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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청동기/고조선실] 농경문 청동기, 민무늬 토기

younghwan 2011. 3. 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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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농경문청동기가 있다. 대전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기원전 4세기 유물로 앞면에는 밭을 가는 모습을 뒷면에는 솟대를 표현한 것으로 당시에 생산과 풍요를 비를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 사람들의 높은 농경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로 한국인의 정신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솟대와 조선시대까지 그 풍습이 남아 있는 옷을 벗고 밭을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청동기시대에는 겉면에 무늬가 없는 민무늬 토기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지역과 시기에 따라서 다양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은 토기의 형태로는 붉은간토기, 송국리식 토기, 검은간 토기 등이 있다. 이 민무늬토기는 청동기 시대 이후에도 꾸준히 사용되었다고 한다.



농경문 청동기(앞면),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전지역에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물이다. 앞면에는 따비로 밭을 갈고 괭이로 땅을 일구며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농경문 청동기 앞면.


뒷면에는 오늘날 솟대를 연상시키는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뒷면 그림에 묘사된 솟대는 한반도 사람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농경문청동기는 앞면에 농경의례를 뒷면에 솟대를 표현한 청동의기로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된 듯하다. 둘레와 가운데를 구획한 후 다시 아래 위로 나누어 그림을 새겼다. 위에 있는 여섯 개의 구멍 가운데 양 끝의 두개는 닳은 흔적이 있어 어딘가에 매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의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모습은 농촌 마을의 솟대를 연상시킨다. 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매개자인 동시에 풍요를 상징하기도 한다. 뒷면의 왼쪽에는 사람이 손을 내밀어 앞에 있는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장면이 있다. 오른쪽에는 머리에 긴 깃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따비로 밭을 가는 모습인데 벌거벗은 몸을 상징하듯 성기가 노출되어 있고, 밭고랑 아래에는 또 한 사람이 괭이를 치켜든 장면이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 의하면 함경도지역에서 입춘 때 옷을 벗고 밭을 가는 행위를 통해 농사의 풍년을 비는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마을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생활이 본격화되면서 큰 규모의 마을들이 생겨났다. 움집이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집터 안에서는 화덕자리, 기둥구멍, 저장구덩이 등이 확인된다. 화덕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얕은 구덩이를 파거나 돌을 두르고 까는 등 다양한 모양을 띤다. 집터는 면적이 큰 세장방형.장방형의 형태에서 면적이 작은 원형.방형의 형태로 점차 변화한다. 마을 유적에서는 집터뿐만 아니라 논과 밭,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수로, 우물, 마을 전체를 두르고 있는 도랑, 나무울타리 등이 발견되어 주거.생업.방어 등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무덤
청동기시대에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고인돌, 돌널무덤, 독무덤, 돌무지널무덤, 움무덤 등 다양한 무덤이 사용되었다. 이 중 고인돌은 우리나라에 4만여 기가 분포하고 있는 만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이자 거석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판돌을 지상에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 무덤칸을 지하에 만들고 그 위에 굄돌을 놓은 뒤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굄돌 없이 덮개돌만 덮은 개석식으로 크게 구분된다. 그 밖에 덮개돌 밑에 작은 돌들을 넓게 깔아 묘역을 마든다거나, 무덤칸을 몇 단으로 깊게 파서 마련하고 각 단마다 돌과 흙으로 채운 형태도 확인된다. 한국식 동검 문화가 등장하는 기원전 5세기 무렵이 되면 점차 무덤칸을 돌 대신 나무로 만들게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에는 토기 겉면에 무늬가 거의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이 시대 토기는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다소 거친 진흙으로 빚어 한뎃가마에서 구웠으며 바닥이 납작하고 적갈색을 띤다. 민무늬토기 아가리에는 간단한 선무늬나 구멍무늬, 점토띠 등이 있는 경우도 있으며, 토기 겉면을 잘 문질러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낸 것도 있다. 이러한 민무늬토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여러 특징을 보이며 이후에도 꾸준히 사용되었다.


새김돋은 띠무늬 토기, 경남 진주 대평리


구멍무늬 토기, 함북 옹기 송평동


붉은간토기, 충북 충주 조동리(왼쪽)


송국리식 토기, 충남 부여 송국리


덧띠토기, 경북 상주 병성동


검은간토기, 인천 옹진 백령도(왼쪽), 충남 논산 원북리(오른쪽)


여러가지 민무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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