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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China)

[중국 취푸(曲阜)] 공림(孔林), 공자가 묻힌 공자묘(孔子墓, Confucius' Tomb)

younghwan 2014. 2. 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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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림(孔林, Konglin)은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수도였던 취푸(곡부성) 북쪽 사수(泗水) 부근에 위치한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묘역이다. 공역은 2㎢의 넓은 숲으로 수십만그루의 진귀한 수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3,600여개의 비석과 10만기의 무덤들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공림에서도 중심이 되는 영역은 공자가 묻힌 무덤이라 할 수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자묘가 있는 영역은 제사시설이라 할 수 있든 형전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묘역안에는 공자와 그의 아들 공리, 손자이자 맹자의 스승이기도 한 공급의 무덤이 같이 있다.

  형전을 통과하면 향나무처럼 생긴 울창한 고목들이 마치 도열한 것처럼 서 있는 길이 공자묘까지 이어지고 있고, 왼쪽편에는 '자사'로 잘 알려진 공자의 손자이자 맹자의 스승으로 중국 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급의 무덤이 있다. 오른편에는 공자의 제자로 공자가 죽은후 무덤앞에서 6년간 묘막을 짓고 살면서 공자를 추도했던 제자인 자공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황련목 뿌리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들, 공자묘를 찾았던 역대황제들이 방문기념으로 세운 정자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찾았던 역대 황제들은 많았겠지만 송나라 진종이 1008년 태산에 제사를 올린 후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정자를 처음 세웠으며, 이후 청나라 건륭제와 강희제가 비슷한 규모의 정자를 세웠다. 공자와 아들 공리의 무덤은 안쪽에 나란히 있는데, 아들인 공리가 먼저 죽고, 그 이후에 공자가 죽었다고 한다. 공자의 무덤 앞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묘막을 짓고 살았던 곳임을 알려주는 비석을 볼 수 있다. 공자의 무덤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소원을 바라면서 절을 올리고 있다.

공자묘(孔子墓, Confucius' Tomb)
공자(BC551~BC479)는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위대한 철학자, 교육자이자 유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의대한 현자이자 스승" 또는 간단히 "현자'로 추앙받고 있다. 공씨가문에서 그는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73세에 세상을 떠나 사수(泗水) 부근에 묻혔다.
Confucius(BC551~BC479), with his given name Qiu, and courtesy name Zhongi, was a great philosopher, educationist and founder of Confucianism. He was revered as "the great sage and teacher", or simply "the sage". Kong clansmen regarded him as the "primogenitor". He passed away at the age of 73 and was buried near the Si river. <출처:취푸시청>


공림(孔林)가 묻혀 있는 무덤인 공자묘이다. 중국, 한국 각지의 공묘(孔廟)에서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공자의 무덤은 그 규모가 크지 않고 검소하면서 소박한 느낌을 준다.


공자묘 앞에 세워진 비석. 앞쪽에 화려하게 만들어진 비석은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봉분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며, 주위에 있는 후손들의 봉분보다 약간 큰 규모이다.


공자묘 앞에 기도를 올리는 장소. 겨울철이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공자에 대한 안내


공자의 무덤 앞에는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걸려 있는 붉은 팻말들이 걸려 있다.

자공려묘처(子贡庐墓处, Zi Gong's Tomb keeping place)
자공(子貢, BC456~BC520)은 공자의 제자로 성은 단목(端木),이름 사(賜)이다. 공자가 돌아가셨을 때 그의 제자들은 3년상을 치룬 다음 떠났으며, 자공은 혼자서 3년더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좋은 예로 숭상받았으며 그의 이러한 행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당과 비석이 세워졌다.
Zi Gong(BC520~BC456) is the courtesy name of Duanmu Ci, who is the disciple of Confucius. When Confucius passed away, his disciples remained in mourning for three years and then left. Zi Gong alone stayed for another three years. He set a good example for respecting teachers and education. The memorial hall was built and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his deeds. <출처:취푸시청>


공자 무덤 앞에는 공자의 제자 중 한명인 자공이 삼년상을 치룬 후 혼자 3년더 머물렀던 묘막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묘막이 있었던 자라에는 지금돈 비슷한 성격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공리묘(孔鲤墓, Kong Li's Tomb)
공리(孔鲤, BC532~BC483)는 공자의 아들로 자는 백어(伯鱼)이다. 그는 공자의 효성스러운 자식으로 그로부터 시와 예를 배웠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공자보다 먼저 죽었으며, 공씨가문에서는 두번째 조상으로 숭상받고 있다.
Kong Li(BC532~BC483), with his courtesy name Boyu, is the son of Confucius. Little was known about him except that he was a filial son and he had received personal instructions from his father about poem and rituals. He passed away before Confucius and was revered as "the second generation ancestor" by Kong clansmen. <출처:취푸시청>



