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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옛문서로 본 조선의 수도 한양

younghwan 2011. 11. 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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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1394년 조선이 수도로 정한 이래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은 이름은 한성부로 실제로 그 영은 현재의 종로구와 중구를 포함한 영역보다 좁은 범위로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과 도성 바깥 일부를 관할하기도 했지만 원칙적으로 도성안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한성부는 정2품인 한성판윤이 최고 책임자 였으며 행정구역으로는 오부와 방, 계.동으로 구성되었으며 인군 10만명 내외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 도성은 태조대에 처음 성곽을 쌓고 종묘와 사직,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여 태종대에 궁궐과 관아, 가로와 시전, 그리고 수많은 주택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아 수도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면서 도시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던 것을 조선후기 숙종,영.정조대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복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역사를 알리기 위한 공간으로 볼 수 있으며, 서울의 역사와 살았던 사람들이 생활모습과 제도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서울과 관련된 행정문서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런지, 박물관에는 전시된 문서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편이지만 조선시대 법률과 행정을 대표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는 법전인 경국대전과 대전통편, 한성부 수장인 한성판윤교지, 행정문서라 할 수 있는 호구단자 등 당시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옛문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 조선의 수도 서울에 대한 옛기록
"그윽히 보건대 한양은 안팎 산과 하천의 형세가 우수함이 옛날부터 칭송되어 왔으며, 사방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거리가 균등하고 배와 수레가 잘 통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 도읍을 정하여 후세에 영원토록 전하는 것은 참으로 하늘과 사람의 뜻에 합치되는 것입니다" - 태조실록-
"하늘이 내신 왕도 해동의 으뜸이라. 국호는 조선이요. 도읍은 한양이라. 여염은 억만가요, 성첩은 사십리라. 예악 법도 이러하니 거룩할사 한양일다. " - 한양가 -
"경상.전라.강원도와 서북면과 동북면 백성 11만 8천70여명을 징발하여 처음으로 도성을 쌓게 했다. ...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키니, 임금이 날씨가 심히 춥다고 하여 밤에 공사를 금지하였다." - 태조실록 -



용비어천가, 1447년. 조선왕조 건국 과정을 노래한 서사시로 세종 때 간행한 최초의 한글책이다.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임금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총 10권으로 간행한 초간 원본이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경국대전, 조선 세조 때 착수하여 성종 때 완성한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이다. 중앙과 지방의 직제를 기록한 이전에 한성부는 수도의 인구와 토지, 도로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고 규정하였다. 총 6권 4책이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대전통편, 1785년. 경국대전을 기본으로 하여 정조 때 간행한 법전으로, 경국대전의 내용에 수정사항과 보충사항을 추가한 형식이다. 이전에 한성부의 관원 수를 조정한 내용이 실려 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한성부 판윤 교지(1877년)과 한성부 우윤 교지(1868년). 강난형(1813~?)을 오늘날의 서울 시장인 한성부 판윤과 우윤으로 임명하는 문서이다. 강난형은 1868년에 한성부 우윤이 되었고, 그 후 사헌부 대사헌,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벼슬, 토지 등을 내려주는 명령서이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한성부 준호구(1756년)와 호구단자(1762년). 한성부에 거주하였던 이명상에게 관청에서 발급한 준호구와 그의 호구단자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 겸 주민등록등본으로 과거시험, 병역, 소송 등 공적인 업무와 노비소유, 가문을 증명하는 기본 자료이다. 호구단자는 각 호주가 3년마다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을 적어서 관청에 보고한 서류로 인구조사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서울 사람들의 호적관리는 한성부에서 담당하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증수무원록, 1792년. 영조 때 편찬한 법의학서이다. 원나라의 왕여가 지은 무원록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보충한 것으로, '무원록'은 죽은 자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는 책이라는 뜻이다. 조선말기까지 살인사건 조사 지침서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금의랑 계첩, 1729년. 의금부 근무자들의 모임을 기념하는 글과 그림을 모은 첩이다. 의금부는 조선시대에 왕명을 받을어 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은 사법기관으로, 반역죄, 왕족의 범죄 등의 특별한 일을 재찬하였다. '금부', '금오' 등으로 불리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한성부 관문, 1861년. 한성부에서 충청감영에 보낸 공문서인 관문이다. 충청도에 사는 사람이 묘지 소송을 낸 것을 한성부에서 최종 판결을 한 내용이다. 한성부가 다른 지방의 분쟁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냈던 사례를 보여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성북동 포백훈조계 완문 절목, 1805년. 영조 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군대 주둔지를 설치하고, 그 주민들에게 시전의 옷감을 표백하고 메주를 만드는 일을 맡겨 생계를 유지하도록 한 사실을 기록한 문서이다. 성북동 주민들의 옛 생활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신간가황찰요, 신속, 조선후기.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설명한 책이다. 구황찰요와 구황보유방을 합쳐서 편찬하였다. 솔잎, 메밀, 토란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조리법과 굶주린 자의 치료법을 한문과 한글로 기록하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제중신편, 강명길, 1799년. 정조 때 편찬한 의학서이다. 병의 원인을 중시하여 서술하였고, 진료사례를 수록하여 실용적이면서도 간편하게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의보감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의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과 사산금표도. 조선팔도총람은 인문지리적인 관점에서 작성하여 서울을 실제보다 크게 강조한 전국지도이다. 서울과 주변의 산, 강, 궁궐, 관아, 성곽과 성문 등을 자세히 표기하였다. 독도는 울릉도 위에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사산금표도(1765년)는 서울 주변 사방의 산에서 나무를 베거나 무덤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그 경계를 글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다. 산의 위치와 이름을 적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점선으로 표시하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북한지, 성능, 조선후기. 숙종 때 북한산성 공사 책임자였던 승려 성능이 공사 내용을 편집하여 간행한 지리지이다. 북한산성 축조 배경과 과정, 수비인원, 건물, 지형 등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여 당시 북한산과 산성의 자세한 안내도 역할을 한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속병장도설, 1750년. 영조 때 중앙군의 훈련방법, 편성, 무기의 형태와 명칭 등을 설명한 병서이다. 성종 때 편찬한 병장도설의 체재를 따른 것으로, 성종 이후의 새로운 무기와 진법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후기 병법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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