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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조선 백자, 순백의 아름다움

younghwan 2011. 2. 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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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자는 분청사기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이다. 분청사기가 조선전기인 16세기까지 150년 정도 만들어진 것에 비해서 백자는 조선시대 전 기기간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조선 백자는 다양한 형태와 무늬들이 있는데 그 중 순수한 흰색의 자기를 순백자라고 한다. 유교사상이 사회전반을 지배한 조선시대에서 순백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백자는 검소와 절제를 중요시하는 사대부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졌으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에 까지 순백의 도자기들이 크게 선호되었던 점이 백자가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도자기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부 취향의 백자와 서민 취향의 분청사기가 전국적으로 같이 만들어졌으나, 15세기에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국가와 왕실에서 백자를 주로 만들도록 한 것이 전국적으로 지방가마들도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만들게 된 계기로 보인다. 게다가 동으로 그릇을 만드는 유기의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실생활에서도 분청사기의 수요가 많이 떨어졌던 것이 또다른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 도자기, 분청사기와 백자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이다. 분청사기는 고려말의 상감청자에서 변화.발전한 것으로 15세기에서 16세기 중엽까지 만들어졌으며, 귀족적인 고려청자와는 달리 활달함과 생동감이 돋보인다. 그런데 1467~1468년 무렵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어 국가가 주로 백자를 생산하면서, 그 영향으로 지방 가마들도 점차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만들게 되었다.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된 백자는 순백색의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조선 도자문화를 이끌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연꽃넝쿨무늬 대접, 조선 15세기, 국보 175호. 단순해 보이면서도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이다.

고려 연질 백자의 계통을 이은 작품으로 조선시대 상감 백자 중 가장 아름다운 예들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 상감 백자가 대개 유약이 거칠고 상감 솜씨도 미숙한데 비해 이 대접은 마무리가 깔끔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느끼게 하며 무늬를 나타낸 수법도 섬세하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 백자의 전통을 이은 조선 전기의 백자 대접으로 높이 7.6㎝, 입지름 17.5㎝, 밑지름 6.2㎝이다. 바탕흙은 석고와 같은 질감으로, 벽이 얇은 그릇이다. 아가리 부분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고 안쪽 윗부분에는 단순화된 덩굴무늬가 둘러져 있다. 바깥면에는 그릇의 위와 아랫부분에 두 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연꽃 덩굴 무늬를 상감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백자상감류는 조선시대 15세기 중반경에 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체로 경상도와 일부 지방가마에서 고려의 수법을 계승하였다. <출처:문화재청>


나무 모란 넝쿨무늬 병, 조선 15세기


백자 항아리


태일전이 새겨진 풀꽃무늬 잔과 잔받침, 조선 15세기

고려시대 연질 백자의 계통을 이은 조선시대 상감백자로, 잔받침 안쪽 측면에 세로 방향으로 도교 사당인 '태일전'이 새겨져 있어 용도를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모란 나비무늬 편병, 15세기. 조선전기의 백자라서 그런지 분청사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조선시대 상감 백자는 칠이 무른 연질 백자와 단단한 경질 백자가 있다. 연질 백자는 지방 가마에서 많이 만들었다. 이 편병은 전체적이 느낌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지방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차갑고 깔끔한 경질 백자와는 또 다른 미감을 자아 낸다. <출처:중앙박물관>


넝쿨무늬 병, 조선 15세기

순백자의 아름다움
'순백자'는 순수한 흰색의 자기로, 무늬가 없는 것을 비롯하여 음각, 양각, 투각 등으로 장식한 백자들을 모두 가리킨다. 검소와 절제를 중시하는 사대부들의 사상과 취향이 담긴 조선 백자는 여러가지 무늬와 장식보다 기본적으로 순백색이 강조되었다. 백자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인 흰색은 시대와 환경 또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윳빛 감도는 유백색, 눈같이 흰 설백색, 회색이 감도는 백색, 푸른색을 띤 청백색 등 다양하다. <출처:중앙박물관>


항아리, 조선 15~16세기. 가장 백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로 순백에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조형미가 느껴진다.

조선 전기 백자 항아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안정감 있는 당당한 형태에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백색 유약이 입혀져 기품이 있다. 표면에 흠이 없는 최상품으로 경기도 광주의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접시, 조선 15~16세기


병, 조선 15~16세기, 보물 1054호. 색이 희고 단단한 경질 백자는 세종 연간에 매우 세련된 수준에 오른다. 단정한 형태와 고르게 입혀진 맑은 백자 유약이 잘 어울린다. 조선 전기 백자 병의 대표작이다.

