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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안성 덕봉서원, 숙종대 문신 오두인을 모신 경기지역을 대표하는 서원

younghwan 2012. 3. 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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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소재한 덕봉서원은 조선 숙종대에 정치적 사건인 기사환국으로 죽은 오두인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서원이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숙종대에 창건된 덕봉서원은 창건된 해에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건물은 강당인 정의당과 사당이 덕봉사우가 일렬로 배치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인 정의당은 정조18년(1794)에 중수된 것이라고 하며, 나머지 건물들은 대체로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경기도에 소재한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규모가 단촐한 편이로,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제사를 올리는 사당의 성격이 강한 조선후기에 세워진 서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덕봉서원은 바리봉 숲을 등지고 옛 양성현 지역의 넓은 평야가 있는 남동쪽을 향하고 있다. 서원내에는 수령 200년 이상된 오래된 향나무가 남아 있고, 인근에는 오두인의 후손들인 해주오씨 세거지 덕봉리 마을이 있다.

 오두인(1624~1689년)은 조선 인조에서 숙종대의 문신으로 인조 26년에 진사시에 1등으로 다음해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인물로 사간, 부교리 등을 역임했으며 숙종5년에는 공조참판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숙종대 송시열과 함께 서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실각하고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의주로 유배형을 받고 떠나는 중 파주에서 죽었다. 오두인은 진사와 문과시험에서 수석을 두번씩이나 한 인물로 공조참판과 판서를 지낸 것으로 볼 때 실무적인 역량이 뛰어났던 인물로 보인다.



조선중기 문신 오두인을 모신 덕봉서원은 옛 양성현 일대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뒷편에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는 낮은 야산이 바리봉이 있다.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한 것은 아니지만 들판을 바라보고 있어 개방된 느낌을 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서원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덕봉서원 출입문인 외삼문. 전형적인 출입문 형태를 하고 있으며, 휴식공간으로 사용되는 문루나 누각은 설치하지 않고 있다. 교육기관 역할보다는 사당 기능을 중시하는 서원형태를 보여주는 출입문이다.


서원 출입문 앞에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비석


덕봉서원 강학공간인 강당인 정의당.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면을 누마루형식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날씨가 추운 중부지방 서원들의 강당과 마찬가지로 외벽을 만들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로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주로 문중이나 유림들이 회의를 하는 장소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강당 뒷편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다. 기존의 동.서재는 실제로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0년대에 중수한 것이라 한다.


사당인 덕봉사우 출입문인 내삼문과 담장


조선중기 문신 오두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덕봉사우. 현재의 건물은 1970년대에 중수한 것이라고 한다.


강당 오른편에 위치한 정려각과 정려.


강당 마당 왼쪽편에 있는 수령 200년이 넘은 고목인 향나무


덕봉서원은 작은 봉우리인 바리봉을 등지고 있으며, 남동쪽 방향으로 옛 양성현 일대의 넓은 평야가 있고,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 지나가고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를 하고 있는 서원이다.



덕봉서원,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기사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도중 세상을 떠난 양곡 오두인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21년(1695)에 건립되고, 그 해 사액된 서원이다.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던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오두인은 인조 26년(1648)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공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숙종 때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다가 의주로 유배되던 도중 파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숙종 20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공이다. 덕봉서원은 남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터에는 강당인 정의당과 동재.서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위쪽 터에는 사당인 덕봉사우가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휴묘(강학공간이 강당의 앞에 있고 제향공간인 사당이 뒤쪽에 있는 배치형식)을 갖추었다. 사당과 강당은 부재의 사용으로 미루어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동재.서재는 1940년대에 훼손 되었다가 새로 복원된 것이다. <출처:안성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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