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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동진을 통해 백제체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침류왕때이지만, 실제로 불교가 크게 융성한 것은 백제 부흥을 꿈꾸던 성왕대로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제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으로부터 기술자 등을 지원받아 도읍을 사비성으로 옮기면서 정림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세웠다. 이런 경향은 그의 아들인 위덕왕과 무왕, 의자왕때까지 이어졌으며, 이런 경향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특히 백제의 불교는 예술과 외교적인 측면에서 많은 족적을 남겨 놓고 있는데 신라의 금동불상인 반가사유상, 일본의 반가사유상, 신라의 황룡사 목탑, 석가탑, 일본 나라의 동대사를 비롯한 많은 불교 건축에 백제의 영향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일본의 사찰건축 전문회사 또한 이 당시부터 존재했던 백제의 장인집단이라고 한다.

 백제가 남겨놓은 불교예술의 걸작들은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석불과 태안의 마애석불이 있다. 또한 신라와 일본을 대표하는 불상인 반가사유상은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는 많은 금동불상들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승려들이나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소지하고 다녔던 25cm 이하의 소형 금동불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표현력이 배우 뛰어나다. 이런 백제 불교예술들은 중국을 거쳐서 서역의 기술들이 전파된 것으로 보이는데, 백제는 남조를 통해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실크로드상에 존재했던 국가들에서 많이 만들어졌던 불상제작 방식인 흙으로 빚어서 만드는 소조상들이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소조상을 만드는 기술을 바탕으로 화려한 금동불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사비에 불교가 꽃피우다.
사비도읍기의 백제는 불교가 가장 융성한 시기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는 한편 불상 조각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부여 군수리 불보살상, 신리 보살상, 서산마애불 등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보다 백제화되고 조소성이 풍부해진 특징을 볼 수 있다. 7세기는 백제 불상 양식의 절정기로 보다 사실적으로 진전된 양식을 이루어내었다. 부여 규암리 금동보살입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인체의 묘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관찰력으로 조각의 부드러움과 육체미가 표현된 체구 등에서 사실적인 양식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넙적한 얼굴에 밝고 잔잔한 미소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신체표현은 백제의 불교조각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백제의 금동불
백제의 금동불은 현재 25cm이하의 작은 불상들이 전해진다. 이러한 불상들은 승려들이 가지고 다니며 불법을 전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에는 중앙에 부처가 있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둔 '일광삼존불'양식이 유행하여 부소산 출토 '정지원'명 삼존불과 같은 예가 제작되었다. 이후 불상들은 표정이 훨씬 밝아지고 백제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다소 천진한 미소가 표현되기 시작하는데, 부여 군수리사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 7세기에 들면 불상들은 신체비례와 입체감이 강조되고 훨씬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출처:부여박물관>


관음보살(Gilt bronze avalokitesvara), 국보 293호, 부여 규암면,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으로 부여군 규암면 절터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불교가 전래된 초기의 관음보살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 293호
197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다른 하나의 관음보살입상과 함께 발견된 보살상으로 높이는 21.1㎝이다. 머리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가느다란 목걸이를 걸치고 있고, 가슴에 대각선으로 둘러진 옷은 2줄의 선으로 표시되었다. 양 어깨에서부터 늘어진 구슬 장식은 허리 부분에서 자그마한 연꽃조각을 중심으로 X자로 교차되고 있다. 치마는 허리에서 한번 접힌 뒤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있는데 양 다리에서 가는 선으로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작은 구슬을 살짝 잡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져 옷자락을 잡고 있다. 보살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2중의 둥근 받침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형태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얼굴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비례에 맞는 몸의 형태, 부드럽고 생기있는 조각수법을 통해 7세기 초 백제시대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살(Bodhisattva gilt bronze), 보물 330호, 부여 군수리, 백제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보물 330호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扶餘 軍守里 金銅菩薩立像)은 1936년 충청남도 부여 군수리 백제 절터를 조사할 때 발견된 금동보살이다.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고, 얼굴 좌우로 두꺼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깊이 있는 내면의 웃음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백제인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신체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으나 비교적 양감이 있고 당당한 모습이다. 배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는 옷은 발목 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새의 날개깃처럼 양쪽으로 퍼진 모습이며, 발목까지 내려온 또다른 옷자락에는 U자형의 주름이 표현되어있다. 오른손은 네번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을 구부린 채 위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면서 아래로 내리고 있다. 이 불상은 옷모양, 손모양 등이 시대적 특징을 나타내주고 있으며, 넓은 얼굴과 풍만한 미소는 백제불상에 즐겨 묘사되는 것으로 백제인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6세기 불상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정지원'이 새겨진 삼존불(Buddha triad witn iscription), 보물 196호, 부여 부소산. 광배 뒷편에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죽은 아내를 위해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글이 적혀 있다. 개인이 불상을 만들어 공양하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시대 말기 간략화된 형태의 불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 보물 196호
하나의 광배에 불상·보살상을 함께 주조한 삼존불(三尊佛)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배(光背)의 뒷면에는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죽은 아내를 위하여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저승길을 잘 가게 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본존불의 얼굴은 갸름하면서 살이 오른 모습으로 눈·코·입의 윤곽이 큼직해서 시원해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U자형의 주름을 지으면서 묵중하게 흘러내렸는데, 양 팔에 걸친 옷자락은 새의 날개깃처럼 양 옆으로 길게 뻗쳐있다. 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끝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의 양쪽 끝에는 합장하고 있는 두 협시보살이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수법이며 길게 날리고 있는 옷자락은 광배의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다. 왼쪽 협시보살은 얼굴만 남아 있고 신체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광배 위에는 연꽃속에 앉아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작은 부처 1구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조각양식이나 표현 수법이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과 같은 계통으로 중국 북위시대에 유행한 불상양식을 수용한 것이다. 금동계미명삼존불(국보 제72호)이나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과 같은 양식에 속하지만 그보다 조각수법이 약간 떨어지고 무늬가 간략화 되었으며 조형적인 탄력도 많이 감소되었다. <출처:문화재청>



