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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백제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인 국보 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대에 크게 유행한 박산향로의 일종으로 백제 마지막 왕들이 묻혀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이 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사실감 있게 묘사된 연잎으로 장식하고있는 향로 몸통,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박산을 묘사한 몸체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껑의 정상부에는 한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 올린 연기가 박산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바위, 나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어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박산향로의 일종이지만 그 제작수법이나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능산리사지에 있던 절은 백제왕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백제 멸망 이후 누군가 땅에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산향로는 한무제 이후부터 출토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도교의 신선사상, 음양오행설 등이 동중서에 의해서 반영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대 왕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박산향로를 제사 등의 분향에 사용하거나 무덤에 부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에 불교에 박산향로가 수용되면서 남조를 통해서 백제에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는 불단을 장식하는 기물로 불단 아래에 놓여 졌다고 한다. 향로의 형태는 백제금동향로와 유사하며 받침대로 용이 장식되고, 뚜껑에는 박산의 모습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뚜겅에는 다양한 동물, 신선, 수렵하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는데 한무제대에 유목문화를 받아들인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국보 287호로 지정된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이다. 현재 원본은 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향로의 구성은 용모양을 하고 있는 받침, 연꽃잎을 형상화한 몸통과 신선이 사는 박산을 표현한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로 뚜껑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이 향로에는 많은 부조상들이 표현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생동감있게 만들어진 부분이다.



연꽃잎모양으로 동물 모양 등을 붙여 놓은 향로 몸통과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산인 박산을 표현한 뚜껑.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와 바위 등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정상부 봉황주위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 소를 부른 악사를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말을 타고 수렵을 하는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무제대에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많은 인물과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를 부는 모습.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 명의 악사가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관악기는 소.피리, 현악기는 완함.거문고, 타악기는 북 등 모두 5개의 악기로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듯 하다. 다섯 명의 악사는 사람과 모든 동식물 위에 배치되어 있어 당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삼라만사의 모든 생명들에게 음악을 연주하여 무릉도원으로 이르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되 악기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악기와 같거나 비슷한 모습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상부에 북을 두드리는 악사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를 볼 수 있다. 산에는 말을 타고 수렵하는 모습과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북을 두드리는 모습과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


정상부에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고 산 중간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완함을 연주하는 모습.


정상부에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리를 부는 모습


향로 몸체에는 8개의 꽃잎으로 이우러진 세겹의 연꽃이 표현되어 있는데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향로 몸통에 새겨진 동물상


향로 받침은 용이 하늘을 향해 용틀임을 하는 용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부여 능산리절터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가 1993년 능산리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 한마리의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양감 있는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몸통, 그리고 박산 형태의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뚜껑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의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 및 바위 등이 빈틈없이 묘사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봉황 주위에 5마리의 새와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악 사이에는 각각 2개 및 10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올린 연기가 산간에 자욱한 안개처럼 퍼지거나 뚜껑과 연결된 관을 통해 봉황의 가슴에서 솟아 오르도록 고안된 것이다. 몸통은 8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세겹의 연꽃으로 표현되었으며, 꽃잎 위에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받침은 하늘을 향해 용틀임하는 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다리와 몸통사이에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배치하여 전체가 하나의 원형 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몸통과 받침은 용이 물고 있는 봉을 몸통에 낸 흠에 끼워 연결하였다. 이 향로는 당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능산리 절이 백제의 운명과 함께 사라져 버리면서, 그 속에서 찬란한 자취를 뽐내던 향로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묻혀 버리고, 그와 더불어 백제 중흥의 꿈도 빛을 잃게 되었다. <출처:부여박물관>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능산리 사지의 공방 건물. 원래는 왕릉의 제사를 담당하는 부속건물이었는데 후에 절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공방으로 바뀐것을 추정하고 있다.


공방건물 내부에는 장인들이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드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제작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3부분으로 분리해 놓은 모습.


이 향로는 능산리 절의 금당 안 불단 아래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백제문화단지내 능사 금당 내부에 이를 재현해 놓고 있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군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 능산리사지이다. 이 절터에서는 1990년대 이후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이 절의 창건연대와 내력이 적힌 사리함인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이 발굴된 곳이다. 이 절은 전형적인 백체 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1탑, 1금당과 강당,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의 규모는 익산미륵사지 등에 비해 크지는 않은 편이며, 능산리 고분군을 지키는 원찰의 의미를 갖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능산리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