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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고려 상감청자의 발전

younghwan 2011. 2. 1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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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청자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기술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것은 아마도 고려 상감청자일 것이다. 상감청자는 바탕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방법으로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기법에서 이전부터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이를 고려시대에 도자기에 적용한 것이다. 제작기법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감무늬를 만든 후 고온의 가마에 구우야만 했기때문에 재질의 차이 등으로 실제로는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상감기법은 12세기에 그 기술의 절정을 보였다고 하며, 상당히 많은 수작들을 오늘날까지 남겨 놓고 있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많은 도자기들이 이 상감기법을 이용해서 만든 도자기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비색과 함께 세계적으로 그 기술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 보물 903호, 고려 12세기. 대나무는 상감 청자에 자주 등장하는 무늬이다. 가까이에 있는 학들은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고, 멀리 있는 학들은 작게 표현되어 좁은 공간 속에서도 거리감을 느끼게 해준다.

고려시대의 만들어진 청자 매병으로 높이 38.9㎝, 아가리 지름 5.1㎝, 밑지름 15.6㎝이다. 어깨에서 팽배하게 벌어졌다가 몸통 아래에서 좁혀져 세워진 몸체와 각이 진 아가리가 달린 전형적인 고려 매병이다. 목은 낮고 잘룩하여 작고 낮은 아가리와 조화를 이룬다. 흑백상감 기법으로 몸통의 앞·뒷면에 가는 줄기의 매화와 대나무를 큼직하게 배치하고, 그 사이에 날아오르는 새와 학, 풀을 회화적으로 나타냈다. 병의 표면은 담청록의 맑은 빛깔로 투명하며, 미세하게 갈라진 빙렬이 전면에 나타난다. 회화적인 매(梅), 조(鳥), 죽(竹)의 상감무늬와 맑은 청자유가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출처:문화재청>


악기 연주하는 사람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선율에 맞춰 날개짓 하는 학의 모습에는 고려인의 여유가 스며있는 듯 하다. 사람의 자세와 얼굴표정, 구불거리는 소나무, 학의 몸짓과 같은 흥미로운 장면에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출처:중아박물관>


모란넝쿨무늬조롱박 모양 주전자, 고려 12세기, 국보 116호.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모란넝쿨무늬를 역상감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역상감 기법이란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 이외의 바탕 부분에 상감을 하는 것이다. 그릇 표면에 상감무늬를 가득 장식할 경우 표면이 번잡스럽게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12세기 중엽의 고려시대 청자 주전자로 고려자기 중에서 흔히 보이는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와 손잡이를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34.4㎝,아가리지름 2㎝, 배지름 16㎝, 밑지름 9.7㎝이다. 세련된 유선형의 모양에 완벽한 비례의 아름다움까지 곁들여 조화시킨 이 작품은 목의 윗부분에 흑백상감으로 구름과 학무늬를 그려 넣었다. 잘록한 목은 골이 지게 패여있어 주름이 잡혀 있는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병의 아래 부분 몸통에는 활짝 핀 모란과 피지 않은 봉오리, 잎들이 꽉 짜여진 채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그릇 형태나 유약색으로 볼 때 선이 매우 우아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어 고려인의 조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모란무늬 매병, 보물 346호,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청자에 구리 성분 안료를 이용하여 무늬를 나타낸 것은 드문데, 색이 붉게 나타나므로 이를 '진사'라고 한다. 특히 매병 장식으로 붉은 색이 사용된 예는 매우 드물다. 비슷한 청자 조각이 부안 유천리와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도 출토되었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청자 상감 매병으로 높이 34.6㎝, 아가리 지름 5.6㎝, 밑지름 13.5㎝이다. 붉은색 안료인 진사를 사용하여 주된 문양인 모란을 상감 처리했다. 어깨가 풍만하고 허리의 곡선이 매끄러우며, 작은 아가리가 매우 기품있게 마무리 되었고, 4엽의 연꽃 테두리 안에 국화와 덩굴을 흑백상감하였다. 몸통의 3면에는 모란을 크게 흑백상감한 후 모란꽃잎 끝에 붉은 안료를 상감해 넣었다. 굽다리 둘레에는 번개무늬를 연이어 둘렀고, 그 위로는 백상감으로 연꽃잎 모양의 테두리를 만들고, 꽃잎 안에 흑상감으로 풀을 장식해 넣었다. 이와 같이 전체를 3부분으로 나누고, 밑부분에 연꽃잎으로 띠를 두르는 형식은 12세기 전반 순청자 매병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특히 모란 꽃잎 끝에 붉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춤추는 듯한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자기무늬 매병, 보물 342호,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매병의 뚜껑을 덮을 때 몸체와 마찰을 줄이고 장식을 더하기 위해 주둥이와 어깨 위에 보자기를 덮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장식 효과를 얻고자 주둥이를 중심으로 네모난 보자기를 씌운 것 같은 무늬를 상감하였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매병으로 높이 35.4㎝, 지름 22.1㎝이다. 넓은 아가리 언저리에 부드러운 S자형의 옆선을 이루고 있다. 장식이 많은 것 같으나, 전체 모습은 단순하다. 특히 상감 장식을 꼭대기에만 두고 음각문을 몸체와 그 아랫부분에 두어, 전체적인 의장을 둘로 나누고 있다. 항아리의 어깨가 풍만하며 아가리 언저리에 국화 덩굴무늬를 흑백상감하였다. 정사각형의 비단 보자기를 어깨에 늘어뜨린 듯한 장식이 돋보이며, 연이은 구슬무늬가 은근한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몸통에는 4면에 한 가지의 모란 꽃과 모란 잎이 음각되어 있고, 허리 아래로는 물결의 분위기를 가지는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다. 병의 아가리에 백 상감의 번개무늬 띠를 두르고, 굽다리 가장자리에도 음각의 번개무늬 띠를 장식하였다. 바탕흙은 비교적 곱고 깨끗하며, 전면에 미세한 빙렬이 있고 청회색의 광택을 낸다. 모란무늬가 세워져 표현되어 있는 점도 독특하다. 이러한 음각과 상감을 병행한 기법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에서 나오는 파편에서 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국화 대나무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시가 있는 병, 고려 13세기

