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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귀족층을 중심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기는 했으나, 국내에서는 고려초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고려 문종대에 송나라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중국이 5대10국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기술자들이 이주해 왔지 않았을까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송나라, 고려, 일본간 해상무역에서 중요한 교역품이었기때문에 무역선이 정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서남 해안에 고려 청자 전성기때 도자기를 굽던 가마들들이 많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도자기 생산지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요를 중심으로 서울과 가까운 광주.여주.이천 일대에 있었던 반면에, 고려청자를 굽던 도자기의 생산지는 전남 강진, 전북 부안을 비롯하여 서남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청자 제작 기술이 처음 도입되었던 시기에는 수도인 개경 주변과 경기도 일대 가마에서 고려청자가 만들어졌으나 점차 해상무역로에 위치한 서남해안이 청자의 주력 생산지가 되었고, 중앙정부에서도 조운체계를 이용하여 이들 가마에서 청자를 공급받았다. 당시 조운체계에 의해서 운반되는 선박들이 많이 침몰된 완도, 보령, 군산 등 주요 항로에는 당시에 좌초된 선박과 함께 바다에 묻혀 있던 도자기들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신안 앞바다에서는 당시 송나라에서 생산되어 일본으로 운송되던 많은 청자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청자의 생산과 유통
도자 제작 초기 단계에는 고려 수도인 개경 주변에 가마들이 위치하였으나 11세기에는 전라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강진과 부안이 대표적인 생산지가 되어 왕실과 중앙 관청에서 사용될 도자기를 제작하여 공납하였다. 당시 최대 소비지인 개경은 강진, 부안과 먼 거리에 있어 운송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성종 11년(992)에 완성된 조운제를 활용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개경으로 향하던 중 물살이 급한 곳을 지나거나 기상악재를 만나 좌초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서해안에서 끊이지 않고 발견되는 해저 인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도자기다. 침몰 선박에서 인양되는 도자기는 완도, 보령 원산도, 무안 도리포, 군산 야미도.비안도.무녀도.십이동파도, 태안 대섬.마도 등 서해 해안선 인접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가마터 출토품, 10세기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가마터 출토품(10세기), 경기도 양주시 부곡리 가마터 출토품(10세기)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 가마터 출토품(10세기), 경기도 용인시 서리 가마터 출토품(10세기), 전북 고창군 용계리 가마터 출토품(고려 11세기)


충남 태안군 대섬 출토품, 고려 12세기


충남 태안군 대섬 출토품, 고려 12세기


충남 태안군 대섬 출토품, 고려 12세기


충남 태안군 대섬 출토품, 고려 12세기


연꽃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충남 태안군 대섬 출토


대나무 서(복제품), 앞면에 "중방 도장교 오문부", 뒷편에 "댁에 올림, 좋은 꿀을 단지에 채움"이라고 적혀 있음.


충남 태안군 대섬 출토품, 고려 12세기


전남 강진군 사당리 가마터 출토품, 12세기


전남 강진군 사당리 가마터 출토품, 12~13세기


전북 부안군 유천리 가마터 출토품(12~13세기), 인천시 경서동 가마터 출토품(11~12세기)


경기 용인시 보정동(12세기), 충남 공주시 신영리(12세기), 전북 부안군 진서리 (12세기) 가마터 출토품,


전남 강진군 사당리 가마터 출토품, 13~14세기




전남 강진군 사당리 가마터 출토품, 13~14세기


<자삼동일회삼>, <동자자일>, <동삼자일회목분>이 쓰인 유약시험편, 13세기


전북 부안군 유천리 가마터 출토품, 고려 13~14세기


강진 용운리 가마터, 강진 용운리 가마터는 사적 68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0~82년에 9호와 10호 가마터가 국립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특히 10호 가마터는 도자파편 퇴적층이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고려 청자의 양식흐름과 특징을 알 수 있어 도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전남 강진군 용운리 10호 가마터 2층 출토품, 12~13세기 중반


전남 강진군 용운리 10호 가마터 2층 출토품, 12~13세기 중반


전남 강진군 삼흥리 가마터 출토품, 11세기


전남 강진군 용운리 9호 가마터 출토품, 고려 11세기


전남 강진군 용운리 10호 가마터 1층 출토품, 11세기

벽돌가마와 진흙 가마
10세기에 한반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기를 생산했던 벽돌 가마는 11세기에 들어서 진흙 가마로 변화한다. 벽돌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는 올리브그린색을 띠며 주력 생산 기종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완이었다. 진흙가마에서 제작된 청자의 색은 맑은 비취색을 띠게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고려의 미감이 반영된 청자가 제작되었다. 가마는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에 분포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전국의 청자 생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