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두,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표현한 문자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리하여 크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두의 사용은 삼국유사에서 전해오는 향가를 비롯한 문학작품, 안압지를 비롯한 유적지에서 출토된 목간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 남산신성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이두로 표기한 문학작품으로는 삼국유사에 신라향가 14수, 균여전에 고려향가 11수가 전해진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한 삼국시대 목간들 <중앙박물관>
훈점을 사용한 금광명경, 보물 734-1호, 고려. 훈점은 한문을 읽을때 독해를 쉽게 하기 위해 표시해 두는 것으로 오늘날의 문장부호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합천 해인사, 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유사, 삼국유사에 신라향가 14수가 전해지는 고려시대 일연이 저술한 역사책이다. <서울대 규장각, 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고대문자전>
2.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세종28년, 1446년)
조선시대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은 한글이었다. 표의문자인 한자 대신 우리말을 소리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글자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세종대 집현전을 중심으로 언어와 문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세종 25년(1443)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이어 3년 뒤에는 이를 해설한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포하였다. 훈민정음 초성의 기본자음인 'ㄱ,ㄴ,ㅅ,ㅁ,ㅇ,'은 '혀,치아,입술,목구멍' 등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떠 만들었고, 중성인 '.,ㅡ,ㅣ'는 각각 '하늘과 땅, 사람' 삼재의 모양을 본 떠서 만든 세 글자를 기본으로 하였다. 초성과 중성 모두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글자를 만들어, 음양오행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훈민정음은 그 원리와 조직이 과학적이고 어떤 소리든 원형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세종대 한글 창제 이후 글자의 보급을 위해 많은 편찬사업이 일어났는데 주로 성리학의 사상이나 지배이념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과 민간 생활 속 신앙인 불교경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는 일들이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이 간행에 참여한 왕조창업을 칭송하는 노래인 '용비어천가'와 세조가 수양대군시절부터 저술에 참여한 석가의 일대기를 기록한 '월인석보상절'을 들 수 있다.
훈민정음을 풀이한 책, 훈민정음 해례본(복제품), 국보 70호인 이 책은 간송미술간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일반에는 잘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 발견된 해례본 또한 소장자가 숨겨놓고 있어 일반인들이 잘 보기 힘든 문화재이다. 중앙박물관에서 복제본을 볼 수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이 지은 서문에 이어 해석과 쓰임법인 용례, 정인지의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이름은 '훈민정음'이며, 해석과 용례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므로 보통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중앙박물관>
용비어천가.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으로 15세기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왕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읊은 노래 가사와 그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중 연회에서 연주되었으며 모두 125장이다. 집현전 학사인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 등이 간행에 참여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윤음언해. 정조의 말을 정리하여 한글로 적어서 출판한 책으로 주로 궁중에서 읽었을 것으로 보이는 책이다. 조선후기 한글이 일반민중에게 보편화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781년부터 1784년까지 정조가 내리 각종 윤음(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의 언해본 12종을 모은 책. 아래 윤음은 1781년 제주 3읍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지자 각종 구휼과 헤택을 베풀라는 내용이다. 윤음을 한글로 옮겨 모은 것은 궁중이나 일반 백성에게 읽히기 위해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규장각>
3. 금속활자를 사용한 서적인쇄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많은 서적의 번역과 간행이 이루어졌는데, 서적의 간행을 위한 금속활자 또한 한자활자와 함께 만들어졌다. 세종대에 사용한 계미자 활자를 이용해서 서적을 간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와 서적은 세조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인 을해자이며 이 금속활자로 인쇄한 '능엄경언해'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을해자와 함께 사용된 한글 금속활자인 '을해자병용 한글 금속활자'와 금속활자로 인쇄한 '능엄경언해' <중앙박물관>
오륜행실도를 찍은 한글 나무활자
4. 세조의 불교서적 언해본 간행
