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내 행궁 아래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사는 고려말 공민왕때 국사를 지낸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이 절은 북한산에 있던 중흥사 주지로 있던 원증국사 보우가 개인적으로 수도하기 위해 세운 작은 암자로 그가 입적한 이후 태고암이라 불렀다. 북한산 봉우리들과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태고사는 고려말 이후 거의 폐사되었다가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을 쌓고 관리하기 위해 승병들이 거처할 도량으로 중흥사와 함께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131칸의 비교적 큰 규모로 중창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된 이후 대웅전과 요사채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태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북한산성내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신도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사찰이지만, 조계종과 함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태고종에서 종조로 여기는 원증국사 보우의 사리탑과 탑비가 남아 있다.
원증국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여 여러 사찰에서 수양했으며, 중흥사 주지를 지내면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태아암을 창건하였으며, 이때 '태고암가'를 지었다고 한다. 충목왕대에는 원나라 연경에 머물기면 설법을 하기도 했으며, 공민왕대에는 궁중에서 설법하였고 공민왕은 그를 국사로 임명하였다.
태고사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 '북한지'에는 '태고사의 규 모는 131칸에 이르며,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 화약용 흑탑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749호)이 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조선휘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0년대까지 경내에 5층 석탑이 남아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이 지은 시를 새긴 현액과 영조가 직접 쓴 현액이 걸려 있었다고 전한다. <출처:고양시청>
북한산성내 큰 사찰이었던 중흥사 동쪽편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한 태고사. 고려말 국사를 지낸 원증국사가 개인적으로 수도하기 위해 창건한 작은 암자에서 출발한 태고사 북한산 봉우리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북한산 계곡에서 태고사로 올라가는 언덕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중흥사 절터 앞 계곡
태고사는 원래 양지바른 언덕에 개인적인 수도처로 마련한 작은 암자였지만, 조선후기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크게 중창하여 131칸에 이르는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들은 언덕에 축대를 쌓은 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찰 입구 승려들이 머무는 요사채. 태고사는 한국전쟁때 불타버린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사찰 입구의 고목
태고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대웅보전 주련과 문살
대웅보전 내부
대웅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북한산 계곡
보물 611호로 지정된 원증국사 탑비
원증국사 승탑이 있는 언덕으로 오르는 길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산신각.
승탑이 있는 곳으로 오르는 계단길
계단 옆 바위에 세워 놓은 작은 불상들
원증국사 승탑이 있는 언덕. 북한산 봉우리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원증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749호)
언덕에서 보이는 북한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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