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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 소재한 죽주산성은 고려시대에 죽주성이라 불렸던 곳으로 대몽항쟁기에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죽주산성이 있는 죽산면 일대는 지금은 안성시에 속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안성과는 별개의 지역으로 종3품의 부사가 고을수령으로 있었던 제법 큰 규모의 고을이다. 죽주산성과 죽산도호부가 있는 이 지역은 지금도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청주에서 진천을 거쳐서 서울로 향하는 길과 충주에서 장호원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큰 길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러한 지리적, 전략적인 중요성으로 인해서 이 곳에 산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신라나 백제가 한강이남 주요지역에 국방을 위해서 처음 쌓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주산성은 원래 내성, 본성, 외성의 중첩된 성벽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외성의 일부만이 원래의 모습이 남아 있다. 성의 둘레는 1,688m로 대체적인 모습은 대몽항쟁기에 몽고의 공격에 대비하여 이 성을 크게 보수했던 송문주 장군이 적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산성 중에서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외부의 공격에 취약한 지점이 그리 많지 않으며, 내성,본성,외성의 중첩된 구조를 지형에 맞게 적절히 배치한 상당히 잘 설계된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죽주산성 올라가는 길. 죽주산성은 계곡을 둘러산 포곡식 산성이지만, 지대가 높고 경사진 언덕에 쌓았기때문에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과 비슷하게 적이 산성을 공략하기 쉽지 않다. 산성의 정문격인 동문까지는 평지에서 꽤 걸어올라가야 한다.


죽주산성의 정문격인 동문. 문루는 남아 있지 않으며 동문 주위의 성벽또한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방어사 취약점이기도 한 정문주위도 적이 공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다듬어서 쌓고 있다. 성문 주위에는 원래 쌓았던 성벽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내부에서 본 죽주산성 동문. 주위의 성벽은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훼손되어 있다. 아마도 조선후기 이후에는 죽주산성의 전략정 중요성이 많이 떨어져서 적절한 관리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죽주산성 동문 주변 성벽. 동문 주변이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고 있어서, 이 성문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주산성 성벽에는 조총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시설인 여장과 총안을 설치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는 조선후기에 죽주산성이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주산성 북치성과 포루를 오르는 성벽길. 이 곳은 최근에 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벽을 보수하는 방식이 삼국시대 신라가 쌓았던 성벽축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죽주산성 북동쪽 언덕에 위치한 포루를 향하는 성벽길. 죽주산성은 북동쪽으로 돌출된 형태로 성벽을 쌓고 있으며, 치성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간에 내성을 쌓었던 성벽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죽주산성 동쪽편 진천에서 용인으로 연결되는 교통도. 지금도 이쪽으로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일죽IC가 부근에 있다.


죽주산성 남쪽편 진천방향으로 연결되는 길


죽주산성 북쪽편 용인으로 연결되는 길


죽주산성 동북쪽 돌출된 정상부에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중부내방 내륙을 관통하는 주요 교통로를 감시하고 있는 이 곳은 지휘소인 장대의 역할도 같이 했을 것으로 보인다.


포루는 현재 원래의 구조물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은 편이다. 화강석 석재로 벽을 쌓고,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설치해 놓고 있는데, 조선후기에 많이 사용한 블랑기포를 사용했던 강화의 돈대와는 약간 다른 형태로 주로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했던 총통류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포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


포대는 상당히 경사가 급한 지형에 설치되어 있어서 바깥쪽에서 보면 돈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경사가 심해서 이곳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포루 주변은 원래의 성벽이 많이 남아 있다.


북문으로 연결되는 성벽길. 안쪽으로 비슷하게 돌출된 형태로 성벽을 쌓고 있다. 이 성벽은 외성은 아니고 중성이라고 하며, 바깥쪽에 별도의 외성을 쌓았다고 한다. 적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상당히 효률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산성이다.



안성 죽주산성, 안성시
이 성은 고려시대에 죽주성으로 불렸으며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곳이다. 죽주는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는 중부 내륙교통의 요충지였다.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군이 이곳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면서 공격하였으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때 성을 지킨 방호별감 송문주는 일찍이 구주성 싸움에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있어 대비하였기에, 백성들은 그를 '귀신' 또는 '신명'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진을 치기도 하였다. 죽주산성은 내성, 본성, 외성의 중첩된 성벽구조를 갖추고 있다. 원래의 성벽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외성뿐이고 내성과 본성은 훼손이 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성벽의 구조를 통하여 축조된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 현재 성의 둘레는 1,688m이고, 높이 2.5m 안팎이며 부분적으로 수리를 많이 하였다. 성벽의 동쪽 끝에는 포루가 있고, 남문 쪽 성 바깥에는 도랑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북문 옆에는 네모진 주춧돌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성안에는 몽고 침입 때 큰 전과를 올린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출처:안성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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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 죽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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