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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강화 선수돈대, 석모도 앞바다를 지키던 돈대

younghwan 2012. 3. 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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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패배 이후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기 조선 숙종대에 강화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강화유수부가 소재한 지역에 강화산성을, 그 바깥쪽에 외성을, 해안에는 돈대를 구축하여 해안경비를 강화하였다. 강화 해안의 돈대는 숙종대인 1679년 병조판서 김석주가 건의하고,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전국의 승병들을 동원하여 해안 주요 요지 49곳에 돈대를 설치하였다. 이후 보강을 통해 구한말까지 53돈대를 운영 했다고 한다. 돈대는 해안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에 50명 이내이 병력이 머물면서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던 요새로 그 형태는 원형, 사각형 등으로 다양하다. 돈대는 병자호란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방어시설 형태로 화포와 총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 뒷동산에 위치한 선수돈대는 강화해안 53돈대중 하나로 석모도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설치되어 있다. 선두돈대는 해안방어를 위한 군사조직인 5진7보에 속하지 않은 영문이라고 하는 본부 직할의 돈대이다. 돈대의 형태는 동서 18m, 남북 32m의 직사각형 형태로 서쪽 석모도 앞바다 방향으로 2문, 남.북 해안방향으로 1문씩 포를 놓을 수 있는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일부 자료에는 송강돈대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장곶보 소속의 검암돈, 북쪽으로는 영문 소속의 굴암돈이 위치하고 있다.



강화 석모도 가는 페리가 있는 선수선착장과 후포항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선수돈대. 다른 곳에 비해서 돈대를 설치하기 적합한 위치가 부족해서 그런지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다.


선수돈대 들어가는 출입문과 주변 석축.


선수대는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잘 다듬은 큰 화강석 석재로 석축을 쌓아 놓고 있다.


선수돈내 내부. 50명 이내의 인원이 머물면서 지키던 곳이다. 실제로는 많은 인원이 상주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선수돈대 출입문 방향. 마니산 방향으로 능선이 이어져 있다.


선수돈대에는 정면 석모도 방향으로 2개, 남.북방향으로 모서리에 각 1개씩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조선후기 조선군 주력무기였던 블랑기포. 포르투갈에서 전해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나라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그 조작의 간편성 등으로 많이 사용된 화포이다.


선수돈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화도 해안. 다른 돈대에 비해서 돈대 앞쪽에 수목들이 크게 자라서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다.


선수돈대는 강화 해안도로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도로변 주택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선수돈대를 찾아갈 수 있다.


선수돈대를 올라가는 산길


도로에서 10~20여분을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에 선수돈대가 보인다.


선수돈대 아래에 있는 후포항. 강화도에서는 제법 큰 편에 속하는 포구로 관광지인 마니산과 가깝고 석모도를 바라보고 있는 포구이다.



선수돈대, 강화군 화도면 내리
강화도 돈대는 병자호란(1636) 이후 강화도를 한강 어귀의 요새로 만들기 위해 설치한 국방유적이다. 숙종은 강화도 해안 경비를 강화하고자 1679년(숙종5) 48개의 돈대를 축조하였으며, 선수돈대는 그 후 1690~1696년 사이에 추가로 설치된 돈대이다. 돈대의 동서 길이는 18m, 남북 길이는 32m로 평면 형태는 장방평이다. <출처: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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