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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갖춤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찰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스투파(탑)에 모셔졌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기와 공양물을 일컫는다. 사리는 부처의 유골인 진신사리와 부처의 정신을 상징하는 법신사리를 통칭해서 일컫는데 실제로는 법신사리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사리갖춤은 시라를 담는 그릇, 그릇속에 넣는 불상, 작은탑, 경전과 구슬, 장신구 등의 공양물을 뜻한다. 사리를 담는 그릇인 사리기는 유리 또는 수정으로 만든 그릇과 이 그릇을 금,은,철,동,돌 등 다양한 재질의 용기에 차례로 넣어 사리에 안치한다.

 부처의 사리는 불상이 신앙이 중심이 되었던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기때문에 사리를 담는 그릇과 공양물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정성이 들어간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까지 석탑의 해체.보수과정에서 많은 사리갖춤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감은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갖춤을 비롯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불국사석가탑사리장엄구 등 많은 걸작 유물들이 남아 있다.

사리갖춤
부처의 시신을 화장한 후 남은 뼈를 사리라 하며, 이 사리를 안치한 무덤을 탑이라 한다. 사리에는 부처의 유골을 지칭하는 진신사리와 부처의 정신, 즉 불경을 뜻하는 법신사리가 있다. 사리는 금.은.동.철.돌.유리.수정 등 여러 재질의 용기에 겹겹이 넣어져, 불상.구슬.장신구 등의 공양물과 함께 탑에 안치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왕족, 귀족과 지역 중심인물들이 발원자가 되어 많은 탑을 건립하고 사리갖춤을 봉안하였다. 초기에는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에서 나온 사리기와 같이 난간 위에 드림장식이 있는 집 모양 사리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후기에 이르면 사리기의 형식은 간소해져 곱돌로 만든 사리합이 유행하였으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따라 99개, 혹은 77개의 작은 탑을 만들어 사리기와 함께 봉안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사리기의 모양이 원통형이나 팔각형 등으로 바뀌면서 도자기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형태가 더욱 단순해지면서 뚜껑이 있는 원형의 그릇을 많이 사용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보물 325호, 칠곡 송림사, 통일신라 8세기
1959년에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탑신의 거북모양 석함 안에서 사리기와 여러 공양물이, 5층 옥개석 윗면에서는 고려상감청자합이 발견되었다. 화려한 전각모양 사리가 안에 녹색유리 사리병과 잔을 안치하였다. 금판을 오려 만든 신라 고유의 금속공예기술과 서역에서 유입된 유리 제작 기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출처:대구박물관>


송림사 오층전탑에서 출토된 집모양 사리기와 녹색유리로 만든 사리병과 잔


사리와 함께 봉안된 공양물


전탑 5층 옥개석에서 발견된 청자합


갈항사 동.서삼층석탑 사리갖춤, 경북 김천 갈항사, 통일신라


사리합에서 출토된 법어가 쓰여진 종이


김천 갈항사 동.서삼층석탑(국보 99호)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갖춤, 대구 동화사 비로암, 통일신라 863년, 신라 44대 민애왕을 추모하여 건립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 봉안하였던 금동제사방불판이다. 금동판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어 상자모양으로 연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동쪽 약사삼존불, 서쪽 아미타삼존불, 남쪽 석가삼존불, 북쪽 비로자나삼존불. <출처:대구박물관>


민애대왕석탑 사리그릇


내화리 삼층석탑 사라갖춤, 경북 문경 내화리, 통일신라 9세기


동화사 금당암 사리갖춤, 대구 동화사 금당암 서삼층석탑, 통일신라 9세기


장연사 터 동삼층석탑 사리갖춤, 경북 청도 장연사 터, 통일신라 9세기 후반


봉서리 삼층석탑 사리갖춤, 경북 문경 봉서리, 고려 12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