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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舍利)는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유골이며, 사리구(舍利具)는 사리를 담는 그릇과 그릇 속에 넣은 불상, 작은 탑, 경전과 구슬, 장신구 등의 공양물을 뜻한다. 사리는 일반적으로 유리나 수정용기에 담고, 그 용기는 다양한 재질의 용기에 넣어서 탑에 안치한다. 사리구는 불국사삼층석탑, 감은사지 삼층석탑, 미륵사지석탑 등 웬만한 유명한 탑에서는 대부분 발견되고 있다. 발견된 사리구들은 금속세공을 비롯하여 모든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었기때문에 예술적 가치 또한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탑은 해체/보수하기가 쉽지 않고 도굴하기 또한 상당히 어렵워 미륵사지석탑처럼 석탑의 해체/보수과정에서 최근까지 사리갖춤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 사리갖춤

우리나라에는 6세기 중엽에 사리가 전래되었고, 사리를 모신 다양한 목탑(塔), 석탑이 세워졌다. 백제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으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도 해체, 수리과정에서 최근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갖춤(국보 327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절터 목탑지 심초석 사리공에서 발견되었다. 바깥쪽에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제 사리합, 금제 사리병이 있다. 동, 은, 금으로 만든 용기에 사리를 모시는 백제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백제 사리엄장구를 확인하는 양식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갖춤(국보 327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288호)은 백제 왕릉이 있는 능산리 절터 목탑터에서 출토되었다.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장치로 불상을 모시는 감실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리장치 중 하나이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288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갖춤(보물1991호)은 2009년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심주 중앙 사리공에서 출토되었다. 사리호는 금동제 외호, 금제 내호, 유리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보관하는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청동합과 내부공양품, 진단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외호는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사리호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금제 내호는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이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갖춤(보물1991호)>

왕궁리 오층석탑에 출토된 사리갖춤이다. 외함 안에는 금제 사리 내함이, 그 안에는 연화대좌 위에 놓인 유리 사리병이 들어 있었다. 함께 출토된 불상의 연대에 따라 9세기 말 ~ 10세기 초로 알려졌으나, 미륵사지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백제 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왕궁리 금제 사리 내함과 미륵사지 금동제 사리 외호의 세잎무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의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익산 왕궁리 사리갖춤(국보 123호)>

삼국시대, 신라 사리갖춤

신라 경주에서도 최초의 석탑인 분상사지 석탑, 황룡사지 목탑터 등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삼국시대 사리갖춤은 금, 은, 동, 석으로 만든 용기에 차례로 넣아 안치하는 불교경전을 잘 따르고 있다.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백제의 사리갖춤에 비해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이 떨어지는 편이다. 

분황사 석탑 수리과정에서 사리갖춤과 각종 공양물들이 발견되었다. 사리는 비단에 싸여 은합 안에 있었으며, 이밖에도 여러 공양물들이 있었는데 그중 바늘.가위.집게 등은 분황사 창건을 발원했던 선덕여왕과 관련을 짓기도 한다.

<분황사석탑 사리갖춤>
<분황사 사리갖춤>

황룡사 목탑 찰주본기라 불리는 금동판이다. 목탑 심초석 사리구멍 안에 있던 사라갖춤 중 내함에 해당하는 것으로 1964년에 도굴된 것을 되찾았다고 한다. 4개의 금동판으로 되어 있는데 탑을 조성한 경위와 871년에 중수한 내용을 새겨놓고 있다.

<황룡사 목탑 찰주본기>
<팔각당형 사리구>
<사리갖춤을 구성하는 금합, 은합>

통일신라 사리갖춤

통일신라 때 조성된 많은 석탑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 조각수법과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통일신라 석탑에서는 사리갖춤이 발견되고 있다. 사리갖춤에는 사리를 담는 그릇과 그릇 속에 넣은 불상, 작은 탑, 경전과 구슬, 장신구 등이 포함되는데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탑을 발원한 사람의 바램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와 구성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리갖춤들은 금속세공을 비롯하여 모든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었기때문에 예술적 가치 또한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북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에서 2개의 탑 모두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사리갖춤은 청동으로 만든 사리함(외함)과 사리를 넣었던 사리기로 구성되어 있다. 사리함은 옆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으며, 짐승얼굴모양의 고리가 사천왕상 옆에 달려 있다. 청동으로 만든 사리기는 기단과 몸체로 구성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경주 사천왕사에서 출토된 사천왕상과 비슷하며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사리갖춤의 기술적, 예술적 수준을 높여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감은사지 서탑 사리갖춤(보물 366호), 외함>
<서탑 사리기>
<동탑 사리갖춤(보물 1359호)>

통일신라 석탑을 대표하는 불국사 삼층석탑에서도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사리외함, 사리기 내.외합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사리갖춤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포함되어 있다. 

