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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신석기실] 토기의 출현과 지역성, 대외교류

younghwan 2011. 3. 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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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최초의 토기는 기원전 6,000년 경부터 사용한 덧무늬토기로 알려려 왔으며,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빗살무늬 토기가 가장 많이 발굴되고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제주 고산리에 기원전 8,000년 무렵의 토기가 발굴되면 그 연대는 현재 알려진 것 보다는 이른 시기에 토기가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신석기 시대에 사용한 토기 중 가장 먼저 사용한 형태인 덧무늬 토기는 주로 남해안과 동해안 등 해안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겉면에 진흙띠를 붙여서 무늬를 만든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토기로 전국적으로 발굴지역이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빗살무늬토기로는 길쭉한 포탄 모양에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한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 무늬 토기가 있으며, 지역적으로 약간씩 다른 형태와 무늬를 가지는 지역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화려하면서도 세밀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한 포탄모양의 토기이다.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각종 책자나 등장하고 있으며, 중앙박물관 선사.고고관 입구에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토기의 출현
토기는 인간이 흙과 불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 발명 이전에는 나무와 갈대, 가죽 등으로 그릇을 만들어 식량을 담거나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다. 새로이 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음식물의 가공법이 발달하였고, 음식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의 덧무늬 토기로 알려져 왔다. 덧무늬토기는 겉면에 진흙 띠를 붙여 무늬를 만든 것으로,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의 새로운 토기가 발굴됨에 따라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 연대가 앞당겨지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신석기시대, 강원 고성 문암리, 덧무늬토기는 기원전 6,000~4,000년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겉면에 진흙 띠를 엇붙여 무늬효과를 낸 것이다. 남해안의 여러 조개더미에서 빗살무늬토기층 아래에서 출토되고 있어 빗살무늬토기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덧무늬 토기는 강원도 고성, 양양 등 동해안과 전남 여수 등 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봐서는 해안가에서 어로생활을 하던 신석기인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항아리, 신석기, 강원 양양 오산리


바리, 신석기, 전남 여수 송도


바리, 강원 양양 오산리, 누른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에 사용한 토기로 아가리 주변에만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벌려서 무늬를 넣은 것이다. 동북 지역에서 남해안 지역에 걸쳐 분포하며, 동남해안 지역은 둥근 바닥이, 강원도와 동북 지역은 납작 바닥이 많다.

빗살무늬토기의 등장과 확산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형식의 토기로, 바닥이 뾰족한 포탄 모양이다. 토기 겉면은 점과 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초기의 빗살무늬토기는 겉면을 아가리, 몸통, 바닥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무늬로 장식하는 규칙성을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3,500년 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빠르게 펴져 나갔다. 이전의 덧무늬토기와 달리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토기인 바리(Bowl)이다.  중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길쭉한 포탄 모양으로, 시기에 따라 무늬구성이 다르다. 처음에는 아가리.몸통.바닥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무늬로 장식하였으나, 점차 무늬가 생략된다.


바리, 신석기, 서울 암사동.

 

바리, 신석기, 강원 양양 지경리


전북 군산 지역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인 바리(Bowl).


단지, 충북 청원 쌍정리 출토

빗살무늬토기의 지역성
빗살무늬토기는 그릇 생김새와 장식 무늬에 따라 크게 중서부지역.남부지역.동북지역.서북지역 등 네 개의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늬의 종류와 장식 방법에 차이를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기본적으로 지역성이 두드러지지만, 공통적으로 무늬가 점차 간략해지고 무늬의 면적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새로운 형식의 민무늬토기로 대체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남부 지방의 빗살무늬 토기
남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둘글며 새겨진 선이 굵다. 선의 시작과 끝에 홈이 깊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점차 아가리에만 무늬가 남게 되며, 무늬 없이 입술을 겹으로 만든 겹아가리토기도 나타난다. <출처:중앙박물관>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바리(Bowl) 


경남지역 (부산 영선동, 김해 수가리, 거창 임불리)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바리(Bowl)


바리(부산 금곡동)와  단지(Jar, 경남 김해 수가리)

동북지역 빗살무늬토기
동북 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납작하고 아가리와 몸통에 무늬가 있다. 평행한 두 선을 나선형으로 돌려 구획하고 그 안을 점과 선으로 채워 넣은 번개무늬 토기는 이 지역 신석기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함북 청진 유판


바리, 함북 경성 원수대, 바리, 함북 청진 유판



바리, 함북 청진 유판



바리, 함북 경성 원수대

무덤은 신석기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석기인들은 인간의 영혼은 영원할 것이라 믿어 죽은 이가 살아 있을 때 사용하던 물건을 함꼐 묻었다. 이 시대의 무덤은 다양한 형태로 확인되고 있다. 부산 범방과 경남 통영 연대도 유적에서는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주검을 넣은 움무덤이, 부산 동삼동과 경남 진주 상촌리 유적에서는 토기를 세워 묻은 독널무덤이 발견되었다. 경북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는 시신의 뼈를 모아 놓고 그 위를 돌도끼로 덮었으며, 강원 춘천 교동 유적은 생활공간인 동굴을 무덤으로 사용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강원 춘천 교동


항아리, 경남 통영 연대도


독널, 경남 진주 상촌리


도끼, 경북 울진 후포리, 신석기시대 무덤의 부장품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주변지역과의 교류
신석기인들은 주변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를 하였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과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다가 점차 일본 열도,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갔다. 당시의 교류는 자원뿐만 아니라 자원의 분포 상황 및 이용 방법이나 제작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교환하였다. 특히 한반도 동남 해안 지역 주민들과 일본 열도 주민들은 신석기시대 내내 활발하게 교류하였는데 이음낚시, 조개팔찌, 흑요석 등이 주된 대상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일본 조몬 토기, 남해안 조개더미에서 발견되는 조몬토기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또한 조몬토기의 한 형식인 소바다식토기도 형태와 무늬 구성이 우리나라 빗살무늬토기와 비슷하다.


흑요석기.격지, 동북.남부 지역. 화산암의 일종인 흑요석은 원산지마다 구성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성분분석을 통해 지역간 문화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흑요석은 백두산 주변 및 일본 규슈지역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꾸미개 옥, 강원 고성 문암리. 충남 서산 휴암리


긁개, 남부지역 


빗살무늬토기 분포도


* 자료참조: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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