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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문명이 발생한 이래로 인류는 죽은자가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와 마찬가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껴묻거리를 무덤에 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동기시대 무덤양식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고분에서는 수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다. 무덤 껴묻거리 중에는 무기류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신구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식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그릇들일 것이다.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무덤 껴묻거리는 그 수량이나 종류가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기본적인 생활용품이 그릇들이 많은 무덤들에서 출토되고 있다.

 고려시대 무덤은 많이 발굴되지는 않고 있지만, 일부 발굴된 무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꺼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개성부근에서 발굴조사된 고려 인종의 무덤인 장릉이다. 이곳에는 시호를 올린 시책을 비롯하여, 청동으로 만든 합, 은으로 만든 숟가락을 비롯하여 청자로 만들어진 다양한 도자기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국보 94호로 지정된 참외모양의 병은 맑고 투명한 비취색으로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비색'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또, 고려 귀족층의 무덤인 12세기 문공유의 무덤에는 상감청자의 편년 설정의 기준이 되는 국보 115호로 지정된 국화넝쿨무늬 완이 출토되었다. 이들 청자들은 무덤의 조성연대가 밝혀져 있기때문에 전성기 청자의 화려한 모습을 잘 보여주면서, 청자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시대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무덤에 묻힌 도자기
고려시대 무덤은 신분과 직급에 따라 규모 및 부장품이 다르게 구성되었다. 왕실과 중앙귀족 같은 최상위 계층의 경우 석실묘를, 하위 관료층이나 평민은 토광묘를 사용하였다. 무덤에는 도자기, 도기, 금속기 등이 부장되었는데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청자다. 여기에 고려시대 사람들의 계층별 무덤 출토품이 있다. 인종의 장릉(1146년 축조)에서 나온 것으로 전하는 청자 일괄품은 형태와 유색이 매우 뛰어나 12세기 전반 고려청자의 제작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그리고 중앙관료였던 문공유(~1159) 묘 출토 일괄품으로 전해지는 도자기는 고려 청자와 중국 백자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반면 지석도 없는 무명씨의 무덤 부장품은 품질이 낮다. 즉, 고려시대 사람들의 무덤에 부장된 도자기의 질과 수량은 무덤 주인의 신분이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참외 모양 병, 국보 94호, 고려 12세기, 인종 장릉 출토,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의 장릉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이 병 이외에 옥으로 만든 시책과 청자 받침대, 청자 잔과 뚜껑, 청자 합 등이 함께 전한다. 맑고 투명한 비취색의 유약은 오늘날 고려청자 중 '비색'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받침대, 고려 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잔(왼쪽), 합(오른쪽), 고려 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국화 넝쿨무늬 완, 국보 115호, 고려 12세기, 문공유 묘 출토, 경기도 개풍에 있는 문공유(~1159)의 무덤에서 지석과 함께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문공유는 고려시대 문신으로 글에 능했으며, 예종.인종.의종 세 명의 왕을 섬겼다. 맑고 투명한 청자유에 화려한 역상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상감청자 발생에 관한 편년 설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이 완이 기준이 되고 있다.


청백자 봉황머리 모양 병, 중국 송 12세기, 문공유 묘 출토


백자 국화무늬 잔, 중국 송, 문공유 묘 출토


청백자 넝쿨무늬 주자, 중국 송, 문공유 묘 출토



강원도 삼척시 삼화동 무덤 출토품, 고려 12세기


강원도 삼척시 삼화동 무덤 출토품, 고려 12세기


전북 진안군 수천리 무덤 출토품, 고려 12~13세기


무덤 출토 도자기 병과 매병, 고려 12~13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