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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가야유물을 주로 전시했던 진주박물관은 1998년 김해박물관이 개관으로 그 성격을 임진왜란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현재 진주박물관 임진왜란실에는 당시 역사와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 당시에 사용하였던 중요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용했던 무기들은 전국적으로 많은 박물관.기념관 등에서 전시하고 있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진품은 육사박물관.해사박물관과 함께 진주박물관에서 많이 소장하고 있다. 상당부분은 임진왜란 당시 주요 격전장과 남해바다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라 할 수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천자총통(보물647호), 현자총통(보물885호), 지자총통(보물862호), 중완구(858호)가 있다.

 16세기말 7여년에 걸쳐서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임진왜란은 한.중.일 3국이 대규모로 참전한 국제적인 전쟁으로 당시에 존재했던 다양한 무기들이 사용되었다. 일본이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를 마감하면서 잉여자원이라 할 수 있는 무장세력들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포르투갈로부터 전수받은 신무기인 조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주력무기인 활에 비해서 뛰어났다고 보기는 힘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군이 전쟁초기에 연전.연승할 수 있었는 것은 오랜기간의 내전으로 통해서 축적된 경험 많은 군사들이었던 반면에 조선군은 왜구를 축출한 조선초 이후 큰 전쟁이 많지 않았기때문 경험많은 군인들이 많지 않았기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무기는 다양한 형태의 화포, 신기전을 비롯한 신무기들이 왜군에 비해서 적지 않았다. 특히, 수군은 오랜 기간동안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무기체계와 선박을 갖추고 있었기때문에 전쟁기간 동안 왜군에 대응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천자총통, 보물 647호, 우리나라 화포 중 가장 큰 화기이며, 명문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정을묘시월 천 사백구십삼근 십량 장 양내료동'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55년(명종10)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자총통, 보물885호, 크기가 세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에 속한다. '신기비결', '화포식언해' 등의 기록에는 화약 4냥을 장약하며 발사물로 차대전.차중전이나 철환 100개나 연환 30개를 발사할 수 있으며 사거리가 800~1,500보에 이른다.


현자총통, 복제품, 총통류 가운데 크기가 세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이다. <신기비결>, <화포식언해> 등의 기록에는 화약 4냥을 장약하며 발사물로는 차대전.차중전이나 철환 100개나 연환 30개를 발사할 수 있으며 사거리가 800~1500보에 이른다고 했다.


지자총통, 보물862호,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화기로서 화약 스무냥을 사용하여 조란탄이라는 철환 이백개나 장군전을 발사한다. 스물아홉 근에 달하는 장군전의 경우 팔백 보를 날아간다.


별황자총통, 복제품, 별황자총통은 원래의 황자총통보사 크고 만든 방법도 차이를 둔 개량형의 화포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존 총통에 포이와 포미의 자루를 덧붙임으로써 발사각도의 높낮이를 조정하는 등 운용의 편의를 고려하였다.


대완구, 복제품, 완구는 화포의 하나로 댕구라고도 한다. 1407년(태종7) 경 처음 만들었으며, 임진왜란 때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경주성 탈환에 큰 역활을 하였다. 완구는 포신보다도 큰 발사물을 장전하는 그릇 형태의 발이 달려 있다. <화포식언해>, <융원필비>에 완구는 크기에 따라 네가지 종류가 있으며, 유효사거리는 3백5십보부터 5백보 정도라고 했다.


중완구, 보물858호, 완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여 비격진천뢰, 단석 등의 탄환을 발사한다. 완구는 발사물이 큰 돌덩어리이기 때문에 총통의 앞에 단석을 장전하는 그릇 형태의 발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기에 따라 네 가지 종류가 있으며, 유효사거리는 350보부터 500보(약400~500m) 정도였다.


단석, 완구에 사용된 포탄의 일종으로 재료는 화강석이다. 박과 같이 둥글게 다듬어 성을 공격하거나 수비하는데 인마 살상용으로 사용하였다. 비격진천뢰, 선조 때 이장손이 발명한 포탄으로 감겨진 도화선의 숫자에 따라 폭발시간이 좌우된다. 심지에 불을 붙인 후 성벽 위에서 직접 손으로 던지거나 굴리며, 완구류를 이용해서 발사하면 심지가 타 들어가 폭발한다.


블랑기포, 명나라에서 사용했던 후장식 화포로 1517년경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것이다. 모포와 자포로 구분되었으며 자포에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여 모포의 약실에 장착한 후 발사한다.


쌍승자총통, 총신이 쌍으로 이루어져 한 쪽 총신에 3발을 동시에 장전.발사할 수 있어 양쪽 6발을 목표물에 집중 표격할 수 있다. 만력 개미년(1583) 10월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소승자총통,승자총통을 개량한 화기로 죽절이 없어지고 가늠쇠와 가늠자가 달려 있어 조준이 편리하게 되어 있다. 만력 정해년(1587)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소총통.탄환, 2004년 7월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사천왜성을 발굴할 때 출토된 것이다. 정유재란 당시인 1958년 10월 사천전투시 명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승자총통, 명종 때 북병사 김지가 기존 총통을 개량하여 장전과 휴대가 간편하게 하였으며 총신을 길게 하여 사정거리를 늘이고 명중률을 높였다. 화약 한 냥을 사용하여 철환 열다섯개를 발사하며, 사거리는 육백보(약750m)이다.


