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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은 광주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으로 삼국시대 한성백제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을 쌓은 주장성에서 오늘날과 같은 산성의 모습으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전기에도 효과적으로 몽고군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였다. 임진왜란 이후 북방에 등장한 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조 2년부터 4년에 걸쳐 주변 지형에 따라 오늘날의 형태와 비슷하게 축조되었으며, 행궁과 관아시설, 4개의 대문과 장대 등을 갖추어 유사시를 대비하고 했다. 행궁은 서쪽의 청량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향으로 건축되었고, 중요 관청의 위치와 방향 및 도로 역시 행궁의 방향을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산성안에는 산성을 축조할 때 동원된 승려들을 위한 사찰이 여러개 건립되었다. 남한산성은 인조 초기에 쌓은 원성 이후에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병자호란 당시 방어에 취약점이 드러난 남쪽편으로 중심으로 여러곳이 보강되면서 옹성과 신성 등이 증축되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의 축성
남한산성 수축에 대한 논의는 조선 초기부터 제기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이괄의 난과 후금의 위협이 거세진 인조 재위 초기에서부터였다. 이에 조선 인조 2년(1624)부터 축성이 시작되어 인조 4년(1626)에 역사를 마쳤다. 수어사를 지낸 홍경모가 쓴 '중정남한지'에 따르면 인조 2년 7월에 이원익, 이귀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총융사 이서가 각성과 응성 등의 승려를 불러 각각 승도들을 거느려 지역을 나눠 맡도록 하고 별장 문희성, 이일원과 비장 이광춘 등으로 감독케 하였다고 한다. 이 역사로 성벽과 함께 4대문과 장대, 행궁을 갖추게 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도, '고지도첩', 17세기 후반. 이 그림은 남한산성 주요시설물을 간략하면서도 상징적으로 그려놓고 있는데, 지금 남아 있는 남한산성 유적들을 비교하면서 찾아보기 좋은 그림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의 성곽과 중요 건축물, 도로망을 간략하면서도 상징적으로 그렸다. 성곽의 경우 옹성과 대문 등을 자세하게 표현하였다. 산성 내부구조의 경우 최고의 권위 건축물이 행궁을 강조했으며, 중요 관청과 창고.사찰 등 핵심정보를 수록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도(복제품), '동국여도'.

'동국여도'는 도성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방어체제의 큰 틀을 파악하기 위해 편찬된 지도이다. 간략하게 그린 남한산성과 광나루.송파나루를 통해 경성과 연결되는 간선도로를 그려 넣었다. 삼전도비가 보이며 회화적인 특색이 두드러진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송파환도(복제품), 김윤겸, 조선후기

강을 건너기 위해 송파나루에서 배를 부르는 모습을 그린 김윤겸의 그림이다. 강 건너 산 위에 남한산성의 성곽이 보인다. 정선의 송파진도에 보이는 남한산성 표현과 유사하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실황도와 광주부 지도

남한산성실황도는 그림식 지도이다. 산줄기와 물줄기, 도로망, 건물의 규모와 성곽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산줄기가 회화식으로 세밀하고 아름답게 강조된 데 특징이 있으며 간선도로가 정확히 표현되어 있다. 광주부지도는 1899년에 편찬된 '광주부읍지'에 수록된 광주부의 지도이다. 1872년에 광주부에서 제작한 '광주전도'와 내용이 동일하고 채색부분만 다르다. 산과 하천의 표현이 선명하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광주부
조선시대 광주부의 영역은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 의왕시, 군포시 일대와 화성군 매송면 일부지역, 안산시 일부지역, 서울 송파고, 강동구 일부지역, 남양주시 와부읍 일부지역에 걸쳐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광주부 지도는 북쪽이 아니라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이는 남한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행궁을 중심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광주는 수운과 육로가 주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이었으므로 지도에 물길과 도로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광주의 중앙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광주지역의 행정과 군사를 담당하는 중심지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숙묘보감.

숙종 재위 46년간의 치세 내용을 기록한 서적이다. 숙종대에는 도성방위를 위해 북한산성을 쌓았으며, 남한산성의 증축과 개축도 많이 이루어졌다. 당시 수어사 김석주가 남한산성을 지키는데 필요한 군병을 동원하여 산성을 방어하도록 청하는 상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이 개축과 증축
병자호란 후 조선은 남한산성의 취약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개축과 보강에 들어갔다. 원성 외에 외성을 쌓아 동북쪽을 보강하고 남쪽에 옹성을 설치하여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영조와 정조 역시 성곽의 개축과 시설 보강에 나섰다. 또한 홍이포의 위력을 실감한 조선은 남한산성에 포루를 설치하고 여기에 호준포, 불랑기 등을 옮겨 배치하게 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행궁 모형. 남한산성내 복원이 진행중인 남한산성 모형이다.

