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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청동기시대 유물, 연천 삼거리유적 출토

younghwan 2012. 1. 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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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는 한강과 임진강, 서해안 갯벌을 중심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경기도의 선사유적지로는 연천 전곡리, 파주 장산리, 용인 평창리, 파주 주월리, 연천 삼거리 등 많은 유적지들이 발굴되고 있다. 청동기시대는 간석기와 민무늬토기 등을 사용한 시기로 본격적으로 정착농경이 시작되고 인구가 늘어나며 크고 작은 마을들이 생겨난 시기이다. 주거 유적과 함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는 이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을 들 수 있으며, 경기도내에는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석묘를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한반도를 대표하는 청동기시대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고인돌 외에도 경기도에는 연천 삼거리, 여주 흔암리, 안성 마정리, 평택 소사동 등에서 집자리와 무덤유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경기도박물관에는 1996년에 발견된 연천 삼거리 유적에서 출토된 것을 중심으로 청동시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연천 삼거리 유적은 1996년 집중호우 때 임진강의 범람으로 노출된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주거 유적들이 확인되었으며, 동시대인들이 사용했던 많은 생활 용구들이 이들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청동기의 제작
청동은 구리에 비소 3%나 주석 10%정도를 섞어서 만든다. 주석의 비율이 25%가 되면 백동이 되고 주석 대신에 아연을 넣거나 납을 넣어 만들기도 하는데 아연이 45%가 되면 놋이 된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는 한국 청동기는 무기가 대부분이고, 공구.의기.꾸미개.차마구 등이 있으며, 주로 기하학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청동 제품은 기원전 3700년 전 것으로 이집트에서 출토되었다. 뒤를 이어 청동기는 중동 지역에도 등장하고 이는 곧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퍼지게 된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청동기의 시작에 대해서은 많은 의견이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 10세기 경으로 보고 있으며 본격적인 청동기의 사용은 기원전 6~5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는 우리나라에 기원전 3세기경 철기가 등장하고도 얼마동안 같이 쓰이다가 차차 그 종류와 수가 줄어든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연천 삼거리유적
연천 삼거리 유적은 1996년 경기북부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임진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노출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삼거리 유적에서 발굴 조사된 결과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6기와 소형유구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와 소형유구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와 소형유구 2기,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적석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면서 남겨 놓은 토기와 석기 등 모두 740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임진강 유역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중요한 유적을 통하여 강변에서 삶을 살아온 그 당시 연천 삼거리 사람들의 생활 양상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된 반달모양돌칼과 돌낫의 존재는 정착농경을 바탕으로 한 정주성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출처:경기도박물관>



화살촉.간돌검.찌르개.합인석부, 청동기시대, 연천 삼거리 유적

간돌검은 연천 삼거리 유적 8호 주거지 남쪽 바닥에서 출토된 유단식 마제석검으로 검신에 2개의 혈구가 있다. 유단식이란 손잡이에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형식을 말하고 혈구란 피가 흐르게 하기 위한 홈을 의미한다. 찌르개는 자돌구의 일종으로 물고기를 찔러서 잡는 도구로 유럽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등장하는데 한국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등장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숫돌.그물추, 청동기시대, 연천 삼거리 유적

숫돌은 간석기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숫돌은 집자리와 관련된 생활 유적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으며 그 존속 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물추는 그물 밑 끝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잡은 물고기와 작업의 규모에 따라 크가나 무게가 다양하다. 그물추는 강가의 집자리에서 주로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신석기시대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도 유사한 형태로 제작 사용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반달돌칼.돌낫, 청동기시대, 연천 삼거리유적

돌칼의 제작공정은 먼저 적당한 석재의 선택, 두드려 깨뜨리면서 전체적인 형태만들기, 거칠게 갈아서 표면을 다듬음, 구멍뚫기, 세밀하게 갈아서 마무리, 완성품의 순서로 정리된다. 돌낫은 날에 직교하게 나무자루를 끼워서 사용하는 수확구로서 오늘날의 낫과 유사하다. 대부분 집자리 내에서 출토되는 실생활용의 수확구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갈판과 갈돌, 청동기시대, 연천 삼거리유적

갈판과 갈돌은 서남아시에서 구석기시대 종말기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나타나며, 청동기시대에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곡물 가공에 쓰이다가 초기철기시대에는 공이와 시루 사용이 증가하고 목제 절구가 제작.사용되면서 소멸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깊은바리토기.손잡이 달린 토기항아리.돌돈, 청동기시대, 연천 삼거리유적

