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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충주 청령헌, 충주목 관아 동헌

younghwan 2011. 10.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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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목 관아터에 조성된 관아공원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충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인 청령헌이다. 이 건물은 구한말인 1870년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다시 세운 건물로 건물 자체로는 오래된 건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한말에 지어진 관아 건물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앞면 7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는 그 규모가 큰편이다. 왼쪽 2칸은 온돌방,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오른쪽 1칸과 왼쪽끝 1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것을 1983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기존의 관아 건물 형식을 유지하면서 누마루를 비롯하여 세부적으로 구한말 건축양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신라시대에는 중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 성종 2년(983)에 전국에 12목(牧)이 설치될 때 충주목이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그 지위는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지방에서는 가장 큰 행정단위로 종3품인 목사가 수령인 고을로 남한강 조운과 죽령, 조령을 통해 영남내륙과 연결되는 육상교통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장이다. 일제강점기에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대전이 교통이 중심지로 바뀌면서 그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교통에서 소외된 지방의 작은 도시로 그 위상이 많이 줄어들었다.



충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 건물인 충주 철령헌.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중원군청 건물로 개조해서 사용하다가 현재의 모습을 1983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구한말에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중건하였다고 하며 앞면 7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왼쪽편은 충주목사가 주로 기거하면서 근무하던 개인적인 근무공간으로 온돌방 2칸에 누마루1칸이 있다.


옆쪽에서 본 청령헌.


동헌건물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충주목사가 민원인을 접견하거나 재판 등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공간이다.


청령헌이라고 적혀 있는 현판.


대청마루를 오르는 계단.


동헌 툇마루


동헌 오른쪽 끝 1칸은 누마루 형식의 마루방으로 충주목사가 손님들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마루방 난간


오른쪽 마루방은 옆에서 보면 대청마루보다 높게 설치하여 정자같은 누마루 형식으로 문을 활짝 열면 쉬원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조선후기 건물에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대청마루 천장.


익공계열의 공포


기둥을 받치는 초석


충주목 관아 동헌


뒷쪾에서 본 모습. 뒷편에 작은 툇마루를 두어서 작은 휴식공간을 만들고 있다.


청주목 관아 동헌인 청령헌.



충주 청령헌, 충주시 성내동 154-1
동헌은 옛 관청인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건물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충주목 동헌으로, 당시 충주 목사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고종 7년(1870)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 자리를 옮기면서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 오른쪽 끝 1칸은 마루방,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 왼쪽 끝 1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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