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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세기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엇갈린 구멍을 뚫은 굽다리그릇을 비롯하여 많은 토기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토기들은 회전판을 이용하여 빚은 뒤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 이전의 토기보다 얇으면서도 단단하며 전문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6~7세기가 들어서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었던 토기가 많지 않거나 발굴된것이 많지 않아서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7세기 이후에 신라의 토기는 표면을 화려한 무늬로 장식하게 되는 이를 무늬가 새긴 도장으로 무늬를 찍었다고 하여 인화문토기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토기는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토기들도 많고, 무덤의 껴묻거리라기 보다는 불교식 장례풍습인 화장이 성행함에 따라 뼈가루를 담았던 뼈항아리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어며 그 중 가장 발달한 형태가 초록빛 유약이 곱게 입혀진 녹유뼈항아리가 보인다.

화려한 토기를 만들다.
7세기가 되면 신라인들은 토기 표면을 화려한 무늬로 장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인화문이라고 부르는데 꽃모양과 같은 무늬가 새긴 도장으로 무늬를 찍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인화문은 꽃 외에도 삼각형과 원을 찍기도 하고 물방울, 새, 구름 등 매우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표면의 한 부위에만 찍다가 나중에는 그릇 전체를 무늬로 뺴곡히 채웠습니다. 방법도 바뀌어 무늬를 하니씩 새긴 도장을 쓰다가, 하나의 긴 도장에 여러 무늬를 새겨 한번에 찍습니다. 균일한 무늬를 더욱 효율적으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인화문토기는 6세기말에 출현하여 8세기에 정점을 이루고, 9세기에 들어 점차 저물어 갑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긴목항아리, 경주 서악동


긴목항아리와 뚜껑항아리, 경주 서악동


굽다리병


합, 월성해자


합,경주


굽다리병


굽다리항아리


굽다리바리, 월성해자


세발달린 항아리


합, 황남대총북분, 월성해자.황룡사지


화장이 유행하다
고유의 토착종교를 믿어 왔던 신라 사람들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고, 왕실 역시 왕권 강화를 위해서도 불교가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이차돈의 순교라는 내적 갈들을 격은 뒤, 법흥왕(재위 514~540)은 527년 불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불교의 수용은 신라 사회에 큰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안정을 이룩하고 삼국통일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삼국통일 뒤에도 불교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끌어 안는 기여했습니다. 불교의 전래에 따라 신라에서는 땅을 파서 주검을 묻던 장례절차에서 주검을 태워 장사지내는 화장이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화장 뒤 남은 유골을 담아 묻은 뼈항아리들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뼈 항아리, 8세기, 경주


뼈 항아리, 9세기 경주 화곡리


집모양 뼈그릇, 8세기, 경주 북군동

집모양 뼈그릇
경주 북군동에서 출토된 뼈그릇입니다. 죽은 이의 영혼이 기와집에서 영원히 안주하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이 집모양 뼈그릇은 암.수키와를 가지런히 이은 팔작지붕의 당당한 기와집을 표현하였습니다. 벽에는 도장으로 찍어서 구성한 육각형.꽃모양 등 갖가지 무늬들을 새겼는데, 이 무늬로 통일신라 때인 8세기에 만들어진 뼈그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나무 한 그루를 가는 침선으로 표현하여, 이 집에 딸린 정원을 의도한 듯 합니다. 문짝과 안에 들어 있었을 작은 단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뼈그릇은 통일신라시대 기와집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녹유뼈항아리-안항아리, 8세기, 경주 남산


녹유뼈항아리-바깥항아리, 8세기, 경주 남산

녹유 뼈항아리
안팎으로 녹유가 입혀진 이 뼈항아리는 꽃모양 도는 나뭇잎모양의 도장무늬를 전면에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바깥항아리의 어꺠에는 짐승얼굴모양을 한 네개의 꼭지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잡귀가 범접 못하게 하려고 한 벽사적인 의미로 보입니다. 이 뼈항아리는 바깥항아리와 뼈를 담아 넣은 조그마한 단지가 있는데, 안단지에도 초록빛 유약이 곱게 입혀져 있습니다. 8세기, 어느 신라 귀족의 장례에 쓰였던 뼈항아리로 생각됩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