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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선생을 모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

younghwan 2011. 7. 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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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변 안동 도산면 토계리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선조 7년에 건립된 퇴계 이황 선생을 위패를 모시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선조8년(1575)에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국왕이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7년(1615)에 월천 조목 선생을 종향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 제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이 있으며 이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처음에는 이 두분도 도산서원에 배향되기로 하였으나, 두분의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 지역에서 상당히 논란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서애 류성룡은 하회마을 인근의 병산 서원에, 학봉 김성일은 임하댐 부근의 호계서원에 모셔져 있다.

 도산서원은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존속된 전국 47개 서운 중 한곳이다. 1970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산서원 도서관인 동서 광명실에는 약 5000여권의 장서가 있었으며, 장판각에는 2790여판의 목판이 보관되고 있었다. 도산서원에 있었던 자료들은 인근에 건립된 박물관으로 옮겨져서 전시되고 있다. 도산서원내 건물로는 퇴계 이황 선생과 제자인 조목의 위패를 모신 보물 211호로 지정된 사당 건물인 상덕사, 보물 210호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서적을 보관하는 광명실과 장판각, 이황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던 농운정사 등이 있다. 도산서원은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서원 본래의 기능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지만, 서원 건축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낙동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경사진 지형에 계간식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서원내 어디에서든지 낙동강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건물들을 잘 배치하고 있다.

1. 도산서원 들어가는 길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학문을 수양하는 서원으로서는 입지가 상당히 좋은 곳으로 민가와는 상당이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으면서도 낙동간 건너편으로는 제법 넓은 벌판이 있어서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세상을 보면서 치세를 고민할 수 있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도산서원까지는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면서 가로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서 걸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도산서원 맞은 편에는 꽤 넓은 벌판이 있고, 민가들이 많은 마을도 찾아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은 마을과는 낙동강으로 막혀 있어서 멀리 떨어진 듯 하면서 가까이 있는 서원으로 좁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는 조선후기 이곳에서 시행한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시사단을 볼 수 있다.


도산서원 앞마당에는 도산서원의 내력을 말해주는 듯 오래된 고목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산서원 정문.


도산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도산서원을 대표하는 장면인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진 강당인 전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볼 수 있다. 계단 왼편에는 유생들이 거처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가 있고, 동쪽편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직접 후진을 양성하던 도산서당이 자리잡고 있다.

2. 퇴계선생이 제자를 가리치던 도산서당


도산서당은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퇴계선생이 거처하던 '완락재'라 불리는 방과 '암서헌'이라고 불리는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완락재'라 이름 지어진 퇴계 선생이 거처하는 작은 방


도산 서당 마당 한편에는 '정우당'이라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퇴계선생의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도산서원 동쪽편에 있는 작은 화단. '절우사'라고 불리우며 이 곳에 매,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심어 퇴계선생이 직접 가꾸셨다고 한다.


'절우사' 에서 본 도산서당 전경

3. 유생들이 거처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



도산서당 맞은 편에 있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이다. 도산서원은 강당인 전교당 아래에 동.서재가 있지만,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원내에는 농운정사외에도 역락서재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으며, 다른 서원에 비해서 고직사 건물또한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전국각처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온 선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운 정사는 '工'자 모양의 건물로 앞면 4칸 규모의 유생들이 기숙사이다. 양쪽에 강당처럼 유생들이 공부하는 작은 마루를 두고 있다.

3. 도산서원 장서를 보관하던 동.서 광명실


도산서원 건물배치에서 특이한 점은 강학공간 입구에 누마루 형태의 강당을 두지 않고 작은 출입문인 진도문을 두고 있으며, 그 양쪽에 책을 보관하던 장소인 동.서광명실을 두고 있다. 이는 낙동강과 서원으로 들어오는 길에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 위해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원 출입문 양쪽에 있는 누마루형태의 건물인 동.서광명실이다. 누마루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원 강당인 전교당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진도문. 전면의 경관을 막지 않도록 크지 않게 만들어 놓고 있다.


진도문 앞에서 내려다 본 도산서원 정원

4.강학공간의 중심인 보물 210호인 전교당과 동.서재


도산서원 전교당은 강당기동을 하는 건물로 보물 2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교당은 도산서원에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으로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온돌방 1칸과 앞면 3칸의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의 퇴계 이황선생이 직접 세운 건물은 아니니고 후에 서원이 조성되면서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전교당이 넓은 마루에 앉으면, 바람이 쉬원하게 통하며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강당이기는 하지만 이 곳에서는 일상적으로 공부를 하는 장소는 아니면 특별한 강론 등을 하는 서원의 상징적인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서재


도산서원 장판각은 서원에서 발간한 책의 목판을 보관하던 서고로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했던 곳이다. 지금은 이들 목판은 인근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여, 빈 서고만이 있다.

5.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신 상덕사(보물211호)


상덕사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인 조목 선생의 위패와 같이 모셔져 있다. 원래는 대표적인 퇴계 이황의 제자인 서애 류성룡 선생과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으나, 두사람간의 서열관계 등으로 지역민 간에 다툼이 있어서 서애 류성룔 선생은 하회마을의 병산서원으로, 학봉 김성일 선생은 천전마을 호계서원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상덕사 출입문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

6. 서원 관리인의 살림집인 고직사


도산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살립집인 고직사는 전교당 옆에 있는 상고직사와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가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서 고직사의 건물규모도 크고 방의 숫자 또한 많은편이다. 이는 서원이 주변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고, 다른 지방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많아서 그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고직사 출입문에서 내려다 본 전경.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마도 도산서원을 찾는 손님들이 상고직사에 묵었을 것으로 보인다.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에 주로 서원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묵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고직사 또한 다른 서원에 비해서 규모가 큰 편이다.


농운정사 옆 마당에서 올려다 본 상고직사


하고직사와 농운정사 옆쪽으로는 별채 건물로 역락서재가 있는데, 이 건물은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에 머물때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주로 이 곳 서원을 찾은 손님들이 묵는 장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도산서원 마당에 있는 도산서당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인 '열정'. 우물의 이름은 역경의 정괘 '정렬한 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고 한다.


도산서원 앞 마당 한쪽편에 있는 오래된 고목. 도산서원을 찾은 많은 이들이 이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목 뒷편으로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퇴계 이황선생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인 천연대가 있다.

 

7. 퇴계종택, 도산서원 인근 퇴계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집


도산서원에서 북쪽 언덕길을 넘어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퇴계 선생의 종손이 사는 종갓집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이 종택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문헌의 있는 옛 종택의 규모를 짐작하여 세운 집이라고 한다.



종택 건물은 앞면 6칸의 'ㅁ'자형 살림집으로 경북 안동지역의 사대부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은 사랑채를 별도 건물 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퇴게종택은 건물전체가 하나의 건물 처럼 보인다.



추월한수정은 퇴계종택 오른편에 있는 정자로 일반적인 사대부 저택의 별채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정자는 일반 주택과는 달리 축대를 쌓
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으며, 서원의 강당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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