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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김포 문수산성(사적139호), 문수산(해발 376m) 정상의 장대지와 주변 성곽

younghwan 2012. 5. 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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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139호로 지정된 김포 문수산성은 한강 하구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서쪽 강화도 방향으로 연결된 2개의 산줄기와 강화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갑곶진을 연결하는 해안가를 성벽으로 연결하여 쌓은 산성이다. 문수산 정상부에서는 서울로 연결되는 한강수로, 김포지역의 넓은 벌판, 조선시대 국방상 중요한 요지였던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지이다. 이 곳에는 병자호란때까지 산성이 없었으며, 그 이전에는 주로 강화도 해안을 중심으로 성곽과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병자호란때 청나라군의 추격을 피해 강화도를 피난할 때 나룻배를 타고 염하(강화해협)을 건너는 동안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기때문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숙종대에 이 곳에서 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문수산성은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이어지고 있으며, 정상부에 가까운 지점에는 강화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근에 만든 전망대가 있고, 이 곳을 지나면 능선의 경사는 완만해지면서, 최근에 복원한 200m 정도의 성벽을 볼 수 있다. 이 곳에는 김포시 월곶면 소재지에서 산길로 문수산성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 홍예문이 남아 있고, 병영이 있었던 자리로 여겨지는 군용헬기장이 있다. 이 곳을 지나 문수산 정상으로 오르면  지휘자가 적의 동태를 살피고 명령을 내리던 장대가 있었던 옛터를 볼 수 있다.



문수산 정상 아래 옛 병영이 있었던 자리 부근 약200m 정도의 성곽은 허물어져 있는 다른 곳과는 달리 최근에 복원하여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문수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 


전망대에서 다시 능선길로 올라서면 문수산 정상이 보인다. 산성은 문수산 정상에서 다시 강화도가 있는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능선을 따라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복구작업을 완료한 문수산 정상부근의 200m 정도의 성벽. 옛모습에 보고 복원하기는 했지만, 기존 성벽에 비해서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성벽길.


문수산성 성벽길. 원래 문수산성에는 조총의 공격에 대비하여 여장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복원한 부분에서도 여장은 복원되어 있지 않다.


문수산성 중턱에 승병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는 문수사 절터와 병영터 부근에서 가까운 지점에 있는 홍예문이다. 김포지역내 조선시대 행정기구였던 통진현 관아에서 산길을 통해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다.


이 성문은 바깥쪽에는 아치형으로 쌓은 홍예식이지만, 안쪽에는 평거식으로 만들어 놓은 특이한 성문이다. 정식 성문이라기보다는 암문이라고 볼 수 있는 출입문이다.


홍예문 주변의 성벽. 상당히 큰 석재를 이용해서 쌓고 있는데, 조선후기 축성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예문에서 문수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홍예문을 지나면 능선에 약간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헬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곳은 원래 문수산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렀던 병영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지휘소이 장대가 설치된 문수산 정상까지는 100m 정도로 가깝다.


홍예문에서 병영터가 있는 곳으로 이어진 성벽. 문수산성 전체 성벽 중 복원된 부분이다.


문수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문수산 정상에 남아 있는 지휘소 건물이 장대가 있었던 건물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문수산 정상의 군사지휘소라고 할 수 있는 장대가 있었던 건물터. 문수산 정상은 서울과 연결되는 육로인 김포지역과 한강하구, 강화도, 한강이북의 북쪽땅까지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문수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성벽과 염하(강화해협) 주변 지역들. 바다를 오가는 선박들과 해안돈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수산성, 사적 139호,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고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 산성이다. 성이 있는 산은 서쪽으로 강화를 건너는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입구를 지키니기 위하여 조선 숙종 20년(1694)에 쌓은 것으로 당시 둘레가 2.5km이고, 여장이 2,173개 있었으며 성문이 3개 있었다. 이후 순조 12년(1812)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성벽은 장방형 혹은 정방형으로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여장을 둘렀다. 성문은 취예루와 공해루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 성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스제독이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출토 유물은 조선시대 후기의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며,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이 일부 남아 있다. <출처:김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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