국왕이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행궁은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항전하였고, 이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 등이 능행길에 머물러 남한산성행궁을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에는 국왕의 침전인 내행전과 정무를 보는 외행전, 광주유수의 집무시설인 좌승당과 일장각, 종묘를 모시는 좌전 등이 있다. 이 모형의 자리에는 <남한산성도>에서 남한산성행궁이 위치한 곳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기와. 행궁 내 왕의 침전 주변에서 발견된 수키와와 암키와이다. 수키와는 파도문과 접선문, 기하문 등 다양한 문양이 시문되었으나 암키와는 문양이 없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암막새와 수막새, 왕의 침전인 내행전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이들 수막새는 모두 꽃을 표현한 것으로 다양한 모양과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꽃잎의 개수와 모양이 각기 달라 다채로운 모습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각종 전돌. 건물의 바닥에 깔았던 전돌은 모서리가 편평한 것과 서로 짜맞추기 위해 모서리에 낸 것으로 나뉜다. 이 전돌은 재덕당지와 좌승당지, 북 행궁지 등에서 고루 발견되었는데, 각 건물지 별로 다양한 형태의 전돌이 사용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 여장

남한산성 성곽의 특징 중 하나는 여장에 전돌을 사용하였다는 데 있다. 여장이란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남한산성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드문 전돌로 축조한 여장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로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돌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옮겨졌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장에는 총을 쏘는 공간이 총안이 있는데,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과 먼 곳을 겨누는 원총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여장 1타와 1타 사이에는 화살을 쏘는 공간인 시안이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조총.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동아시아에 주력무기로 등장한 조총은 포로투칼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이 임진왜란 당시 사용하여 큰 충격을 주었던 무기이다.

조총은 지화식 점화법에서 발전된 화승식 점화법의 화기로서, 방아쇠를 당기면 화승을 물린 계두가 화혈을 점화시켜서 발사된다. 이것은 총신이 긴만큼 발사거리가 길고 견착조준으로 명중률이 높은 화기이다. 조총의 성능은 널리 인정되어 일찍부터 포르투칼, 동남아,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조총 탄환, 철환, 남한산성 출토


활과 화살, 18세기


갑옷(재현품), 전쟁 때 적의 창검이나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옷이다.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현대에 재현한 복장이다. 회는 투구로 나무와 쇠 등을 덧붙이고 화려한 장식과 계급을 나타내는 문장 등이 양각되어 있다.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현대에 재현하였다


창과 깃대, 의전용 깃대로 날 끝부분에 군기를 달기 위한 구멍 두개가 뚫려 있다. 창날은 단면이 삼각형이고,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 있다..


마경초집언해, 조선후기

'마경초집언해'는 이서(1580~1637)가 말의 질병과 치료방법에 대한 기록을 발취하여 '마경' 4권을 간행한 후, 이를 다시 요약하여 언해한 책이다. 이서는 총융사로서 남한산성을 수축한 인물이다. 남한산성 내 숭렬전에 배향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현자총통, 1609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했던 화포이다. 이후에는 포르투칼에서 전래된 블랑기가 이 화포를 대체하게 된다.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화포로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리하여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 천.지.현.황자총통이라 붙였는데, 이 것은 그 중 크기가 3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불랑기와 마반차(복제품). 구한말까지 주력으로 사용된 블랑기이다. 소형포로 쉽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서구 화포의 급격한 발전으로 구한말에는 크게 효용을 보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블랑기 화포

불랑기는 15세기 경 서구제국에서 제작되어 동양으로 전해진 신식무기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가져와 전쟁에 사용하였고, 조선후기에는 주력화포로 사용되었다. 모포에 해당하는 포신과 자포에 해당하는 약통인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전되 자포 여러 개를 준비해 두었다가 갈아 끼우면서 연속 사격할 수 있는 화포이다. 마반차는 고종 때 신헌이 개발한 것으로 화포를 이동하고 사격을 위해 조준하는 데 사용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