조선 7대왕이자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은 1453년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12세의 어리나이에 즉위한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수양대군시절부터 '월인석보상절'을 저술하는 한글의 보급과 불교 경전의 번역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조가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던 까닭에 속죄하려는 마음으로 불교를 믿었다. 세조는 1461년(세조7)에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던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많음 불경들을 한들로 번역했는데 지금도 이 당시에 번역된 불경 언해본들이 많이 남아 있어, 당시의 한글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월인 석보. 세종28년 수양대군이 한글로 쓴 석가의 일대기. <중앙박물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이 책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것과 『석보상절』, 혹은 『월인석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3종류의 간행본이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년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월인석보』는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처음 간행된 권 1, 2, 7, 8, 9, 10, 11, 12, 13, 14, 15, 17, 18, 19, 23, 25와 재간행된 권 4, 21, 22 등 총 19권이 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 간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조선 전기 훈민정음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오대산 상원사를 다시 세우며 쓴글(복제품), 월정사성보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국보 29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세조이지만 월인석보상절을 비롯하여 한글 사용에 가장 공이 큰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세조10년(1464) 세조의 총애를 받던 신미스님 등이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지은 글이다. 한글로 번역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다. 신미스님이 부처님께 기도한 일을 전해들은 세조가 쌀, 무명, 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도 신미스님의 기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중앙박물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세조때 불경 간행을 위해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불경의 한글 번역본이다. '성문종합영어'의 저자인 송성문씨가 기증한 보물급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불경을 간행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세조 11년 간행한 '대방광원각수라라요의경'의 한글번역이다. 간경도감에서 국역한 불교관련 서적 중 '원각경'은 전래하는 것이 드믈기 때문에 한글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불경의 제목은 '방정하고 광대한 깨달음의 세계인 원각을 설명하는 으뜸이 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중앙박물관>
몽산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한 책으로 송성문씨가 기증한 고문서이다. 원나라 몽산스님이 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추리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학여 마는 책이다. 불교의 평상수행법인 선을 닦는데 필요한 내용이며 작은 글씨의 한글로 토를 달고 형을 바꾸어 한글 번역을 붙였다. <중앙박물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 경. 한글 보급에 많은 공헌을 한 세조가 간행한 한글이 들어간 불경이다.인도의 승려 불타다라가 693년 백마사에서 간행했다고 알려졌으나 7세기말에 중국에서 만든 위경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석존과 문수보살 등 12보살 사이의 문답을 통해 대원각의 신묘한 이치와 그 관행을 설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각경>이라 줄여 불린다.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목판본 <원각경>언해본과 달리 본문의 언해가 없고 한글 구결만 수록되어 있다. 1465년에 원각사를 준공한 후 이책을 간행하기 위해 주조한 을유자로 찍었으며 구결을 위한 한글한자도 함께 만들었다. 한 면에 한문 대.중.소자, 한글 중.소자 등 다섯 종류의 활자가 사용되었다. <서울대규장각>
진원권공(보물 1058호), 조선 9대왕이었던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인 인수대비와 성종의 계비 정현대비가 왕의 명복을 빌며 펴낸 책이다. 불교 행사와 의식에 대한 내용을 한글로 풀어 쓴 책으로 한글의 표기가 당시 실제적인 소리로 기록되어 있어 국어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경기도박물관>
부보님의 은혜를 강조한 불경인 '부모은중경언해', 사찰인 용주사에서 발간한 책자이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설명하고 보은하는 도리와 죄를 없애는 방법을 밝힌 불경이다. 원래 명칭은 '불설대부모은중중경'이고 간략하게 '은중경'이라고도 불린다. 언해본으로도 많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정보가 부모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1796년 수원 용주사에서 다시 간행한 판본이다. 용주사본의 그림은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박물관>
5. 유교경전과 한시의 번역, 학습교재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성리학을 공부했던 당시의 유학자들은 한글을 크게 배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유학자들은 생각한 것 만큼 한글을 배척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어린이들이 쉽게 유교경전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한글주석이 달린 유교경전이나 학습서, 옛 한시 등을 책으로 발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일반백성들이 성리학 이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가 주도로 사서삼경 등을 한글로 번역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반가 자제들이 유교경전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주석을 달아서 사용한 학습교재로서 많이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조때 한자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든 한석봉의 '천자문'이 대표적인 학습교재라 할 수 있다.