벌어진 아가리에서 긴 목을 지나 몸통까지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벌어져 풍만한 몸체를 이루었으며, 넓고 높은 굽다리를 갖춘 안정감을 주는 병이다. 묵직한 기벽에 푸른빛이 도는 백색 유약을 고르게 발랐으며, 광택이 은은하다. 이러한 백자는 경기도 광주에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만하고 단정하며 격식있는 병의 형태와 부드러운 색이 어울리는,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병의 하나이다. <출처:문화재청>


백자대접, 조선 15~16세기


소나무 매화무늬 연적, 조선 15~16세기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조선 15~16세기

조선 전기의 청화 백자 항아리이다. 몸체의 넓은 면에 여백을 시원하게 살리면서 매화와 대나무를 그렸다. 무늬에는 농담 변화가 있고 나무의 표현 등에도 조성왕조 초기의 격조와 품위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시가 있는 접시, 조선 15~16세기


항아리, 조선 15~16세기


매화 대나무 새무늬 항아리, 조선 15~16세기, 국보 170호

조선 전기에는 청화 백자를 만들 대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전문 화원의 몫이었다. 해마다 사옹원 소속 관리가 궁중 도화서의 화원을 인솔하고 관요에 나가 백자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리하여 조선 전기 백자에는 우아한 격조를 갖춘 작품들이 많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16.8㎝, 입지름 6.1㎝, 밑지름 8.8㎝의 뚜껑있는 백자 항아리이다. 뚜껑의 꼭지는 연꽃봉오리 모양이며, 어깨는 벌어졌고 잘록한 허리의 선은 바닥에서 약간 도드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굽의 접지면 바깥둘레는 약간 경사지게 깎아내렸다. 뚜껑의 꼭지에 꽃잎 4장을 그리고 그 주위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린것이, 조선 전기 회화에서 보이는 수지법(樹枝法)과 비슷하다. 아가리 가장자리에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덩굴무늬를 그리고, 몸체의 한 면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있는 매화와 들국화를, 다른 한 면에는 V자형으로 뻗어나간 대나무를 그렸다. 그림속에 농담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 전문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항아리는 조선 초기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무렵 백자 항아리의 형태와 문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뿔잔, 조선 15~16세기, 보물 1061호

뿔잔은 짐승 뿔 모양의 잔을 말한다. 삼국시대 이래 조금씩 제작되었는데, 조선시대 백자로 된 뿔잔은 매우 희귀하다. 뿔 머리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양감의 변화가 절묘하며 뿔의 끝에는 철사 안료를 칠하여 강조했다. <출처:중앙박물관>

소뿔 모양의 잔으로 뿔 끝을 검은색으로 자연스럽게 채색하여 사실성을 강조한, 길이 17㎝, 아가리 지름 5.3㎝의 뿔잔(각배)이다. 원래 이러한 뿔잔은 삼국시대의 가야, 신라 무덤에서 발견되는 우각형도기배라는 종류의 그릇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후 고려 시대에도 청자우각형배와 같은 예가 있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순백의 바탕흙에 묽은 청색을 띠는 백자유약을 전체에 곱게 칠한 것으로, 광주 번천리, 관음리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는 드물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끈무늬 병, 조선 16세기, 보물 1060호

