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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분청사기의 발전과 쇠퇴

younghwan 2011. 2. 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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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도자기제작기법으로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으로 20세기에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초에 많이 사용되었던 분청사기는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고려청자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쇠퇴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라고도 할 수 있는 도자기이다. 분청사기의 전성기는 15세기로 왕실에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도자기이다.

 고려 청자가 주로 귀족층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소량생산을 했던 것에 비해서 분청사기는 고려말 전국적으로 확산된 가마터 덕분에 대량생산되었다고 하며, 그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양질의 것과 일반적인 것과는 수준차이가 상당히 많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 각지에서 약 150여년간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세계적으로 순백의 백자를 선호했던 조류에 밀리고 일반서민층에서는 구리를 가공한 유기제품에 밀려서 역사의 무대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모란무늬 자라병, 조선 15세기, 국보 260호.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실생활에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납작한 몸체에 주둥이가 달린 형태로 자라를 닮아 '자라병'이라 불린다. 무늬가 대범하면서도 백토로 남겨진 부분과 세부를 표현한 기법에 흐트러짐이 없다. 박지된 부분에는 검게 칠하여 시각 효과를 높였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병으로 야외에서 술, 물을 담을 때 사용하던 용기이다. 자라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자라병이라 불리우며, 크기는 높이 9.4㎝, 지름 24.1㎝이다. 병 전체를 백토로 두껍게 바르고, 윗면에는 모란꽃과 잎을 간략하게 나타냈다. 무늬가 새겨진 곳 이외의 백토면을 깎아낸 후, 검은 색 안료를 칠하여 흑백의 대조가 대비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와 같은 무늬 장식기법을 박지기법이라 하는데, 분청사기 무늬 중 조형적으로 가장 뛰어나다. 이 병의 박지모란무늬는 구성이 대담하고 활발할 뿐만 아니라 무늬와 바탕면과의 대조를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바탕면에 검은 색 안료를 입혔다. 병의 밑면에도 모란을 선으로 새겨 장식하고 있다. 굽은 낮고 바닥 가장자리에 덩굴무늬 띠를 돌렸으며, 유약의 색은 회청색으로 광택이 있으나 바닥의 일부는 산화되어 변색되어 있다. 박지기법과 검은 색 안료의 사용이 잘 조화되어 분청사기 특유의 대범하고 활달한 분위기가 잘 나타난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국보 259호.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모습을 잘 보이고 있는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분청사기이다.

당당한 양감과 풍만함이 돋보이는 이 항아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인화 기법과 상감 기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분청사기의 활기차고 건강한 미감이 잘 드러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항아리로 아가리가 밖으로 살짝 말리고 어깨에서부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서서히 좁아진 모습을 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49.7㎝, 아가리 지름 15㎝, 밑 지름 21.2㎝로 기벽이 두껍고 묵직하다. 도장을 찍 듯 반복해서 무늬를 새긴 인화기법과 상감기법을 이용해서 목 둘레를 국화무늬로 새겼으며, 몸통에는 세군데에 덩굴무늬 띠를 둘러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위쪽 부분은 다시 꽃무늬 모양의 굵은 선을 둘러 구획을 나누고 위, 아래로 국화무늬와 파도무늬를 꽉 차게 찍어 놓았다. 몸통 가운데에는 네발 달린 용과 구름을 활달하게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쪽은 연꽃 무늬를 두르고 있다. 15세기 전반 분청사기 항아리의 전형으로 안정된 형태와 용 문양 표현이 뛰어나다. <출처:문화재청>


물고기 연꽃무늬 병, 조선 15세기

백색 분장토를 바른 후, 무늬 주위를 긁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박지기법이다. 그런데 이 병은 무늬 부분을 긁어내어 무늬는 회청색이고, 무늬 주위는 백색을 띤다. 이렇게 박지 기법을 반대로 베푼 예는 매우 드물며, 일반적인 박지 분청사기와는 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물고기무늬 편병, 조선 15세기, 국보 178호. 물고기 무늬가 크게 새겨진 이 작품은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도자기를 대표한 여러 작품 중의 하나이다.

조선 전기 분청사기 편병으로 배 부분이 앞·뒤 양면으로 납작한 편평한 모양이며, 크기는 높이 22.6㎝, 입지름 4.5㎝, 밑지름 8.7㎝이다. 백토을 두껍게 입히고 조화수법으로 무늬를 그린 위에 연한 청색의 투명한 유약을 칠하였다. 앞·뒷면과 옆면에 서로 다른 무늬와 위로 향한 두 마리의 물고기를 생동감이 넘치는 선으로 나타냈다. 물고기무늬는 분청사기 조화수법의 특징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데 조화수법이란 백토로 분장한 그릇에 선으로 음각의 무늬를 새겨넣고 백토를 긁어내어 하얀선으로 된 문양을 만드는 기법이다. 양 옆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위와 중간에 4엽 모란무늬을 새기고, 배경을 긁어냈으며 아랫부분에는 파초를 넣었다. 바탕흙은 회청색으로 백토분장이 된 곳과 분장이 안 된 곳과의 대조가 선명하다. <출처:문화재청>


물고기무늬 장군, 조선 15세기


물고기무늬 편병, 조선 15세기


연꽃 물고기무늬 병, 조선 15세기후반~16세기

초콜릿 색의 철사 안료를 사용하여 물고기와 연꽃을 대담한 구도로 시원스럽게 그려 놓았다. 막 뛰어오를 듯한 물고기는 지느러미가 활짝 펴진 모습으로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비늘은 점을 찍어 나타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학봉리 일대 가마터에서 제작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분청사기에 새겨진 글자
분청사기에 새겨진 글자의 종류에는 납품할 관청의 이름, 만든 사람과 지방, 그리고 제작 연도, 등급 표시 등이 있다. 각 지방 가마에서는 중앙 관청에서 사용할 그릇을 만들어 바쳤는데, 그릇들이 도난 당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1417)부터 그릇에 관청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 만든 사람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 것은 세종 3년(1421)부터인데, 그릇을 책임지고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분청사기 가마터
분청사기의 종류는 그릇을 흰흙으로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 상감.인화.조화.박지.철화.귀얄.분장의 7가지로 나누어지며, 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분청사기는 지역에 따라 특색을 보이는데 경상도에서는 인화 분청사기, 전라도에서는 박지조화 분청사기, 충청도에서는 철화 분청사기가 유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넝쿨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넝쿨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넝쿨무늬를 그린 힘찬 붓놀림이 끊어질 듯 유연하게 이어져 빠르게 흘려쓴 초서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예술성 짙은 철화 분청사기는 충남 공주시 학볼리 계룡산 일대에 가마터가 집중되어 있어 '계룡산 분청'이라 부른다.


넝쿨무늬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넝쿨무늬 장군,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넝쿨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여의두무늬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여의두무늬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풀무늬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풀무늬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귀얄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귀얄무늬 큰사발,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분장무늬 사발,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분장 기법은 백토를 탄 물에 그릇을 담갔다가 꺼내어 유약을 바른 것이다. 대개 손으로 굽다리를 잡고 거꾸로 담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백토 자국이 남는다. 주로 굽 언저리에는 백토가 묻지 않아 회흑색을 띠는 바탕흙과 대비를 이루게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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