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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벌교 대지주 저택, 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집

younghwan 2012. 10. 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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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대지주 저택이다.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대저택은 순천만 해안과 낙안들판을 연결해 주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였던 홍교가 설치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낙안, 순천, 보성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곳으로 보인다. 이 집주인은 벌교지역 대지주였으며, 이집 막내아들이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의 친구였기때문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때문에 소설에서 긍정적으로 표현된 대지주의 집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대지주의 저택인 현부자집이 일본식이 많이 반영된 당시로서는 신흥부호가 살았던 현대식 대저택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이집은 전통적인 대지주가 살았던 저택이라 할 수 있다. 북쪽편으로는 드넓은 낙안 들판이, 남쪽으로는 벌교천이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남해안 한눈에 들어오는 벌교지역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집은 벌교홍교 동쪽편 언덕에 모여있는 크지 않은 마을에서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오래된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사랑채와 마당을 볼 수 있다. 안채는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문이 닫혀 있다. 대지주의 저택으로 마당히 상당히 넓은 편이며, 경북지역이나 서울의 저택들과는 달리 정형화된 건물배치는 하고 있지 않으며, 여러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에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깨끗하게 정비되는 다른 저택들과는 달리 담벼락이 허물어지는 등 아직 정비되지 않은 옛 한옥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겼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태백산맥 1권 141쪽)". 사랑채, 겹안채, 창고 자리, 장독대, 돌담 등 그 모든 형태와 규모들이 대주주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안채 오른쪽 앞부분 귀퉁이에 있는 돼지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대지주라 하더라도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돼지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의 알뜰함과 환경오염을 막고자 했던 살아 있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 집에서도 오른쪽으로 고읍들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자리를 무심코 잡은게 아님을 보여준다. <출처:보성군청>


벌교천을 건너는 옛다리인 보물로 지정된 벌교 홍교 동쪽편에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옛 대지주 저택과 주변의 크고 작은 주택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


벌교읍과 벌교천이 내려다 보이는 이 마을은 주택규모들이 대부눈 큰 편으로 김범우의 집으로 알려진 대지주 저택을 중심으로 지주계층이 살았던 마을로 보인다.


마을입구에 오래된 한옥.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꽤 큰 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와가 낡고, 일본식 유리문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사랑채였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자체가 5칸이 넘어 보이며, 기와를 올린 지붕 또한 상당히 고급스럽게 지은 집이다.


이 집은 출입문을 문간채 형식으로 골목길에 두고 있다. 'ㅁ'자형을 주택과 비슷한 형태의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을 골목길.


골목길에 '김범우의 집'이라 적힌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김범우의 집' 앞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경사진 언덕에 꽤 높은 축대를 쌓아서 집을 지었다.


김범우의 집 대문. 문간채 형식을 지어진 대문으로 바깥에 담을 두르고 있다.

김범우
유학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강단과 지조를 지닌 선비이자 양심적 지주인 김사용의 아들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중 전남 서남지구사령관이 되어 나타난 형 김범준과는 열 살 터울이다.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체격을 가진 그는 해방전 학병으로 입대하지만 미군의 포로가 되어 OSS 훈련을 받고 뒤늦게 귀향해 순천중학의 선생이 된다. 한때 이상적 평등사회를 위해 봉건적 계급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과 민족주의 통일 노선을 지향한다. 그는 믿고 따랐던 염상진의 극렬한 좌경을 체험하면서 정치 폭력화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혐오한다. 그는 정치적 택일보다는 민족의 발견과 단합을 역설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에는 좌익에 가담해 도당 문화선전부에서 일하기도 하고 미군의 통역요원 노릇을 하다가 탈출해 인민군 통역관으로도 활동한다. 서부전선으로 후퇴하던 중 총상을 입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분단으로 남겨진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진다. 그는 왜 필요한 인물일까. <출처:보성군청>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오른편에 사랑채와 마당이 있다. 원래의 한옥을 일제강점기에 크게 수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붉은 벽돌과 양옥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각기둥 형태의 목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건물이 낡아서 대지주 저택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현부자집보다 훨씬 큰 규모의 저택이다.


사각기둥 목재를 사용하여 지은 사랑채. 문살이나 건물형태는 전통가옥의 사랑채이나 일제강점기 이후에 수리하거나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앞 마당. 마당이 상당히 넓고, 토담으로 둘러져 있다.


문간채. 사랑채 마당에도 담을 두르고 출입문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볼 수 없고, 이 집 뒷편의 허물어진 담 사이로 안채가 보인다.'-'자형으로 지어진 단순한 형태의 건물이며, 붉은 벽돌을 사용하고 있다.


토담에 기와를 얹어 놓고 있는 담장.


김범우의 집에서 내려와 벌교천 홍교를 건너서 벌교읍내로 들어간다. 번화한 읍내와 가까우면서도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


도로변에서 보이는 김범우의 집. 상당히 오래된 울창한 고목이 집 앞에서 자라고 있다. 주변의 집들도 대부분 큰 규모로 지주계층들이 살았던 마을로 보인다.


마을 앞을 흐르는 벌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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