잘록한 목에 한 가닥 끈을 휘감아 자연스럽게 늘어뜨려 끝에서 둥글게 말린 무늬가 특이하다. 단순하면서도 거침없이 그어 내린 절제된 필치는 예술적 경지를 보여 준다. 굽바닥에는 뜻을 알 수 없는 한글이 적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백자로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줄무늬를 그려 놓은, 높이 31.4㎝, 아가리 지름 7㎝, 밑지름 10.6㎝인 술병이다. 아가리가 나팔처럼 밖으로 벌어지고 말려 있으며, 목은 잘록하고 가늘다. 몸통은 서서히 넓어져 아랫부분이 볼록한 형태를 하고 있다. 문양은 푸른색으로 먼저 목에 끈을 감고, 그 가닥이 밑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둥글게 말린 모습을 그렸다. 그 위에 검은색 안료을 유연한 필치로 농담을 섞어가면서 운치있게 표현하였다. 굽은 높고 넓으며 굽의 안쪽 바닥에는 한글이 새겨 있다. 조선시대 철화백자는 15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졌으나, 15∼16세기에는 그 예가 드물다. 이 병은 16세기 후반경의 것으로 귀할 뿐 아니라, 끈을 목에 매고 밑으로 늘어뜨린 특이한 문양으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청화백자'는 코발트가 주성분인 안료를 사용하여 푸른색 무늬를 그린 백자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략 15세기 중반부터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화 안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값이 매우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백자에 청화 안료로 그리는 일은 궁중에 소속된 전문 화가가 맡았다. 따라서 조선 전기인 15~16세기의 청화 백자에는 우아한 품격을 갖춘 무늬들이 그려졌다. 17~18세기에는 여백을 살리면서 간결하게 그린 산수, 사군자 등의 무늬가 유행하였다. 19세기에는 청화백자가 더욱 대중화 되어 새로운 그릇들이 제작되고 무늬도 다채로워졌다.

'철화백자'는 산화철 안료를 사용하여 흑갈색 무늬를 그린 백자로 철화백자라고도 한다. 철화백자는 대체로 15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져 조선말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전기에 청화 백자와 마찬가지로 우아하고 세련된 궁중 전문 화가의 솜씨를 보이는 철화 백자가 만들어졌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이는 값비싼 청화 안료를대신하여 구하기 쉬운 철화 안료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철화백자에는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는 무늬들이 많은데, 특히 지방 가마에서 만든 철화백자의 무늬는 정겹고 소박하다.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국보 166호. 철사 안료로 농담의 변화를 주어 대나무와 매화나무의 서정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뛰어난 필치로 보아 궁중 화원의 솜씨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로 높이 41.3㎝, 입지름 19㎝, 밑지름 21.5㎝의 크기이다. 아가리 가장자리가 밖으로 말렸고, 목 부위의 경사면부터 풍만하게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둥근 몸체의 항아리이다. 농담(濃淡)이 들어간 검은 안료로 목과 어깨 부분에 구름무늬와 꽃잎무늬를 돌렸고 아랫부분에는 연속된 파도무늬를 장식했다. 몸체의 한 면에는 대나무를, 다른 한 면에는 매화등걸을 각각 그려 넣었다. 유약은 푸르름이 감도는 유백색으로,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은은한 광택이 난다. 이러한 항아리의 형태는 16세기 분청사기에서 보이며, 특히 중국 명대의 항아리와 비슷하다. 어깨 부분과 아랫부분에 표현된 무늬는 17세기 전반기의 무늬로 계속 이어진다. 매화, 대나무의 모양이나 밝은 유약색으로 보아 16세기 후반경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관음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매화와 대나무 그림은 솜씨가 뛰어나서 궁중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항아리는 철화백자 항아리로서는 초기의 것으로, 당당하고 풍만한 모양새에, 능숙한 솜씨로 매화와 대나무를 표현하여 문양과 형태가 잘 어울리는 우수한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포도 원숭이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후반~18세기, 국보 93호

광주 관요에서 만든 철화 백자의 대표작이다. 철사 안료의 깊고 진중한 색과 온화한 유백색 바탕 그리고 능숙한 필치가 함께 어울려 원숙한 세련미를 드러내고 있다. 포도 넝쿨 사이를 잽싸게 뛰어넘는 원숭이의 묘사가 흥미롭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로 적당한 높이의 아가리에 어깨부분이 불룩하고 아래로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이다. 크기는 높이 30.8㎝, 입지름 15㎝, 밑지름 16.4㎝이다. 직각으로 올라 선 아가리 둘레에도 무늬를 두르고 몸통에는 능숙한 솜씨로 포도 덩굴을 그려 넣었다.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포도 덩굴의 잎과 줄기의 생생한 표현으로 보아 도공(陶工)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전문 화가들이 그린 회화성이 짙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몸통 전면에 푸른색이 감도는 유백색의 백자 유약이 고르게 칠해져 있는 이 항아리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백자철화포도문호(국보 제107호)와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이다. <출처:문화재청>


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서울 종로구 중학동 건물터에서 출토되었다. 발견 당시 조각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17세기 전반에 관요로 운영되었던 경기도 광주시의 가마터에서 이 항아리와 비슷한 특징을 지닌 백자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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