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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는 국도7호선을 중심으로 두도시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있었던 삼국시대 성벽인 관문성이다. 이 성은 왜구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 침입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보기드문 장성(Wall)형태의 성벽이다. 경주시 외동읍 서쪽 해발 765m의 치술령 줄기 남쪽에서 시작해서 경주시 녹동리 마을과 해발 250m정도인 순금산 정상부 아래를 지나, 경주에서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동천을 지나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전체 12km 정도의 큰 규모의 성곽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성덕대에 각간 원진이 39,262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벽은 길이 40~50cm로 다듬은 돌을 5단 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았는데, 위로 쌓아 올리면서 폭을 좁혀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모벌군성 또는 모벌관문이라 불렀는데 조선시대에 이곳을 관문성이라 부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성벽의 규모가 워낙 크기때문에 만리성이라 불러왔다.

 신라는 수도를 방위하기 위해 주요 교통로에 많은 산성들을 쌓았는데, 대표적인 산성으로는 경주에서 서남쪽으로 열려있는 관문인 4번국도가 개설되어 있는 대구와 영천, 건천을 거쳐서 북쪽으로 들어오는 길과 김해에서 양산과 언양을 거쳐서 남쪽으로 들어오는 길이 만나는 경주 서남쪽을 지키기 위해서 삼국시대에 남산신성과 바깥쪽 선덕여왕의 여근곡 일화로 유명한 건천읍 동남쪽에 위치한 외곽산성인 부산성있다. 경주 도심의 북동쪽으로는 경주와 감포,구룡포 등 동해안 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 입구인 현 보문관광단지 입구에 위치한 명활산성이 있고, 남쪽으로는 경주에서 21km 떨어진 울산과의 경계선에 위치한 관문성이 있다. 주요 교통로에 산성을 구축하여 방어했던 것과는 달리 관문성은 산과 산사이의 넒은 교통로를 12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막아 놓고 있다. 삼국시대에 신라와 왜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방어시설로 왜(倭)가 들어올 수 있는 큰 항구인 울산항에서 경주 도심까지는 거리상으로 약 30km 정도이며, 중간에 큰고개라던 방어에 용이한 크고 작은 산 등 장애물이 거의 없이, 하천을 따라서 평지로 하루이내에 도착할 정도로 짧은 거리이다. 또한 신라는 당시 왜(倭)와 동맹관계이자 무역거래에서 서로 의존도가 높았던 가야와 백제를 압박하였고, 결국은 삼국통일을 하였기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적대적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양국관계와 경주,울산간의 교통로를 고려하여 이 곳에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성벽을 축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관문성의 역할은 왜구의 위협이 없어졌던 조선후기까지 계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관문성은 박제상의 전설이 남아 있는 치술령 아래에서 동쪽 외동읍 모화리 산까지 연결되어 있는 12km에 이르는 큰 성벽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과 산사이의 주요 교통로를 장성(Wall)의 형태로 쌓은 성이다. 경주에서 울주군 범서읍과 연결되는 14번국도를 막고 있는 울산과 경주의 경계가 되는 녹동리 마을에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벽은 잘다듬은 큰돌로 아래부분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았다는데 그 모습이 잘 확인되고 있다.


안쪽으로는 성벽을 쌓았던 석축의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곳에 쌓았던 옛성벽이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문성을 쌓아야했던 경주와 울주군 범서읍을 연결해주는 오래된 교통로인 14번국도가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관문성 성벽 안쪽에는 옛 석축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도로변에 남아 있는 옛 관문성을 석축을 쌓았던 큰 석재들.


녹동리 마을 서쪽으로 박제상 전설이 남아 있는 치술령 아래까지 관문성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관문성은 서쪽편 치술령에서 시작해서 경주에서 발원하여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가는 동천 옆에 위치한 해발 250m정도의 낮은 산인 순금산을 지나, 동천과 7번국도를 지나 동쪽편 외동읍 모화리의 산까지 약 12km에 이르는 큰 장성이다. 순금산 지역에는 방어에 용이하도록 테뫼식 산성과 비슷하게 산정상부 아래를 따라서 성벽을 쌓고 있다.


관문성을 12km에 이르는 큰 장성(Wall)으로 여러지역에 성벽을 쌓은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관문성 탐방로는 성벽이 그나마 많이 남아 있고 전망이 좋은 순금산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순금산 관문성 탐방로를 오르는 등산로.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관문성 성벽이 있었던 정상아래까지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산길을 따라서 올라가 옛 관문성 성벽을 따라서 만들어진 등산로에 올라서면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관문성 아래로 보이는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는 7번국도 주변의 교통로. 경주에서 발원하여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동천으로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농경지들이 있고, 높은 고개나 장애물들이 없어서 만약 왜(倭)가 신라를 침범한다면 울산항에서 하루만에 경주도심까지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이다. 삼국통일 이후 백제와 동맹관계였던 왜(倭)에 대해서 문무왕을 비롯하여 많은 통일신라의 집권자들이 고민했던 부분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관문성 아래 동천 부변의 농경지.


관문성 성벽을 따라서 이어지는 등산로. 석축의 흔적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등산로의 형태에서 산성을 쌓았던 인공적인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문성 성벽길에서 전망이 좋은 바위언덕.


관문선 서남쪽 울주군 지역. 이쪽으로는 크고 작은 산이 많지만, 14번국도로를 따라서 울주군 범서읍 지역과 연결되는 오래된 교통로가 있다.


소나무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나무들이 옛 성벽 아래에 크게 자라고 있다. 옛 성벽을 따라서 등산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관문성 성벽을 따라서 이어지는 숲속길


등산로 아래에는 옛 성벽 석축을 쌓았던 돌들이 남아 있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무너져 내린 옛 관문성 성벽 석축을 쌓았던 돌들


관문성은 12km에 이른 큰 장성(Wall)으로 등산로를 따라서 성벽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등산로 아래에 볼 수 있는 또 다른 옛 성벽을 쌓았던 돌들


관문성 성벽으로 사용했던 원래 이 산에 있던 큰 바위


신라 관문성의 글자새김돌, 경주 관문성. 관문성은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성벽에서 10개의 석각이 발견되었는데, 구간별로 축성을 담당한 군현이 작업한 구역 등을 기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관문성, 사적 48호,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외
관문성은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왜구를 막고자 쌓은 것이다. 이 성은 경주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21km 떨어진 외동읍 부근의 산에 축조되어 있다. 한 개의 성이 아니라 치술령과 모화리 동편의 사 사이에 길이 12km 정도의 장성과, 양남면 신대리의 산 정상에 둘레 약 1.8km 정도의 두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의 규모는 치술령에서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따라 신대리 동쪽 산까지 이른다. 관문성을 모벌군성, 모벌관문이라고도 불렀으며, 마을 사람들은 만리성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터로 추측되는 석축이나 창고터, 병사터 등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현존하는 남산성과 관문성의 석벽을 비교해 볼 때, 잘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이용해서 관문성을 쌓은 기술이 훨씬 발달된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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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관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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