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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벽돌(塼)은 오늘날 벽돌이나 타일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는 건축자재로 흙을 사각형, 직사각형, 마름모꼴 등의 형태로 바닥이나 벽면을 장식하는데 주로 사용했다. 무늬벽돌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이후부터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고분이나 절터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바닥이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무늬벽돌에는 다양한 소재의 무늬들이 그려져 있는데 불교적인 소재인 연꽃이나 보상화무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무늬벽돌의 무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 무늬를 통해 당시의 회화 경향이나 문화의 전파 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부여 규암면 외리 절터에서 파편을 포함하여 모두 140여점 출토된 보물 343호로 지정된 백제의 무늬전돌은 산경치,용,봉황,구름,괴수 등 여덟가지 무늬로 구성되어 있으며 얕은 부조형식으로 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회화성이 매우 뛰어난 이 벽돌들은 당시 백제의 예술, 건축, 종교와 사상적인 측면까지 살펴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데, 무늬벽돌에 새겨진 무늬는 도교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백제금동향로에서 보여주는 것들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백제와 교류가 많았던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무늬 전돌
보물 343호인 이 무늬 전돌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산경치, 용, 봉황, 연꽃, 구름, 괴수 등 여덟가지 무늬로 구성된 이 전돌은 얕은 부조형식으로 틀을 떠서 구워 만들었다. 벽돌 파편을 포함하여 모두 150여점이 출토되었으며, 그 중 42매가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 문양전은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로, 길이가 29cm 내외이고 두께 4cm의 벽돌로서 네 모서리에는 각각 홈이 패어져 각 전들을 연결하여 깔 수 있게 되어 있다. 문양전의 성격이나 제작기법 등은 대체로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부여박물관>



봉황무늬 벽돌(봉황문전), 이 벽돌에는 점줄무니와 양각 선무늬로 공간을 나누고 그 안쪽에 날아오르는 봉황 한마리가 새겨져 있다. 네모서리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벽돌 네장이 모이면 하나의 꽃무늬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산경치봉황무늬 벽돌(산수봉황문전),


산경치도깨비무늬 벽돌(산경귀형문전)


연꽃도깨비무늬 벽돌(연화귀형문전)


산경치무늬 벽돌(산수산경문전). 이 벽돌에 표현된 그림은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풍경으로 백제금동대향로에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단에는 물이 있고, 중단에는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이어지고, 상단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떠 있다. 산봉우리마다 소나무 숲이 있으며, 가운데 높은 봉우리에는 둥근선의 윤곽이 뚜렷하며, 그 사이에 속눈썹처럼 생긴 빗금을 넣어 부피감을 나타냈다.


용무늬 벽돌(반룡문전)


연꽃무늬벽돌(연화문전)


연꽃무늬구름무늬벽돌(연화운문전)


연꽃무늬전, 부여 궁남지, 백제


연꽃무늬 벽돌, 투루판, 8세기, 투루판 토욕 석굴사원에서 출토된 벽돌로 사원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활짝 핀 연꽃이 벽돌의 중앙 부분을 가득 채우며, 네 모퉁이에는 꽃봉우리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자리의 좁은 운양대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주 황룡사지 출토 보상화무늬 전 (7~8세기). 보상화무늬는 여러가지 식물의 꽃이나 잎을 조합해서 만든 공상적인 꽃무늬로 사산조 페르시아의 식물문양에 유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역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슬람 건축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식물문양도 같은 기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