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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박물관] 백제 성왕대 통치체제, 왕궁과 관아

younghwan 2012. 5.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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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통치제제로 백제가 건국하여 고대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 있었던 부족적 성격이 강한 오부제가 있었다. 백제의 중심부족은 중부가 되고 나머지 방위에 독자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집단에게 독자성을 인정하고 관직을 부여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흔히 말하는 백제의 오부제는 '수도오부제'로 한성백제시절부터 있었으나 성왕이 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던 제도이다. 오부는 수도를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의 오부로 나누고 각부를 다시 오항으로 나누어 거주하게 하고, 달솔이라는 부의 책임자를 두어 군사를 거느리게 하는 제도로 백제 지배계층인 귀족들을 수도에 거주하게 하고 이들을 통제하기 좋게 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백제의 통치제도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백제의 마지막 도성의 사비성내의 관북리 유적지를 비롯하여 여러 유적지에서 출토된 비석이나 기와 등 건축자재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왕, 통치체제를 정비하다
성왕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오랜 준비끝에 528년(성왕16) 사비천도를 단행한다. 아울러 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남부여로 국호를 바꾼다. 사비천도 후 만 여가가 거주하는 도성 내부를 상, 전, 중, 하, 후의 5부로 구획하고 각 부에 5개의 항을 두었다. 지방은 5개의 방을 두고, 그 아래 군.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중앙관서로 22부를 두고, 16관등제를 확립하였다. <출처:부여박물관>



'전부'가 새겨진 표석(Stele with inscription), 부여 동남리


'상부전부천자차이'가 새겨진 표석, 부여 동남리


'상부'가 새겨진 도장글씨 기와(금산 백령산성), '북사'가 새겨진 도장글씨 토기(부여 동남리), '하부을와'가 새겨진 도장글씨 기와(부여읍내), '상부을와'가 새겨진 도장글씨 기와(부여 부소산성), '전부갑와'가 새겨진 도장글씨(부여 금성산)


'나솔' 먹글씨 목간(복제품), '육부오방' 먹글씨 목간, '덕간'먹글씨 목간, 부여 능산리 사지

사비의 왕궁과 관아는 어디에 위치하였을까?
사비 왕궁의 위치는 관북리, 쌍북리, 부소산성 일대로 비정되기도 하였으나, 부여 시가지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구아리 정방형 평면구획'이 왕궁지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성왕은 541년(성왕19) 사비에서 가야 서남부 소국들의 대표를 모아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당시 왕궁과 같은 핵심건물은 완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 북쪽의 관북리 일원은 천도 전후에 왕궁의 부속시설이었다가 왕궁 확대과정에서 정비되었다. 지금까지의 발굴성과로 볼 때 관북리 일대의 저습지에 광범위하게 흙을 쌓아 대지를 조성하는 기초 작업은 6세기 후반에서야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부여 관북리유적지. 부여 부소산성 아래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지는 백제 왕궁터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지이다.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대형 전각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연못, 우물터, 기와로 만든 배수관 등이 확인되었으며, 왕실에 필요한 철기, 금속제품을 만들던 공방과 창고 등의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백제를 대표하는 각종 기와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연꽃무늬 수막새, 부여 관북리


'수부'가 새겨진 도장글씨 기와(부여 부소산성), 얼굴무늬 토기 조각(부여 관북리),


전달린토기, 등잔, 부여 관북리


굽다리바리, 뚜껑사발, 뚜껑, 부여 관북리


굽다리바리, 뚜껑사발, 부여 관북리


자루솥, 부여 관북리


소조인물상, 연꽃모양 불상 받침, 소조인물상, 부여 관북리


'일근'이 새겨진 거푸집, 도깨비얼굴모양 꾸미개, 사리함 뚜겅, 부여 관북리


연꽃무늬 수막새, 부여 관북리

부여 구아리는 부여읍 중심지로 지금도 많은 상가건물들과 큰 도로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으로 실제로 많은 발굴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곳이다. 지금도 이곳이 부여의 중심지인것처럼 백제가 사비로 천도했을 당시 왕궁을 중심으로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적 발굴조사가 진행된 관북리유적지는 백제의 왕궁이 확장되면서 후원을 비롯하여 각종 부속건물들이 있었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사'가 새겨진 도장글씨 기와, 부여 구아리


바리,부여 구아리
 

항아리, 부여 구아리


'소상'이 새겨진 토관, 부여 구아리


토관, 부여 구아리

토관, 부여 구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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