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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청동기/고조선실] 청동기시대 도구, 간석기와 청동무기

younghwan 2011. 3. 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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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세기부터라고 알려져 왔으며, 중국 동북지역, 만주지역과 같은 문화권으로 중국 황화유역과는 다른 문화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국가인 고조선과 관련이 많은 것으로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현재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 지배계층의 무덤인 고인돌 등에서 많은 연관성을 보이고 있는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청동기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고 권위의 상징물이나 제사를 지내는 의기로서 지배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한다. 실제로는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가 확산되고 정착생활이 이루어짐에 따라 마을이 생겨나면서 외부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 등이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공동체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계급의 분화가 생겨나는데, 이는 한반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당시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유적지로는 부여 송국리를 들 수 있으며, 이 곳에서 당시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를 주 무대로 하여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되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가 사용되었고 청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 농촌과 비슷한 대규모 마을이 생겨났고 집단 내에서는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이러한 청동기시대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하였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는 청동기와 더불어 철기가 사용되었다. 철기는 북부 지역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한반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은 사회 분화를 촉진하여 각 지역에서 정치 집단이 형성,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농경과 마을 공동체 생활
청동기시대에 들어 벼농사가 확산되고 정착 생활이 이루어짐에 따라 규모가 큰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대체로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근처의 평탄한 곳이나 구릉에 논과 밭을 일구어 벼, 조, 수수, 콩, 보리와 같은 오곡 농사를 지었다.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웃한 마을 사이에 경쟁이 생겨나고, 새로운 농경지를 둘러싼 분쟁도 일어났다. 이에 따라 외부 세력의 위협에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을 둘레에 도랑을 파거나 나무 울타라, 망루 같은 방어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반달칼(반월형 석도),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농업용 도구라 할 수 있다. 곡식의 이삭을 따는 도구. 몸체에 구멍이 뚫려 있고 이 구명에 끈을 꿰어 손에 걸어서 사용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간석기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형태가 정형화되었다. 청동기가 주로 무기와 의기 등 매우 제한적으로 만들어지 데 비해 간석기는 일상생활 도구로 널리 사용되었다. 간석기는 나무를 베거나 다듬는 데에 이용된 도끼, 대팻날, 끌 등의 공구와 곡식의 이삭을 따거나 베는데 사용된 반달칼, 낫 등의 농구 그리고 무기와 사냥도구인 칼, 화살촉 등이 있다. 특히 이 시기 대팻날, 끌, 홈자귀 등 목제 가공용 도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목기가 폭넓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도끼(경기 화성 동학산),자귀, 홈자귀, 대팻날, 끌. 도끼는 자루와 날 방향이 평행을 이룬다. 날의 평면은 조개날 형태이며, 몸통 단면은 원통형 혹은 장방형이다. 자귀는 나무를 깍아 다듬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날의 한쪽 면만 갈아서 만든 도구이다. 청동기시대 공구로는 나무의 벌목, 가공 등에 이용된 도끼, 자귀, 대팻날, 끌 등이 있다. 홈자귀는 'ㄱ'자형 자루에 묶여 스는 공구로 목재를 가공하는데 주로 쓰였다.


낫 (충남 부여 송국리. 경남 산청 소남리)


괭이, 함북 회령

지배자의 등장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독널무덤 등이 있으며, 이들 무덤은 주거지역과 구별된 공간에 따로 마련되었다. 이들 가운데 전망이 좋은 곳에 있는 무덤에서는 토기와 돌칼, 돌화살촉 뿐만 아니라 청동검, 거울, 옥 등 특별한 유물이 발견되는 것도 있어 당시 사회 내부에 신분적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의 힘과 기술, 도구가 필요한 수로가 굴착되거나 거대한 고인돌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이러한 일을 지휘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강력한 지배자가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루가 이단인 칼과 일단인 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기인 칼은 보통 검몸과 자루가 한 몽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슴베를 나무 자루에 끼워서 사용하는 것은 함경북도 지방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문화 요소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칼, 경북 청도 진라리