<무구정광대다리니경(복제품)>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보물 325호)이다. 채색된 돌거북모양의 사리외함에 담겨 있었는데 전각형태 금동으로 만든 사리기 안에 녹색 유리잔과 사리를 담은 유리병으로 구성되었다. 용도를 알 수 없은 나무모양 장식구를 비롯하여 유리구슬 등이 같이 있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와 비슷한 형태로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보물 325호)>

황복사 사리갖춤은 효소왕이 사망하자 706년에 성덕왕이 추가로 봉안한 것이다. 금동 외함의 네 면에 99기의 탑이 점선으로 묘사되었다. 뚜껑 안쪽에는 신문왕, 효소왕, 신문왕의 왕비인 신목대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안하였다는 글귀가 남아 있다. 금제 불상 2점, 고배와 녹색 유리구슬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사리함 뚜껑>
<사리함 외함>
<금제여래좌상(국보 79호), 금제여래입상(국보 80호)>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39호) 사리갖춤이다. 금동 사각 외함의 네 면에 각각의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사리함 안에는 금동제 구층소탑과 여래입상, 그리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종이조각이 있었으며, 사리는 여래입상의 대좌 아래 안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동삼층소탑>.
<금동구층소탑>

김천 갈항시지 동.서삼층석탑에서 사리장엄구(보물 1904호)가 발견되었다. 동으로 만든 항아리에 사리병을 담아 놓고 있다. 동탑 사리병은 대나무 모양의 목과 꽃잎 모양의 굽을 달아내었다. 사리병과 함꼐 범어로 쓰인 다라니 1매가 발견되었다.

<갈항사지 동탑 사리갖춤(보물 1904호)>
<사리병에서 발견된 다리니>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민애대왕 사리그릇(보물741호)이다. 사리를 보관하는 그릇으로 납석으로 만들었다. 항아리 표현에 검은 칠을 하고 있으며, 어깨부문에는 꽃구름무늬와 빗금꽃무늬를 새겨 둘렀다. 몸통에는 7자 38행의 글자를 음각으로 새겨 놓고 있다. 민애왕의 행적과 탑을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적혀있다고 한다.

<민애대왕석탑 사리그릇(보물741호)>
<금동제사방불판 중 남쪽 석가여래삼존불과 북쪽 비로자나삼존불>

고려시대 사리갖춤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 사리갖춤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닫집 형태를 하고 있던 사리함은 원통형, 승탑형 등 단순한 형태로 바뀌며 외함을 도자기로 삼는 경우도 많아 진다. 고려중기 이후에는 원나라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리장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고려시대 금동사리병, 납석제호>
<라마탑형 사리구>
<부여 보광사지 사리갖춤>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48호)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보물 1375호)이다. 석탑이 건립될 때 함께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은제도금여래입상, 수정사리병, 금동제 사각향갑, 청동거울 등 9종 12점이 있다. 통일신라 석탑에 있던 사리장엄구에 비해 소박하면서 간소해 보인다. 고려초기 사리장엄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갖춤(보물 1375호)>

고려말 공양왕 때 금강산 월출봉에서 발견된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이다. 사리갖춤 곳곳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이성계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인 1391년에 부인 강씨를 비롯하여 만여 명과 함께 발원하여 사리갖춤을 만들어 봉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원으로부터 들어온 라마교 양식의 영향을 보여주는 고려말의 실례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이성계과 지지자들이 조성한 사리갖춤>

조선시대에는 탑이 많이 조성되지 않아 남아 있는 사리갖춤은 많지 않으나 그 전통을 이어졌다. 사리갖춤의 형태는 뚜껑이 있는 원형합이나 원통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외함은 백자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백자 사리합>

양주시 봉인사 부도암 사리탑에서는 놋쇠그릇 3점과 은그릇 2점, 대리석으로 만든 그릇 1점과 수정사리병 1점의 발견되었다. 놋쇠그릇안에 은그릇을 넣어두는 방식으로 각각 3쌍을 이루고 있다. 놋쇠그릇에는 명주실.비단.향이 담겨져 있었으며 은그릇에는 내력을 말해주는 글씨가 적혀있는데, 글씨를 통해 이 유물이 광해군12년(1620)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리를 싼 보자기에서는 한글로 발원 문구가 적혀 있다.

<양주 봉인사 사리갖춤(보물 928호)
<사리그릇을 싼 비단보자기, 한글로 쓴 소원을 비는 글들이 보자기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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