공자묘 동쪽편에 비슷한 규모의 봉분이 있는 공자의 아들인 공리의 무덤이다. 공리에 대해서는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 외에는 특별히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공급묘((孔伋墓, Kong Ji's Tomb)
공급((孔伋, BC438~BC402)은 공자의 손자로 자는 자사(子思)이다. 그는 전국시다 초기의 유명한 철학자이다 유학자로 유명했으며, 유학의 중요한 계승자 중 한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학에서 '공자 다음으로 중요한 현자'로 여겨지는 맹자는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사.맹자학파를 형성하였다. 공씨가문에서는 그를 '삼세조'로 여긴다.
Kong Ji(BC438~BC402), with the courtesy name Zi Si, is the grandson of Confucius. He was a famous philopher of the early Warring States period, and was regarded as one of the inheritors of Confucianism. Deeply influenced by his thought, Mencius, the "Sage second only to Confucius", formed an important school of thought, Zi SI - Mencius School. He was revered as the "the third generation ancestor" by Kong clansmen. <출처:취푸시청>


공자묘 입구 형전을 지나서 묘역에 들어서면 첫번째로 보이는 공자의 손자로 '자사(子思)'로 잘 알려진 공급의 묘이다. 공자와 아들인 공리의 무덤과는 달라 앞에 문석인이 세워져 있다. 공급은 맹자의 스승으로 유학의 형성의 큰 기여를 한 철학자이자 유학자이다.


무덤 앞에 있는 석물. 향로모양을 하고 있는데, 지붕이 있고 전체적으로 석등처럼 보이는데 우리나라와는 제도가 달라서 그 용도를 잘 모르겠다.


공급묘 전경. 공자묘나 그의 아들 공리묘에 비해서 앞이 넓은 편이다.


형전을 나오면 오래된 고목이 양쪽에 도열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길이 공자묘까지 연결된다. 오른쪽에는 공자의 손자인 공급의 무덤이 있고, 왼쪽편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손소 심었다고 전해지는 황련목과 공자묘를 찾았던 역대 제왕들이 세운 정자들이 들어서 있다.

자공이 손수심은 황련목(子贡手植楷, The Chinese pistache plated by Zi Gong )
전설에 따르면 이 나무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손수 심었다고 전해지는 황련목이다. 나무는 청왕조대에 번개를 맞아 불타버리고 뿌리만 남아 있다. 1712년(강희51년)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졌으며 원래 모양처름 조각된 비석과 정자가 그 자리에 세워졌다.
According to the legend the tree was planted by Zi Gong himself. It was destroyed by lightening in the early Qing dynasty and only roots remained. In 1712(the 51st year of the reign of Emperor Kangxi), a stone tablet was erected on the east of the remains with the shape of the original tree engraved on it and a memorial pavilion was also built there. <출처:취푸시청>


자공이 손수 심었다고 전해지는 황련목. 원래의 나무는 청왕조대에 번개를 맞아 불에 타 버리고 뿌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자공이 이곳에 황련목을 심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정자.


또 다른 비석

건륭주필정(乾隆驻跸亭, Pavilion of Emperor Qianlong)
청나라 건륭제는 공자사당인 공묘(孔廟)와 공자무덤을 참배를 하기 위해 여러차례 취푸(곡부)를 방문하였다.  이 정자는 1748년(건륭13)에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정자이다.
Emperor Qianlong went in person to Qufu to pay tribute to Confucius' temple and cemetery for many times. This pavilion was built in memory of a visit in 1748( the 13th year of Qianlong of the Qing dynasty.) <출처:취푸시청>


공자묘를 들어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3개의 정자 중 첫번째 것으로 청나라 건륭제가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정자이다.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으로 사모정 형태를 하고 있다. 기와는 황금색 유리기와를 얹었다.

강희주필정(康熙驻跸亭, Pavilion of Emperor Kangxi)
이 정자는 1684년(강희23)에 강희제가 공묘와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In Nov 1684(23rd year of Kongxi of the Qing dynasty), Emperor Kangsi paid his tributes to Confucius' temple and tomb. This pavilion was built im memory of this visit. <출처:취푸시청>


청나라 강희제가 공묘와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취푸를 방문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앞면, 옆면이 각 1칸씩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송진종주필정(宋眞宗驻跸亭, Pavilion of Emperor Zhenzong)
1008년(송나라 진종1)에 진종이 태산에 제사를 올린 후 공묘와 무덤을 방문한 후 기념으로 세운 정자이다.
In Nov 1008( 1st year of Xiangfu year of Zhengzong of the Song dynasty), Emperor Zhengzong paid his tribute to the Confucius' temple and tomb on his way back after be offered sacrifices to Mt, Tai. This pavilion was built in meory of this visit. <출처:취푸시청>


이곳에 세운 정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송나로 진종이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 형태로 볼 때 강희제가 세운 정자와 비슷하며 후대에 중건한 건물로 여겨진다.


형전에 공자묘까지 들어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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