슴베 있는 칼. 칼과 칼자루. 부여 송국리 주거지에서 돌로 만든 칼이 나무자루에 붙은채 발견되었다. 돌칼과 자루가 연결되는 방식, 자루의 모양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송국리 유적에서 발견되기 이전, 이러한 형태의 돌칼은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돌창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바퀴날도끼와 톱니날도끼. 바퀴날도끼는 달도끼라고도 불리며, 가운데 구멍에 자루를 끼워 사용한다. 톱니날도끼는 도끼의 날이 톱니와 비슷하고 가운데 구멍에 자루를 끼워 사용한 것으로 별도끼라고도 한다. 의식을 진행할 때 앞에서 지휘하던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슴베 있는 화살촉, 화살촉은 돌을 갈아서 만든 화살촉으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에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사냥 이외에도 전쟁 무기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무덤에 넣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경우도 있다. 화살촉의 형태는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준 자료가 된다.


천전리 화살(복제), 강원도 춘천 천전리 주거지 내부에서 돌로 만든 화살촉이 살대에 결합된 채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토되었으며 화살을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살대는 싸리나무로 추정된다.


강원 춘천 천전리 유적. 화재로 폐기된 47호 주거지에서 각종 토기류, 석기류 및 화살대가 출토되었다. 화살대는 슴베형의 화살촉 11점과 함께 탄화된 채로 발견되었는데 화살촉과의 결합방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슴베없는 화살촉과 슴베있는 화살촉


창, 경북 상주 청리와 서울 양재 출토

한국의 청동기 문화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5세기 무렵을 전후로 하여 요령식 동검 문화와 한국식 동검 문화로 나누어 진다. 요령식 동검 문화는 랴오닝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청동기 문화이다. 유물로는 날이 곡선인 청동검을 비롯해서 투겁창, 화살촉, 부채모양 도끼, 끌, 거친무늬 거울 등이 있다. 한국식 동검 문화는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한반도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청동기 문화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청동 유물로는 날이 직선인 한국식 동검을 비롯하여 투겁창, 꺾창과 같은 무기류와 거울, 방울 등의 의기류가 있다. 특히 의기류의 정교한 무늬는 청동기 제작 기술이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청동기 문화는 일본으로 전해져 야요이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기원전 1세기 무렵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청동기 만들기
금속을 다루는 기술의 발견은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청동기는 채취한 광석을 녹여 얻은 구리와 주석이나 아연.납 등을 섞은 용액을 거푸집에 부어 만든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생긴 거친 흔적을 숫돌을 갈아 날을 세우는 등 마감처리를 한다. 잘못 만들어지거나 사용하면서 깨지고 부러진 부분은 수리를 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기술의 진보와 향상은 교역의 증대, 생산력의 향상, 사회적 분업 등을 가져왔다.


거푸집 - 끌, 경기 화성 동학산


충남 부여 송국리 출토 도끼 거푸집과  영암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도끼 거푸집 (복제)


칼 거푸집, 경기 용인 초부리와 평남 대동 출토

옥장신구 만들기
청동기시대 옥은 청동검, 청동거울과 더부어 소유자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였다. 옥을 만드는 재료에는 천하석과 벽옥이 주로 사용되었다. 대롱옥의 제작방법은 우선 원석을 일정한 형태로 마름질하고, 이를 고정한 뒤 돌송곳이 달린 활비비를 이용하여 구명을 뚫는다. 이때 고운 모래가루를 넣으면 구멍이 쉽게 뚫린다. 곱은옥은 갈라서 형태를 만든 다음 구멍을 내고, 마지막으로 정밀하게 숫돌로 다듬어 마무리한다.


옥 원석.부스러기, 경남 산청 묵곡리


옥원석 다듬기, 옥만드는 도구, 송곳


완성된 옥 장신구, 경남 진주 대평리, 전남 여수 평여동, 경북 칠곡 복성리

*자료참조: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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