해오는 작품이다. 상감 청자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12세기 중엽 상감 청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당시의 제작 경향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 청자의 전성기때 만들어진 청자대접으로 높이 6.05㎝, 입지름 16.8㎝, 밑지름 4.4㎝이다. 고려 의종 13년(1159)에 죽은 문공유의 묘지(墓誌;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을 적은 글)와 함께 경기 개풍군에서 출토된 것인데, 연대를 알 수 있는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굽부분이 좁고 아가리가 위로 벌어진 형태인데, 굽에서 아가리에 이르는 선은 완만한 선을 이루고 있다. 대접의 안쪽 가운데에는 원을 그리고, 그 안에 큰 꽃무늬를 새겼는데, 바탕을 백토(白土)로 상감하는 역상감기법을 쓰고 있다. 아가리 주위를 제외한 그릇 안쪽은 온통 덩굴무늬로 자유롭게 메우고 있다. 대접의 바깥쪽은 안쪽의 아가리 부분과 똑같은 문양으로 장식하였으며 중심부 5곳에 국화 한송이씩을 두고 있는데 꽃은 흰색으로, 잎은 검은색으로 상감하였다. 안쪽면이 모두 백상감된 단색인데 비해 바깥면의 호화스러운 국화꽃무늬가 잘 조화되어 전성기 청자 상감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장식효과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회청색 계열의 비취빛 유약이 매우 맑고 고르게 씌어져 있어서 표면의 색조가 은은하고 상감효과도 한층 돋보인다. 이 대접은 12세기 중엽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 발달하는 과정과 수준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서 고려청자 상감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연꽃잎 무늬 잔과 뚜껑, 고려 12세기. 잔과 받침, 고려 12세기


다연과 봉, 고려 12세기

큰 사발 형태의 그릇과 봉이 한 벌을 이루어 찻잎 등을 갈거나 빻는데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릇의 안쪽과 봉의 끝부분에 유약을 시유하지 않아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도구는 고려 사회에 널리 유행했던 차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전기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의 시작은 차 문화의 확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경기도 용인 서리, 여주 중암리, 양주 부곡리, 황해도 배천 원산리 등을 중심으로 한반도 중서부 일대 초기 가마터에서는 퇴적층에서 완의 출토 비율이 50%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다. 완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찻잔으로 굽의 접지면을 1.0cm 이상으로 넓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굽의 특징적인 형태를 '해무리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완(찻그릇), 경기도 부곡리 가마터 수습, 고려 9~10세기

중기
고려청자 중에서 가장 세련된 조형과 유색을 발현했던 시기로, 비취빛의 '비색'과 흑색 도안이 조화를 이룬 '삼감'기법이 특징이다. 중서부 지역에서 운영됐던 제작지가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으로 이동하면서 완 중심의 제작경향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종류의 그릇이 만들어지게 된다. 중국 도자기의 영향도 일면 확인되지만 고려인의 순수한 미감이 깃든 장식기법과 투명한 비색을 통해 고려만의 독창성이 있는 도자문화를 꽃피운 시기로 정의할 수 있다.


용무늬 매병편,
 

물가풍경무늬 완편, 대접편, 접시편


연꽃 모양 향로편, 연꽃무늬 뚜껑편

후기
왕실과 귀족게층의 내분으로 인해 정치질서의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몽골의 침입으로 사회.경제적 여건이 매우 어려워진 시기다. 후기 청자의 가장 큰 특징은 간지가 새겨진 그릇의 제작과 원나라 도자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간지는 세금으로 거두었던 그릇의 품질과 수량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되며, 원과의 교류를 통한 도자제작의 영향은 기형과 기종, 문양장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점차 그릇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유색이 퇴조하여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후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모태가 되었다.


구름 학무늬 베개편,


구름 학무늬 대접편,


구름 학무늬 뚜껑편


<기사>가 새겨진 국화무늬 접시. <정해>가 새겨진 여의두무늬 접시


물가 풍경무늬 접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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