한글 번역을 덧붙인 맹자. 사서 가운데 하나인 '맹자'의 원문을 한글로 풀어낸 책으로 맹자언해'라 불린다. 처음 간행한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었으며, 같은 내용을 다양한 시기에 출판한 책으로 국어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중앙박물관>
중국 시인 두보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책. 유은겸 등이 당나라 두보의 시를 풀이하고 분류해서 만든 책이다. 성종12년에 간행된 책으로 한시를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으로 조선 초기 한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중앙박물관>
분류두공부시언해, 15세기, 중국 당나라 시인어었던 두보의 시를 한글로 번역하여 만든 책이다. 왕의 명을 받아 번역하여 1481년(성종 12) 12월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책은 본문은 한문으로 된 원문과 한글 해석으로 되어 있어 15세기 한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경기도박물관>
이씨향약언해, '이씨향약, 송나라의 향약에 관한 책'을 한글로 번역한 책. 중종13년 김안국이 '이씨향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책이다. 언해본을 만든 목적은 부녀자와 하층민을 교육하고자 한 데 있다. '주자종손이씨향약'은 중국 북송대 이대균이 마을 약속으로 만든 향약과 향기를 남송대 주희가 합쳐 수정 보완한 책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용 한자자습서. 1577년 최세진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자습서이다. 최세진은 당시 한자 학습에 사용된 책들이 실제 사용되는 글자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하여 초목, 자리, 복식 등에 쓰이는 글자들 위주로 이 책을 편찬했다. 상.중.하 각권에 1,120자씩 총 3,360자를 수록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어린이용 한자 교과서인 천자문. 명필 한석봉이 글씨를 쓴 천자문의 글씨체는 오늘날도 한자를 배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중으로 따라서 쓰는 것으로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 아주 컸다고 할 수 있다. 한글 주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선조때에도 한글의 영향력이 생활전반에 미쳐있음을 알 수 있다. 천자문은 한문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해 교과서로 쓰이던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조 16년(1683) 명필인 석봉 한호가 중국 양나라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을 해서로 쓴 것이 처음 간행되었다. 한글로 훈과 음이 달려 있는 이 책은 처음 간행된 이래 왕실.관아.사찰.개인에 의해 여러 차례 간행되어 초학자의 한자.글씨 학습에 큰 영향을 주었다. <중앙박물관>
소학언해. 중국 송나라 주희가 어린이들에게 유교의 기본 덕목인 충.효.예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적 목적에서 편찬한 책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에 널리 읽혀졌다. 전시된 책 역시 이원익 종가에서 전승되어 오던 것이다. 종이의 질이 우수하고 글씨도 미려한 점 등으로 보아 명문 집안의 서책임을 알 수 있으며, 한글본으로 국어사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충현박물관>
4성이 표기된 한자 자전인 전운옥편.'강희자전'을 본떠서 만든 한자 자전으로 정조때 처음 간행되었다. 글자 아래에 한글로 음을 표시하고 4성은 운자를 달았다. 이전의 옥편에 비서 운서 없이도 간편하게 글자를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879년에 간행하고 그 목판은 춘방(시강원)에 보관했다" 글이 적혀 있다. <중앙박물관>
몽유편, 장혼, 1810년, 국립중앙도서관. 장혼은 스스로 목활자를 만들어 아동과 청소년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간행하였는데 어휘집인 <몽유편>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난해한 한자나 일상적인 용어 등에 한글로 토를 달았는데 책의 대상을 아동을 포함한 일반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6. 궁중에서 한글의 사용
내훈.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엮은 여성들을 위한 지침서이다.성종의 어머니로 흔히 인수대비라 불리는 소혜왕후 한씨가 중국 역대의 교화서에서 부녀자의 훈육에 필요한 부분을 뽑아 언해한 책이다. 1475년 간행한 것을 1611년 훈련도감자로 3건 3책으로 증간하였다. 한글로 토를 달아 원문을 제시하고 이어 언해문을 실었다. 이후 여성을 위한 책은 모두 순한글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대규장각>
인목왕후의 필적을 모아 엮은 필첩. 인목왕후는 김제남의 딸로 선조의 계비가 되어 1602년 왕비에 책봉되었다. 본 첩에는 1603년에 쓴 한글 편지, 당나라 왕발의 <등왕각서> 일부, 육조 도잠의 <사시>, 저자 미상의 칠언율시 등 4편의 시문이 실려 있다. 한글편지는 1603년 11월19일에 쓴 병문안 편지이다. <서울대규장각>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쓴 일기, 아마도 궁녀나 여자가 쓴 일기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효종 임금의 한글 편지. 이글 이외에도 국왕이 남긴 한글문서가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왕의 누이나 딸 등 친인척에게 보낸 서한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볼모로 있을 때 장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이다. 인조 19년(1641) 1월 8일에 작성되었고 내용은 청음 김상헌의 고생에 대한 연민을 적고 있다. 이편지는 외국에서 썼다는 점과 주격 조사 '가'를 표기한 점이 특징이다. <중앙박물관>
한중만록, 혜경궁 홍씨가 한글로 쓴 궁중일기. 정조 사후에 작성한 글로 내용의 진정성에 비평을 많이 받는 일기이다.
