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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인제 설악산 백담사] 내설악에 자리한, 만해 한용운 선생이 수행했던 사찰

younghwan 2010. 9. 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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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설악에 자리잡고 있는 백담사는 우리에게 두가지로 많이 알려진 사찰입니다. 하나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이곳에서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을 사찰로 유명하며, 다른 하나는 5공청산 과정에서 전두환씨가 이곳에 유배생활 비슷한 것을 하면서 뉴스에 오르내리게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과 유배의 의미가 딱 어울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백담사 이기도 합니다. 물론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기는 하지만 백담사까지 갈려면 수km를 걸어야만 갈 수 있는 속세와 멀리한 지리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 백담사 탐방
 1. 백담사 오르는 길         2. 백담사 입구                   3. 백담사 풍경              4. 만해기념관
 5. 백담사 극락보전, 나한전            6. 겨울 백담사 풍경

백담사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백담사의 전경입니다.

백담사의 중심 불전인 극락전입니다. 그 앞에는 작은 석탑이 있고 우측에는 종무소, 좌측에는 전두환씨가 머물렀던 객사 역할을 하는 방입니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 내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앞에서 바라본 입구 풍경입니다. 사춘기 학생들이 석탑 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전두환씨가 머물렀던 방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답게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이 있습니다.

백담사에 자리한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만해기념관입니다.

설악산에 자리한 사찰답게 산령각이 있습니다.

백담사의 입구에 자리한 범종루, 금강문, 사천왕문입니다.

백담사 입구인 사천왕문과 금강문입니다.

버스를 타기 위한 줄이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늘어서 있습니다.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백담사는 수행기능을 하는 사찰이라 숙소 역할을 하는 많은 건물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만해교육관입니다.

백담사 앞을 흐르고 있는 백담계곡의 개울입니다. 백담사 앞에서 개울 폭이 가장 넓고 설악산에서 흘러내려온 바위돌들이 개울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그돌을 쌓아서 탑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백담사 입구 버스타는 장소입니다.

백담사 정문입니다.

백담사를 오르는 길입니다.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서기 647년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 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 한계사로 창건후1772년(영조51년)까지 운훙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수많은 운수납자가 불원천리하고 이곳을 찾아 백담사 계곡을 찾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물에 객진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영봉의 푸른 구름을 벗을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던 선불장이었다.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부속암자로서 유지만 남아있는 곳으로 동암, 원명암, 백련암, 축성암 등 8개의 암자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 곳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도 유명하다. <출처: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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