보살, 서산 웅현리, 백제


관음보살, 부여, 백제


광배, 관음보살, 부여 관북리, 백제


부처, 부여 가탑리, 백제


부살, 부처, 보살, 신장, 부여 신리, 백제

마애불
마애불은 바위면에 부조나 선각으로 새긴 불상을 말한다. 조각된 면이 깊이 들어가 감실처럼 된 것과 석굴사원의 벽에 새겨진 것도 이에 해당된다. 마애불은 기원전 3~2세기 무렵 인도에서 조성되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 백제의 마애불로는 태안마애삼존불과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들 수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본존불은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맺고 있다. 특히 이 불상에 보이는 미소는 일반인들에게 '백제의 미소'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본존불의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오른쪽에는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보살입상은 양손을 위아래로 하여 보주를 받들고 있어 당시 백제의 보살상에 많이 나타나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태산마애삼존불(국보307호)은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달리 중앙의 보살입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불입상을 배치하는 도특한 구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6세기말에서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목조의 전실을 꾸몄던 것으로 보이는 구조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출처:부여박물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84호,복제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리진 서산 용현리 보원사 절터로 들어가는 계곡에 위치한 삼존불상.

백제의 소조상과 벽화편
백제의 소조상은 6~7세기에 정림사지를 비롯하여 능산리사지, 서복사지, 구아리유적, 금강사지 등 부여 지역과 익산 제석사지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소조상은 불경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앙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하기 위해 화려하게 채색되어 벽화와 함께 탑이나 금당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벽화편은 벽체의 안쪽에 황토를 두텁게 바르고 고운 점토로 미장한 후 백회를 칠하고 안료로 채색하였다. 이러한 유물을 통해 사찰 내부를 어떻게 장식했는지, 그리고 어떤 불교 조상들을 제작하였는지에 대하여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반가사유상, 부여 부소산


나한얼굴(부여 구아리), 보살얼굴(부여 쌍북리), 소조상은 불교 전판 경로인 실크로드상에 있는 많은 유적지에서 주로 출토되는 불상 등의 형태로 불교가 남조를 통해 한반도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다양한 소조상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손(익산 제석사지), 몸체(익산 제석사지), 몸체(익산제석사지), 삼존불편(부여 정림사지), 옷과 신발(익산 제석사지),


발(부여 금강사지), 몸체하부(부여 금강사지),


보살얼굴(부여 서복사지), 인물상(부여 구아리), 코끼리 머리(부여 서복사지), 동물(부여 구아리)


벽화편(Temple mural painting), 부여 부소산 서복사지, 부여 임강사지, 백제


작은 공양탑 (Bronze miniature of pagoda), 부여 금성산, 백제


정병(Earthenware kundika), 부여 관북리 유적, 백제


육각뚜껑(Bronze lid of lantern), 부여 부소산사지, 백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