익종간첩.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그의 누이에게 쓴 편지이다. 누이를 위해서 한시를 일일이 한글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의 누이에 대한 정을 느낄 수 있다. 효명세자는 그의 아버지인 순조를 위해 창덕궁 후원에 사대부 가옥형태의 건물인 연경당을 짓고, 연경당 앞의 소박한 공부방인 의두합에서 사색을 즐기던 다정다감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19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2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금도>는 누이에게 보이기 위하여 그림으로 된 시를 한글로 적어 보낸 것이다. 이밖에 누이가 익종에게 보낸 편지와 시, 이에 대한 익종의 답과 시를 나중에 비낀 것이 있다. 누이에게 보낸 편지와 한시는 한글로만 되어 있어서 여성의 전형적인 문자 생활을 잘 보여준다. 누이에게 한시를 보내면서 한글과 음과 뜻을 풀이한 것도 있다. <서울대규장각>
자경전진작정례의궤, 1827년. 의궤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조선후기 한글이 대중화되어 생활 깊숙히 파고 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은 실제로 궁중에 일하는 여자들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27년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 순조 내외에게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여 자경전에서 치른 진작례를 거행한 사실을 기록한 의궤늘 번역한 책. 3권3책의 필사본으로 중궁과 세자빈에게 보이기 위하여 한글로 번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규장각>
생신날 올린 다례 제사 음식 목록. 의례절차 중 궁녀들이 그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글로 그 기록이나 지침서를 남겨 놓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대표적인 한글 서체로 궁서체가 있는데 이는 궁녀들이 사용한 글씨체라고 하며, 필체가 상당히 깨끗하고 또박또박하다. <고궁박물관>
옷감목록. 궁서체로 깨긋하게 옷감목록을 적어 놓고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왜 없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궁박물관>
비녀목록. 궁궐 궁녀들이 한글로 깨끗히 정리해 놓은 비녀목록. 행사에 필요한 비녀목록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궁박물관>
면사포용 금박도장 <고궁박물관>
7. 하급관리의 실무서
노걸대언해. 중국책자에 한자음과 한글번역을 실어 놓은 책으로 조선시대 한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한다. 중국어 회화체의 책으로 전해온 <노걸대> 원문에 두 종류의 한자음을 달고 우리말로 언해해 놓은 책이다. 상.하 2권 2책으로 상권 처음에는 변욱이 쓴 서문이 있고 하권 끝에는 교정관과 서사관의 명단이 실려 있다. <노걸대언해>류의 책들이 갖는 자료적 가치는 다른 역어류들과 마찬가지로 비록 언해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구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중세국어의 자료들이 불경이나 유교의 경서를 언해하였기 때문에 당시 일상 구어를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나 이 책은 원문이 회화체의 책이기 때문에 당시 우리의 구어로 번역된 것이다. 원문 밑에 기록되어 있는 두 종류의 한자음은 왼쪽의 것이 정음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속음으로, 당시 중국 한자음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서울대규장각>
중간노걸대언해, 18세기. 역관들은 실용적인 회화가 가능했던 사람으로 대중무역에 종사했던 상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국제정세에 민감했던 사람들로 보인다.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 및 역과시용으로 사역원에서 간행한 중국어 교습책이다. 14세기에 고려상인이 중국에 장사하러 가면서 실제로 부딪치는 여러 사건을 생생한 대화체로 기록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첩해신어, 사역원 편. 조선시대 국가교육기관인 사역원에서 펴낸 일본어 교재이다. 1676년(숙종 2)에 사역원에서 역관들을 교육하기 위해 간행한 일본어 학습용 교재, 본서의 초고를 쓴 이는 강우성으로,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온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618년(광해군 10) 경에 초고를 완성하였고, 이를 1676년에 간행하였다. 1415년(태종 15) 사역원 설치된 후 처음에는 한학과 몽학만 개설되었다가 나중에 왜학이 개설되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신어' 또는 '신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서의 체재를 보면, 큰 글씨로 일본 문자를 쓴 다음 그 오른쪽에는 한글로 발음을 적고, 왼쪽에는 우리말로 그 뜻을 기록하였다. <서울대규장각>
