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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남한산성 봉암성과 한봉성, 동쪽편 벌봉과 한봉 주위 능선에 쌓은 외성

younghwan 2012. 4. 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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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은 한강 남쪽에 위치한 해발 498m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의 연주봉, 동쪽의 망월봉과 벌봉, 남쪽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한 둘레 약 8km의 상당히 큰 규모의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지형은 대체로 동쪽 계곡을 제외하고는 성벽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편이며, 내부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분지를 이루고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천혜의 요새였던 이 곳에서 인조가 청나라에 마지막 항전을 하였던 곳으로 실제로 인조가 항복하게 된 것은 산성이 점령되었기때문이라기 보다는 강화도가 함락되고, 산성내에 비축한 식량이 부족하였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병자호란 기간 중 대체로 청나라군사의 공격을 적절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남쪽의 검단산과 연결된 능선, 동쪽의 벌봉,한봉과 연결된 능선에서 청나라군이 발달된 화포로 공격하여 조선군 내부의 공포심을 유발한 것도 항복의 요인 중의 하나였다.

 남한산성 동쪽에는 해발 467m의 망월봉과 해발 502m의 벌봉이 자리잡고 있는데, 병자호란 당시에는 산성이 망월봉까지만 연결되어 있었고, 벌봉과 한봉이 청나라군에 점령되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에 남한산성의 취약점을 크게 보완하기 위해 여러 방어시설들을 구축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남한산성 동쪽편 능선으로 이어진 벌봉과 한봉에 외성을 축성한 것이다. 벌봉 주변에는 약 2km에 이르는 봉암성을 쌓고, 한봉 주위에는 약 1km에 한봉성을 쌓았다. 두 성은 망월산 정상부인 동장대에서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은 것으로 전형적인 외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한산성이 복원되는 과정에서도 최근까지 복원되지 않고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최근에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 동쪽 해발 502m 망월봉 정상부에 설치된 동장대에서 본 봉암성. 망월봉은 남한산성 본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동쪽편 해발 515m의 벌봉과 남쪽의 한봉과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방어상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지형을 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동쪽편 봉우리들을 청나라군이 점령하여 상당한 위협이 되었던 곳이다.


망월봉 동쪽편 벌봉 주위와 능선에 성벽을 쌓은 봉암성을 출입하는 성문이다. 동장대에서 제3암눈을 빠져나와 다시 이 성문을 통해 봉암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성문은 문루는 없어 아치형의 홍예로 쌓은 형태를 하고 있다.


벌봉으로 연결되는 능선길을 따라 쌓은 봉암성 성벽길에서 본 망월봉 정상부에 설치된 동장대 성벽과 봉암성 성문. 단순히 능선길을 따라서 성벽을 쌓은 구조를 하고 있다.


봉암성 성벽은 남한산성 본성과는 달리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허물어져 가는 옛 성벽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고풍스러운 길이기도 하다.


봉암성은 병사들이 머무는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의 방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능선길을 따라서 성벽을 쌓고 있다.


성벽과 여장은 허물어진 곳이 많으며, 중간 중간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최근에 옛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주변의 나무를 자르고 있다.


능선 중간쯤에 위치한 봉우리에서 본 동장대부근의 봉암성 성벽


능선을 따라서 벌봉과 한봉까지 이어진 성벽. 해발 500m가 넘는 높은 곳이지만, 여러 봉우리가 연결되면서 능선을 따라서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능선을 따라서 꾸불꾸불하게 이어진 성벽길


멀리 보이는 벌봉 정상부의 봉암성과 남쪽으로 이어지는 한봉성


능선 중간쯤에 위치한 봉우리 좁은 길목같은 지형을 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서 이어진 성벽길은 동쪽편에 최고 높은 봉우리로 해발 515m의 벌봉 주변의 봉암성과 그남쪽으로 연결되는 한봉성으로 나뉘어 진다.


한봉성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한봉성으로 가는 성벽 안쪽에서 본 망월봉에서 벌봉으로 연결되는 능선길


한봉성과 봉암성은 복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중간에 무너진 성벽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봉성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벌봉 근처에 세워진 동장대 기능을 했던 외동장대터. 봉암성과 한봉성을 쌓으면서 조성한 곳으로 이곳에는 건물은 짓지 않고 축대만 설치하였다고 한다.

외동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곳은 외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외동장대는 조선 숙종 12년(1686) 윤지선이 수어청 군사를 동원하여 봉암성을 축성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며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하던 곳으로 보인다. 고지도를 보면 다른 장대와 달리 외동장대란 누각에 관한 기록이나 표시가 없어 처음부터 누각이 없이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광주시청>


한봉성은 능선을 따라서 좁은 통로 양쪽에 성벽을 쌓은 외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한봉까지 꽤 길게 성벽이 이어져 있다.


한봉성 능선으로 이어지는 성벽


봉암성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여장


봉암성 북쪽편에 있는 작은 암문. 1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암문으로 평거식으로 만들어졌다.


봉암성 암문 바깥쪽에서 본 성벽


봉암성
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이 중 봉암성은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의 동태를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벌봉을 청군에 빼앗겨 곤란을 겪었는데,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12년(1686)에 부윤 윤지선으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였고, 숙종 31년(1705) 수어사 민진후가 포루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암성은 남한산성의 본성에 대하여 새로 쌓은 성이므로 '산성'이라고도 하며, 동쪽의 성이므로 '동성'이라고도 하였다. 성의 길이는 2,120m이다. <출처:광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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