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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진주박물관은 선사시대와 가야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1984년도에 개관한 박물관이었으나, 1998년 금관가야의 중심지 김해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서면서 가야시대 유물은 대부분 이관하고 임진왜란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주전시실이라고 할 수 있는 2층전시실은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1층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지역박물관 성격을 하고 있다.

 진주를 중심으로한 지리산 동쪽 남강유역에는 선사시대 이래로 사람이 정착해서 살아 왔던 곳으로 큰 강을 끼고 있는 하류지역이나 해안가 지역보다는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지는 않고 있는 편이며, 청동기시대 이후 유적들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지로는 남강 중류지역으로 지리산과 산청지역이 가까운 대평리 지역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삼한시대 국제무역항이었던 사천 늑도지역,  합천.함양,산청 등 지리산 주변과 남강 그리고 섬진강유역에 이르는 넓은 세력판도를 형성하였던  경상남도 서부지역의 대가야 연맹이 초기 역사시대 서부경남의 유적지라 할 수 있다.

농경문화의 보고, 대평리
남강변의 진주 대평리에는 대규모의 마을과 밭, 무덤으로 이루어진 청동기시대 최대의 농경취락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는 3,000여년 전부터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는데, 2,600년 전 쯤이 되면 오늘날의 도시와 견줄 만한 대규모 취락이 자리하여 주변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대평리 유적에서는 살림집 400여동과 33,000㎡에 이르는 밭이 조사되었는데, 거주지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을을 둘러싸는 환호를 건설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남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비옥한 땅에서 조.쌀.밀.보리.기장.콩.들깨 등이 곡식을 재배.수확하고, 여러가지 석기와 옥 장신구, 토기 등을 대량 생산하여 수준높은 삶을 영위하였다. <출처:진주박물관>


대롱모양옥,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출토유물, 청동기시대


붉은간 토기, 가지문 토기,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출토유물, 청동기시대


조가비 목걸이, 옥원석, 옥장신구를 만드는 공구, 숫돌.원형숫돌.원형공구.구멍뚫는 공구, 진주 대평리, 청동기시대


식기용 토기, 조리용 토기, 진주 대평리, 청동기시대


농사짓는 석기, 호미.괭이.반달형돌칼.돌낫, 진주 대평리, 청동기시대


붉은 간토기, 청동기시대, 진주시 상촌리

2,000년 전의 국제항, 늑도
남해의 작은 섬, 사천 늑도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조개무지, 주거지, 건물지, 구덩이, 무덤 등이 조사되고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삼각형점토대토기를 비롯한 여려 종류의 토기와 반량전, 동검, 삼각형 동촉, 옥류, 복골, 골각기, 철기, 석기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야요이식토기, 낙랑계 토기, 외래계 화폐 등은 2,000년 전쯤 바닷길을 이용한 국제교류의 흔적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이 유물들이 한반도 남부 지역의 유물과 함께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당시 해로를 통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늑도유적은 출토유물과 지리적인 위치 등을 통해 볼 때 남해안 해상교통로의 중간기착지이자 국제교역이 번번하게 이루어진 항구라고 할 수 있다. <출처:진주박물관>


점토띠토기.시루, 원삼국시대, 사천 늑도


굽달린 사발, 붉은 간토기, 붉은간토기, 늑도에서 만든 토기, 원삼국시대, 사천 늑도


점치는 뼈, 의례용토기, 원삼국시대, 사천 늑도


옥장신구, 흑요석과 개오지조개, 석제추, 원삼국시대, 사천 늑도


낙랑토기, 야요이토기, 원삼국시대, 사천시 늑도

서부경남의 가야
가야는 562년 멸망할 때까지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연맹세력으로 결국 신라에 병합되었다. 가야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등과 활발히 교역하여 선진문화와 부를 축적함으로써 강력한 군사집단으로 성장하였다. 가야의 연맹세력은 대체로 5세기 후반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데, 전기에는 낙동강 하류지역의 금관가야, 후기에는 낙동강 서부지역의 산악지대에 거점을 둔 고령의 대가야가 연맹의 맹주로 군림하였다. 고령의 대가야를 맹주국으로 한 가야연맹은 합천, 함양, 산청, 남원 등 지리산 주변가 진주, 사철, 고성, 그리고 섬진강유역에 이르는 경남 서부지역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넓은 세력판도를 형성하였다. 대가야연맹은 전반적으로 유사한 문화권을 형성하면서도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가진 연맹의 각 소국들마다 고분의 입지, 덧널의 배치방법, 순장법, 부장철기, 마구류, 갑옷, 그리고 토기의 조형성 등에서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출처:진주박물관>


화로모양토기(함안), 손잡이 달린 항아리(합천), 굽다리 항아리(진주 가좌동)


귀신무늬 말방울(합천 반계제), 거울(진주 중안동), 거울(산청 생초면)


목걸이(고성 내산리), 목걸이(진주 중안동)


장식이 달린 긴목 항아리(고성 내산리), 항아리(진주 수정봉.옥봉)


배모양토기(합천 옥전), 뿔모양 잔, 합천 지포리


굽다리 항아리(고성 내산리), 세귀달린 항아리(합천)


그릇받침(합천 옥전), 그릇받침(진주 수정봉.옥봉),


굽다리 접시(진주 수정봉.옥봉),


굽다리접시(진주 가좌동), 뚜껑접시(산청 생초면)


굽다리접시(산청 생초면)


목걸이, 합천 출토, 삼국시대 가야


용 봉황무늬 둥근고리칼(합천 옥전), 용 봉황무늬 둥근고리칼(창녕 교동)


둥근 고리의 용.봉황무늬


사람머리모양토기, 삼국시대, 진주 중천리 출토


금귀걸이, 삼국시대


사천 선진리 신라비, 통일신라, 신라 36대 혜공왕(756~780)대에는 귀족간의 격렬한 대립으로 정치가 어지러웠다. 이런 정치적인 혼란을 부처의 힘을 빌려 극복하고자 승려와 지방관으로 구성된 향도가 이 비석을 제작한 것이다. 경남 사천시 선진리성에서 발견되었으며, 원래 크기의 1/4 정도만 남아 있다. <출처:진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