방언집석, 1778년. 조선시대 어휘집으로 각 어휘에 대해 5개국어로 적어놓고 있다고 한다. 서명웅이 중국어, 한국어 만주어, 몽골어, 일본어 등 5개 언어의 어휘를 함께 풀이해 놓은 어휘집. 4권 2책의 필사본으로 <보만재잉간>에 수록되어 있다. 서명응이 각 언어에 능한 역관의 도움을 받아 1778년에 완성하였다. 87개 부류에 5,006개의 어휘가 실려 있다. 전시한 면을 보면 '신자'라는 한자는 우리말로 '몸'이라는 뜻이며, 중국어로는 '신즈', 만주어로 '버여', 몽골어로 '버여', 일본어로 '미'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서울대규장각>
마경초집언해, 조선후기. '마경초집언해'는 이서(1580~1637)가 말의 질병과 치료방법에 대한 기록을 발취하여 '마경' 4권을 간행한 후, 이를 다시 요약하여 언해한 책이다. 이서는 총융사로서 남한산성을 수축한 인물이다. 남한산성 내 숭렬전에 배향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아동 구호 대책을 적은 서적인 '자휼전칙'. 흉년에 걸식하는 어린이와 버려진 아기에 대한 구호 대책을 적은 책이다. 1783년에 정조의 명에 의해 편찬, 반포되었다. 국왕 정조의 윤음과 구호 방법을 규정한 사목으로 되어 있고, 뒷 부분에 한글 본이 붙어 있다. 걸식 어린이와 버려진 아이에 대한 음식 지급 규정, 임시 거처 운영 방안 등 구체적인 구휼책이 실려 있다. <중앙박물관>
신간가황찰요, 신속, 조선후기.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설명한 책이다. 구황찰요와 구황보유방을 합쳐서 편찬하였다. 솔잎, 메밀, 토란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조리법과 굶주린 자의 치료법을 한문과 한글로 기록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두창경험방, 박진희. 천연두의 증세와 처방을 기록한 의서
무예와 전술을 정리한 책, 무예도보통지. 정조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책자 중 하나이다. 태권도를 비롯하여 현재 성행하는 많은 무예들이 이 책자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조선시대 책자 중의 하나이다. 정조의 명에 의하여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장교 백동수가 무예와 전투기술을 표준화하고자 만든 책이다. 전투할 때 사용되는 각종 무기를 비롯하여 24가지의 서로 다른 무예가 그림과 함꼐 설명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성재무도홀기. 고종34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화려한 궁중 무용 연습을 위한 교본으로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성재란 우리나라에서 만든 고유한 성어로 궁중 연회에서 사용된 무용을 일컫는다. 정재는 궁중 잔치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차리거나 상을 거들 때 그리고 입장하고 퇴장할 때 베풀어지는데, 성재의 연습과정에서 사용된 것이 성재무도홀기이다. 이 홀기의 양식은 성재의 이름을 쓰고 다음에 초입 배열도가 놓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재무도 홀기는 한문본과 한글본 두 본이 남아있고, 한문본의 서두와 홀기 내용,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하여 동이 주도한 회작연 때 만든 홀기임을 추정할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8. 양반 사대부들의 한글 문예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 허균이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다. 적서 차별을 타파하고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그의 혁명사상을 저술하였다. 길동은 홍판서의 서자로 태어나 천대를 받고 자라다가 집을 뛰쳐나와 활빈당을 조직한다. 양반계급을 괴롭히고 가난한 양민을 돌보다 조정의 회유로 병조판서까지 되었으나 고국을 하직하고 율도국에 정착해 이상적 왕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김만중의 구운몽. 구운몽의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 중 한명인 서포 김만중이 쓴 한글소설이다. 작자가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한글 소설이나 한글번역 소설 중에는 당대의 유학자들이 쓴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는 어린딸의 교육이나 노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이런류의 글들을 썼다고 한다. 조선 숙종 떄 서포 김만중이 한글로 지은 고전소설이다. 2권1세속의 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꿈속의 주인공 양소유가 세속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말년에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중앙박물관>