삼혈포,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 화기의 일종으로 3개의 총구가 있다. 3발을 동시에 장전.발사할 수 있다. 원환, 총신이 쌍으로 이루어져 한 쪽 총신에 3발을 동시에 장전.발사할 수 있어 양쪽에 6발을 목표물에 집중 포격할 수 있다. 만력 계미년(1583) 10월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삼총통, 조선초기부터 북방경비 및 실전에 널리 활용되었던 화기이다. 하동 고전면에서 출토되었다.


사전총통, 불씨를 손으로 점화해 발사하는 화기로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용되었다. <국조오례의서례>에는 세전 4발이나 차세전 6발을 장전한 후 동시에 발사한다고 하였다. 팔전총통, 1557년(명종12) 3월 청동으로 주조한 것으로서,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발사하는 유통식 화기로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용되던 화기이다.


화약통, 조총에 장약하기 위한 화약을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한 휴대용 화약통이다. 목제에 거북문양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창, 긴병기를 대표하는 무기로 찌르는 공격을 하며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월도, 칼날의 모양이 반달과 같다고 하여 언월도라고도 한다.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고 조련이나 시위 때 웅장함을 보이기 위해 사용하였다. 치도, 검.창.봉의 기능을 겸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창과 같이 찌르거나 검과 같이 벨 수 있어 상.하.좌.우로 휘두르며 치는 공격이 가능하다.


놋쇠미늘 갑주, 복제품, 조선시대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갑옷으로 놋쇠로 만든 미늘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이 갑옷은 경주부윤의 융복을 복원한 것이다.


화살, 활이나 화약병기를 이용하여 적을 살상하는 발사물이다. 특히 조선의 화살촉은 버드나무잎처럼 생겨 유엽전이라 불렀다.


신기전.화전, 신기전은 총통화기차를 이용하여 화약의 힘으로 발사하여 직접 살상하며 밤에는 교란용으로 사용하였다. 화전은 화약을 이용하여 적진을 불태우거나 혼란용으로 사용하였다.

화차, 화차란 수레 위에 수십개의 총을 장치하여 이동을 쉽게하고 한번에 여러 개의 총을 쏠 수 있게 만든 무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만 모두 다섯 종류의 화차가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1451년 문종이 직접 만든 화차가 대표적이다. 이 화차의 구조는 두 바퀴가 달린 수레 위에 총통기나 신기전기 중 하나를 올려 놓고 사용하게 되어 있다. 총통기는 사전총통(화살4발을 동시에 쏠 수 있는 총) 50기를 설치한 것이고, 신기전기는 로케트형 화기인 신기전 100개를 꽂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무기이다. 이렇게 총통기를 이용하면 한번에 200발의 화살을 쏠 수 있으며, 신기전기를 사용하면 100발의 화살을 쏠 수 있다. 따라서 서,너명이 화차를 이용하여 50~100명이 할 수 있는 효과를 올릴 수 있는 셈이다. 임진왜란 때 변이중이 만든 화차는 네번째의 화차로 문종화차를 개량하여 수레 위에 40개의 승자총으로 총통기를 설치하고 총의 심지를 이어서 차례로 쏘게 한 것이다. 이 변이중의 화차는 박진이 경주 탈환전에서, 그리고 권율이 행주산성 전투에서 각각 사용하여 커다란 전과를 올렸다. 또한 수군들도 전함에 화차를 설치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출처:진주박물관>



마름쇠, 뾰족한 부분이 늘 위로 향하게 되어 있어 적들이 쳐들어 오는 길목이나 성벽 아래에 설치하여 적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화살촉, 화살촉은 공격용 무기인 화살의 일부로 직접 적을 살상하는 부분이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버드나무 잎처럼 생겼다고 하여 유엽전으로도 불렸다. 경남 의령에서 발굴된 것이다.


병학지남, 1787년, 16세기 중기의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의 군대 훈련 방법에 관한 부분을 요약하여 국내 실정에 맞추어 만든 병서이다. 이 책에는 군대의 조련, 진을 치는 법, 행군, 호령 등에 대한 규정과 설명이 그림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17세기 이후, 군대 훈련의 기본 지침서로 사용되었다.


화포식언해. 복제품, 인조때 만들어진 각종 총포의 발사 방법과 화약제조 기술을 다루어 놓은 책이다. 원래 '화포식'이라는 제목의 한문책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 비록 조총의 사용법과 각종 무기들의 사거리는 나와 있지 않아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당시 화기들의 전반적인 사용법과 화약제조법을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우츠보.화살, 복제품, 일본의 휴대용 화살통과 화살이다.


일본갑옷(요로이). 전통적인 일본의 갑주는 창.칼에 대한 방어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국시대 총포가 증장하면서 개량 발전하였다. 갑옷은 옻칠이 되어 있으며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조총, 1576년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헤 전래된 이후 자체 제작하여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주 무기로 삼았던 휴대용 화기이다. 화약을 총구에 넣고 탄환을 넣은 뒤 장전.발사한다. 유효사거리는 약 50~80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