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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덕왕은 신라 41대왕(재위 809~826년)으로 난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헌덕왕은 원성왕의 손자로 39대 소성왕의 동생이기도 하다. 통일신라의 안정기가 지나고 지배계층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되었던 시기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안정화하고,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였다. 헌덕왕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웅주도독 김헌창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동강 지역에 장성을 쌓고 국방을 강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헌덕왕 자신 또한 조카인 반란을 통해 조카를 죽이고 즉위하였던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반기 귀족세력간의 갈등을 이끌었던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헌덕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경주시 동천동 지역은 경주 도심 북쪽을 흐르는 북천(알천) 북쪽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천(알천)은 그의 할아버지인 원성왕이 즉위할 때 원성왕보다 서열이 높은 김주원이 홍수로 알천을 건너오지 못해서, 왕으로 추대된 일화가 있는데, 그런 사연을 가진 알천 북쪽에 능의 자리를 잡은 것은 이런 일화를 상기시키면서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왕릉은 당나라 능묘제를 받아들인 원성왕의 괘릉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봉분 둘레석에는 12지신상을 새겨 놓고, 그 바깥쪽에는 난간석을, 상석으로는 서구의 신전 제단 같은 상석을 놓고 있다.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무인석을 비롯하여 석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여 조성한 원성왕릉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사적 29호로 지정된 헌덕왕릉.


헌덕왕릉 남쪽을 흐르는 경주 북천(알천). 원성왕릉 즉위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 하천이다.


헌덕왕릉 들어가는 길


서구 신전의 제단처럼 만들어 놓은 상석. 당나라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던 원성왕대 이후에 지어진 왕릉으로 당나라를 통해서 서구의 문물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 왕릉에서는 이런 상석이나 석물들이 사라진다.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석. 원래는 12지신상을 붙여 놓았으나 지금은 5개의 12지신상 만이 남아 있다.


둘레석에 남아 있는 12지산상 중 토끼상


둘레석에 남아 있는 12지신상. 소.범.쥐.돼지상


봉분 바깥쪽에 세워져 있는 난간석


경주의 신라왕릉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꾸불꾸불하게 자라는 경주 특유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왕릉이 보인다.


왕릉 앞 소나무숲


헌덕왕릉 앞으로 보이는 명활성이 있는 명활산.

신라 헌덕왕릉, 사적 29호, 경주시 동천동
이 능은 신라 41대 헌덕왕(재위 809~826년)을 모신 곳이다. 경주시 북쪽을 가로 지르는 북천의 북안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밑둘레 82m, 직경 26.8m, 높이 6m이다. 무덤의 하부에 병풍처럼 다듬은 돌로 보완했고, 보호석에 십이지산상을 새겼는데 지금은 북쪽에 있는 쥐를 비롯하여 소.범.토끼.돼지상 등 5개만 남아 있다. 헌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김헌창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당나라와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였고, 국방에 힘써 패강장성을 쌓았다. 고려.조선시대의 기록에 북천이 범람하여 능이 훼손되었다고 전하며, 1970년 경주 고도 관광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보수되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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