한글가사가 있는 고현동 선비 성은 김경흠의 문집 <중앙박물관>
가곡원류, 선비들의 인기노래책, 영조35년(1759), 고종 13년(1876) 박효관과 안민영이 편찬한 시조집이다. <가곡원류>에는 당대 유행한 시조가사를 많이 수록하였으며 부르기에 편하도록 부호를 표시하였다. <중앙박물관>
창량보, 유홍원의 거문고 악보, 정조 3년(177). 조선후기 거문고와 비파의 명인 김성기의 거문고 가락을 담은 악보이다. 이 악보는 유홍원이 자신의 거문고(양양금)을 탈 때 참고하였던 것이다.
낭술신보, 거문고의 달인 김성기의 악보, 정조 12년(1765). 영조 때 활동한 거문고와 비파의 달인 김성기의 거문고 가락을 수록한 악보로 김성기의 아들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하였다.
심청전, 19세기경 <서울역사박물관>
판소리 사설집, 근대 판소리 명창 정권진(1927~1986)의 판소리 사설집이다. 판소리의 전승은 주로 구전으로 이루어지지만 기업을 돕기 위해 가끔 사설집을 참고하기도 한다.
9. 일반 민중과 여자들의 한글 사용
원이 엄마가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편지, 이응태묘 출토 간찰 -만사. 한글로 쓴 이 편지는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 한글로 잘 표현하고 있다. 안동시 정상동에 있던 이응태의 무덤에서 출토된 한글편지이다. 그의 부인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적어 관 속에 넣어둔 것이다. 이 편지는 함께 출토된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와 더불어 조선시대 부부의 사랑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자료이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와 한문편지, 복식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중앙박물관>
" 한글편지 내용,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련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떠나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루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시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건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이씨부인이 쓴 의식주 백과사전, 규합총서(1809). 한글로 쓰여진 생활백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순조 9년(1809) 빙허각 이씨가 여성을 위해 엮은 한글 생활지침서이다. 이 책에는 요리, 음식, 염색, 세탁, 밭갈기, 가축기르기, 제충, 태교, 구급방 등 여성들이 꼭 알아야 할 생활의 지혜를 상세하게 서술했다. 일반 실용서적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혀졌다. <중앙박물관>
혼인때 주고 받은 글 <중앙박물관>
사리그릇을 싼 비단보자기, 보물 928호.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양주 봉인사 부도암 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구를 싼 비단 보자기이다. 보자기의 중앙과 가장자리에 발원자인 고종 대 김규홍과 그의 부인의 이름, 한글 발원 문구인 '귀남자성취', '귀남축원', '창성발원'과 같은 소원을 비는 글이 궁체의 먹글씨로 쓰여 있다. <중앙박물관>
글 편지를 적은 버선본.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님의 버선을 지어 드리기 위해 만든 버선본이다. 한글 부분은 두 분이 발에 맞는 버선을 신고 오래오래 사시고 훌륭한 자손을 두어 집안이 번창하고 복록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중앙박물관>
한글편지<경기도박물관>
한글편지, 전주이씨 덕천군파 백현상공 종중 소장 <경기도박물관>
한글제문, 조선후기, 제사를 지낼 때 쓰던 글이다. <경기도박물관>
당사주책, 조선후기, 당사주란 사주를 토대로 하늘에 있는 12별의 운행에 맞춰 사람의 일생 운세를 점치는 방법을 말한다. 당나라 때이허중이 만들어 당사주라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이허중의 원문 위에 알기 쉽게 그림을 넣어 많이 썼다. <경기도박물관>
오행 길흉법, 이 책은 사람의 이름을 오행에 맞춰 풀어서 일생 운세가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책자이다. <경기도박물관>
한글로 쓴 거래계약서, 개인간 거래내용을 한글로 적은 것으로 계약서라 할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
10. 구한말 대한제국에서의 한글