깊은바리토기는 작은 모래가 섞인 점토질 태토로 만들어졌고 황암갈색을 띤다. 구연부는 약간 바라지고 내외 측면을 원형으로 처리하였으며 토기를 만들 때 생긴 물손질 흔적이 있다. 내면에는 당시에 토기 제작자의 손가락 지문 흔적이 있다. 손잡이 달린 토기항아리는 작은 모래가 섞인 점토질 태토로 만들었고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나 동체부 일부는 흙색이다. 동제부 상부에는 중앙부가 올라간 손잡이가 양 옆에 달려 있고 바닥에는 동체부와 접합할 때 손가락 끝으로 강하게 누른 흔적이 있다. 돌돈은 납작한 편암을 둥글게 원판 형으로 다듬고 갈아 만든 것으로 아마도 석재 교환용 또는 석기의 재료로서 다른 자원들과 교환될 수 있는 기능으로 추정됨으로 돌돈으로 부른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겹 아가리토기. 겹아가리 토기항아리, 청동기시대, 연천 삼거리유적
겹 아가리토기. 아가리는 바깥쪽으로 접어 이중으로 아가리를 만들어 폭이 넓은 단사선문을 시긴 토기이다. 구연의 처리 수법은 서울 가락동에서 출토된 토기와 유사하나, 토기의 전체적인 모습은 대동강 유역의 팽이형 토기와 닮아 있다. 겹아가리 토기항아리는 이중으로 만든 아가리 부분에 단사선문을 시문한 항아리이다. 이 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민무늬토기 형식 가운데 하나로 가락동식토기라고도 부르며 곡물을 저장하는데 사용하였고 기원전 13세기에서 9세기까지 유행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고인돌
청동기시대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독무덤, 적석묘 등이 있으며, 경기도에는 기원전 2000년 경으로 추정되는 650여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석 기념물인 선돌도 경기도에서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분포는 경기도를 포함한 한반도와 일본, 중국의 내륙지방을 제외한 요령 지방과 절강성,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인도, 이란, 이스라엘, 이집트 등 아시아 해안지역과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인돌의 분포를 통해 경기도의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도 국제 문화의 영향 관계속에 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바퀴날도끼. 슴베형 돌검, 청동기시대, 출토지 미상

바퀴날 도끼. 달도끼라고도 부르며 톱니날도끼와 함께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 썼던 석기의 하나로 무기의 일종이다. 가운데 구멍을 뚫어 나무 막대 등을 끼울 수 있도록 하였고 구멍 둘레가 두텁고 날쪽으로 가면서 얇아져 날카로운 날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날쪽에 깨지고 부서진 부분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다. 슴베형 돌검은 별도의 나무 자루를 착장하여 사용하도록 고안된 간돌검이다. 자루가 없는 슴베형의 간돌검은 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출토된 사례가 많다. 슴베형 간돌검에 나무자루가 착장된 예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합인석부. 반달돌칼(화성 소근산성). 홈자귀(연천 학곡리), 청동기시대

합인석부는 주로 나무를 찍거나 패는데 사용하는 돌로 만든 도끼로 조개가 입을 다문 형태로 날을 세운 조갯날 도끼이다. 반달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따는 용도의 석기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농경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형태가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반달돌칼이라고 부른다. 라오허 유역의 신석기문화인 양사오 문화기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한반도 남단까지 전역에 분포한다. 홈자귀는 목재도구를 만드는 공구로서 날은 한쪽에만 있으며, 그 반대쪽에는 나무자루에 착장하여 끈으로 묶기 위한 오목한 홈이 있다. 홈자귀의 부포지역은 함경북도.양강도.자강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과 일본열도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중국 내륙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간돌검, 청동기시대, 출토지미상

돌을 갈아서 만든 단검으로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간돌검은 연해주와 일본 큐슈지역에 국한되어 분포한다. 간돌검은 자르거나 찌르는데 사용되는 실생활 용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인돌 등의 무덤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제사의기로도 활용되었다. 간돌검의 상한 연대는 기원전 13~12세기까지 볼 수 있고 하한은 검은간토기를 표지로 한국식동검 문화기에는 거의 출토되지 않는 것을 보아 기원전 3~2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붉은 간토기

토기의 성형이 완료된 뒤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의 액체를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써 문질러 소성한 토기를 말한다. 산화철은 고온에서 붉은색으로 발색되며, 토기의 표면을 갈면 광택을 띠게 된다. 붉은토기는 무덤의 껴묻거리로서 출토되는 예가 많아 의례용기로 인식되고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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