명종 지릉 출토품
명종은 고려 19대 임금이며 능호는 지릉이다. 현재 개성시 장풍군 지릉리에 위치한다. 지릉은 1916년 조사되었는데,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도굴 되어 석실 내부는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출토된 청자는 대부분 완, 접시 등 생활용기다. 당시 고려청자 전반에서 볼 수 있는 구름과 학.연꽃.국화.풀꽃.여지.죽순무늬가 모두 확인되며 전체적으로 맑은 비색을 띠고 있다. 규석을 받쳐서 갑발에 넣어 구운 상품으로, 당시 왕릉 부장품의 양상을 알 수 있다. 지릉에서 출토된 도자기는 능의 조성 연대를 통해서 그 제작시기를 12세기 후반 ~ 13세기 전반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사>에서 고종 42년(1255)에 몽고군에 의해 훼손 되었던 지릉을 다시 보수했다는 기사가 있어, 출토품 가운데 일부가 이떄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화무늬접시, 풀꽃무늬팔각접시


넝쿨 여의두무늬접시


구름 학무늬 완(찻그릇), 모란 넝쿨무늬 대접


죽순무늬완


연꽃무늬 퇴주기


접시

상감청자의 발전
'상감청자'는 자기의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이다. 다른 재료로 메워서 꾸미는 기법은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기법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 것은 고려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9세기 말 10세기 초로 여겨지는 상감기법의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며, 12세기 중엽에 이르면 상감청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상감 기법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고려가 이룬 뛰어난 업적으로, 비색유약과 더불어 고려청자의 특징이 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봉황무늬 꽃 모먕 대접

봉황과 용은 일반인이 사용할 수 없는 신분을 상징하는 무늬로 고급 청자에 장식되었다. 13세기 청자에 표현된 봉황무늬는 양날개를 활짝 뒤로 젖힌 채 날아가는 모습이다. 대체로 구름이나 연꽃넝쿨무늬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 학 모란 넝쿨무늬 합, 고려 13세기

간지가 있는 청자
고려후기 상감청자에 나타난 간자는 60간자 중 '기사', '임신', '계유' 등이 있다. 간지가 있는 상감청자는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7호, 계율리 18호, 수동리 1호 가마터 등에서 확인되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87년 충남 보령 죽도 앞바다에서 '기사'가 새겨진 대접과 접시가 100여점 인양되었는데, 이는 가아진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이동하던 중 침몰된 선박의 것으로 생각된다. 간지를 그릇 내부에 새긴 이유는 세금으로 거두었던 그릇의 품질과 수량을 안정화하고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 시기는 '기사'를 가장 이른 시기로 보는 것(1269년 또는 1329년)에는 이견이 없지만 학자들마다 60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임신>이 새겨진 구름 학무늬 대접, 고려 14세기


<기사>가 새겨진 국화무늬 접시, <기사>가 새겨진 물가풍경무늬 대접, 14세기 보령 죽도앞바다 출토


<을유사온서>가 새겨진 버드나무무늬 매병, 고려 14세기

입술부분이 깨진 매병이다. 어꺠에는 뽀족한 연판문이, 몸통에는 버드나무가 상감되었다. 버드나무무늬 사이로 <을유사온서>라는 명문이 흑상감되었는데, 사온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술을 빚어 공급하던 일을 담당했던 관청명이다. 몸통에 새겨진 관청이름으로 보아 술을 담았던 매병으로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 용무늬 병, 고려 14세기


구름 용무늬 큰 접시, 고려 14세기


<연례색>이 새겨진 구름 학무늬 대접, 고려 14세기

입술부분이 밖으로 벌어지면서 전체적으로 그릇의 양감이 줄어들고 있는 대접이다. 이것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나타나는 경향으로, 이후에 만들어지는 분청사기 대접의 원형이 되고 있다. 그릇 안쪽 중앙에 '연례색'이 흑상감되었는데, 이것은 고려왕실 연회를 담당하던 임시관청의 명칭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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