한글 문법책, 국문정리. 한글 문법을 최초로 정리한 연구서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크게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897년 이봉운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문법 연구서이다. 갑오개혁 이후 우리글은 언문에서 국문으로 격상되었으나 제대로 된 연구서와 전문가가 없었다. 이 책은 독립신문에 실렸던 서재필과 지석영의 논설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한글만으로 글을 짓고 띄어 쓰기를 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중앙박물관>
독립협회에서 만든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 건양 1년(1896) 4월 서재필이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이다. 서재필은 <독립신문> 창간사에서 '전국 국민을 위한 대변자가 되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고발할 것'을 천명하였다. <독립신문>의 발간은 민중을 위한 민간 발행의 신문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으나, 대한제국 정부와의 마찰로 1899년 12월 4일자로 폐간되었다. <중앙박물관>
사민필지. 구한말 선교사가 만든 세계지리서로 당시 사람들에게 서구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 책이라 한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한글 세계지리서. 1889년에 한글본 초판이 간행되었고, 1895년에 학부에서 한글본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하였다. 본서의 서문에서 저자는 천하만국 사람과 풍속이 마치 한집안처럼 서로 통하는 지금 국제교섭을 원할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국의 이름.지방.폭원.산천.소산.국정.국세.군사.풍속.학술 등 천하의 형세를 잘 알아야 하므로 이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본 전시도서는 1889년에 간행된 한글본이다. 구한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구세계를 알리는 데 있어 큰 기여를 한 책이다. <서울대규장각>
태서신사람요. 중국에서 발간된 서양역사를 정리한 책으로 구한말에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18~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정리한 책. 영국인 마간서가 지은 책을 1895년에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이제마태가 구역하고 청나라 학자 채이강이 필술하여 만들었다. 역자 이제마태는 서문에서, 근대 서양의 역사를 통해 구민.보국의 방책을 얻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중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번역하였다고 하였다. 본서는 1897년에 조선의 학부 편집국에서 간행한 것으로, 간행 연도를 볼 때 아마도 청나라에서 이 책이 편찬된 직후 바로 조선에 수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에서 서양의 역사와 문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규장각>
국민소학독본, 1895년 학부편집국에서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과서이다. 국한문 혼용체로 우리나라 전통역사와 세계 공물과 선진문물을 소개하고 있다. 1910년 11월에 발매금지 처분을 당하였다. 개항 이후 사회가 급변하면서 이에 맞는 근대식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외국어 교육기관인 동문학 설치를 시작으로 1895년 '교육입국조서'가 발표되고 전 국민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소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근대적 개화에 필요한 각 분야의 인재양성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들이 설립되었다. 또한 교과서를 편찬하여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알리고 더불어 민족의식을 함양시키고자 하였다. <고궁박물관>
동학농민전쟁 참가자들의 연명서, 사발통문. 동학농민전쟁 당시 지도부의 목숨을 건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사발통문이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사발을 엎어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명단을 돌려 적은 통문이다.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 간부 20여명이 고부성을 함락하여 군수 조병갑을 비롯한 악독한 관리를 없애고 전주감영을 함락시킨 뒤, 서울로 곧바로 향할 것을 결의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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