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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남한산성, 장경사신지옹성에서 망월봉 정상 동장대까지

younghwan 2012. 4. 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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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은 수어장대가 설치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해발 497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여러개의 봉우리와 능선을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내부는 물이 풍부하고 병사와 주민이 머무를 수 있는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쪽의 해발 542m의 검단산과 동쪽의 해발 515m의 벌봉 주변이 남한 산성 본성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곳을 통한 공격에 취약한 점이 있으며,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벌봉과 검단산 능선을 청군이 점령하여 강력한 화포로 본성을 공격하여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동쪽편에는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을 쌓고 남쪽편 검단산에는 신남성 돈대를 쌓았다. 또한 외성과 돈대를 엄호하기 위해 주변 여러곳에 옹성도 설치하였다.

 남한산성 동쪽편 봉우리인 해발 502m의 망월봉으로 연결되는 중턱에는 건너편 외성을 엄호하기 위한 포좌가 설치된 장경사신지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이 옹성을 지나서 동장대가 설치되었던 정상부인 망월봉까지 연결된 성벽은 대체로 경사가 심한편이며, 성벽을 오르는 지형또한 언덕이라 적의 접근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동쪽편 외성이 설치된 벌봉과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벌봉에서 적이 접근할 때는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발 515m의 벌봉은 남한산성 본성내에 있는 다른 봉우리들보다 고도가 높아서, 적이 점령했을때는 성내의 움직임이 볼 수 있다. 남한산성 성벽 대부분은 병자호란을 대비하면서 쌓은 것이지만, 현재보고 있는 성곽시설의 상당수는 숙종대에 병자호란의 결과를 반성하면서 취약한 부분을 보강한 것이다. 주로 남한산성의 남쪽과 동쪽편에 숙종대에 보강한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장경사신지옹성에서 주변 성벽길.


장경사진시옹성에서 남한산성 초소건물이 있었던 군포지로 올라가는 성벽길. 망월산 정상부에 가까운 곳으로 경사가 있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 본성 바깥으로 돌출된 지형에 옹성을 쌓고 포좌를 설치한 장경사신지옹성. 숙종대에 남한산성 방어력을 보강하고자 건너편에 쌓은 한봉성과 봉암성을 엄호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시설이다.


남한산성 동쪽편 주봉인 망월산 정상 아래 돈대처럼 돌출된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곳에 초소인 군포를 설치해 놓고 있다. 이 곳에서는 주변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고, 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어상 요지라고 할 수 있다.


건물초석만 남아 있는 초소인 군포지

남한산성 군포지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건물이다. <중정남한지>에 의하면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 현재는 한군데의 군포도 남아 있지 않다. 조사결과 이 군포지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대지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보이는 초석과 벽체, 다수의 와편과 조총탄환이 나왔다. 이를 통해 군포는 목조가구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고 벽체는 토석벽을 돌린 건물로 보인다. 또한 군포는 초소건물 기능에 맞게 정면은 트여있고, 내부에 온돌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정비시 발굴된 발굴시의 건물유구를 잘보존하기 위하여 유구 위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기존 유구와 같은 형태의 모조초석을 설치하였다. <출처:광주시청>


초소였던 군포지에서 망월산 정상에 설치된 지휘부 건물이 동장대로 올라가는 성벽길


장경사신지옹성에서 동장대까지의 성벽길. 경사가 약간 있는 편이지만, 거리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동장대 바깥쪽 외성인 봉암성과 함께 적을 제압하기 쉽게 성벽을 쌓고 있다. 성벽 바깥쪽은 경사가 심한 편이다.


동장대 바깥쪽으로 쌓은 외성은 멀리 건너편 벌봉과 한봉까지 이어져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이 능선길을 따라서 공략하는 청나라군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남한산성 동쪽편 해발 502m인 망월산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동장대터. 이곳은 남한산성 본성에서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주변에 비슷한 높이 봉우리들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방어하기는 쉽지 않았던 곳이다. 실제로 숙종대에 외성인 한봉성과 봉암성을 쌓으면서 그 기능이 없어졌다고 한다.

동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곳은 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성동쪽에 있다하여 동장대라 불린다. 이 곳에는 남한산성에서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2년(1624) 산성 수축시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어졌기때문으로 추정된다. <출처:광주시청>


남한산성 여장들은 대부분 최근에 수리한 것들이 많은데, 동장대와 주변 외성들은 최근에 보수작업을 하고 있어서 오래된 여장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산성이나 읍성들은 삼국시대 이래로 유지되었거나, 조선초에 축성한 것이 많으며 여장을 두고 있는 않는 경우가 많다. 여장은 대체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총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쌓은 것으로 조선후기 성곽 축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여장
여장이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남한산성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이다. 그러나 여장은 축조시기와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여장재료는 일반적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장은 수평되게 축조한 것이 기본형식이나, 급경사지에서는 계단식으로, 일부 완만한 경사지에는 지형에 따라 경사지게 조성한 예도 보인다. 여장에는 중앙에 근총안 1개와 좌우에 원총안 2개 등 3개의 총안과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활을 쏘기 위한 타구가 마련되어 있고, 남한산성 여장규모는 길이 4.2m, 높이 1.3m, 폭 0.8m 내외가 일반적이다. <출처: 광주시청>


동장대를 지나서 서쪽편으로 연결되는 성벽길. 암문이지만 일반적인 성문 규모의 제3암문이 보인다. 외성인 봉암성으로 출입하는 암문이다.


봉암성 제 3암문.


동장대와 제3암문 주변의 성벽. 남한산성 본성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부는 약간 평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외성인 봉암성으로 출입하는 문루는 없지만 아치형으로 쌓은 봉암성 성문


동장대가 설치되었던 남한산성 동쪽편 망월산 정상부 성벽. 바깥쪽 능선길을 따라 좁은 통로 형태로 외성인 봉암성을 쌓아 두고 있다.


장경사신지옹성에서 동장대로 연결되는 성벽. 예전에는 성벽 바깥쪽에 나무가 우거져서 산성의 웅장한 모습이 잘 안보였는데, 최근에 성벽 바깥쪽 나무를 잘라내어 원래의 모습을 찾고 있다. 원래 산성 주변에는 나무가 없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동장대에서 건너편 벌봉까지는 좁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숙종대에 남한산성을 보강하면서 능선길에 외성을 쌓아두고 있다.


봉암성으로 가는 능선길에서 본 망월봉 정상부 동장대 부근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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