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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259

[가야산 해인사] 비석거리.부도전, 원경왕사비

해인사 입구에는 해인사의 내력을 말해주 듯 많은 공덕비들이 있고, 그 뒷편으로는 성철스님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의 부도들이 모여 있는 부도전이 있다. 그 중 가장 크고 내력이 있어 보이는 탑비로는 고려시대 국사를 지낸 고승 원경왕사를 기리는 원경왕사비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입적한 성철스님의 부도를 찾는 사람에 제일 많아 보였다. 해인사 부도전. 비석거리 해인사 입구 비석거리에는 해인사 사적비를 비롯한 20여기의 공덕비들이 안치되어있다. 해인사 원경왕사비. 고려시대 고승 원경왕사를 기리고자 인종3년에 세운 비다. 가야면 야천리 반야사 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 해인사 경내로 옮겨왔다. 거북받침돌, 비몬, 지붕돌을 갖추었고,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비문에 의하면..

창녕 탑금당치성문기비, 비뒷면에 스님이 새겨진 비석

창녕읍내 북쪽편 언덕에 위치한 탑금당치성기비는 통일신라시대 부근의 여러 사찰에서 일어난 범종, 탑, 금당 등의 불사에 대한 여러 기록들을 남겨 놓고 있는 특이한 문화재이다. 그 모양새도 후대의 탑비처럼 거북돌받침을 한 웅장한 모습이 아니라 일반적인 바닥돌과 비몸,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의 뒷면에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특색있는 비석이다. 탑금당치성문기비, 논밭이었던 곳 한 가운데에 천년이상의 세월동안 서 있었던 비석이다. 머리돌이 어색하게 큰데,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비석의 뒷면에는 스님으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논밭 가운데 서 있는 이 비석은 창녕군 청사 동쪽편에 있다. 인양사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이 있는 여러 절의 범종, 탑, 금당 등의 조성연대와 쓰..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보물 520호)

보물 520호로 지정된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은 이름으로 봐서는 술정리동삼층석탑과 한쌍의 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동삼층석탑과는 같은 술정리 내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고, 석탑의 제작수법이 동삼층석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탑 제작기술이 많이 쇠퇴한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층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린 술정리서삼층석탑. 기단과 탑신의 몸돌.머리돌의 비율에서 술정리동삼층석탑보다는 많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술정리 서삼층석탑 기단부. 한쪽면에 문짝을 새겨놓고 있는데 후대에 새긴 것이라 한다. 탑신은 동삼층석탑에 비해 날렵함이 없어 보이고, 탑의 상륜부에 장식이 남아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술정리서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국보 34호),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

창녕 술정리는 창녕읍에서 가장 중심인 재래시장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비화가야가 있었던 시기부터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생각된다. 국보 34호로 지정된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아마도 현재의 위치에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룡사처럼 도심지에 있었던 사찰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이 석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의 양식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당시 이런 형태의 석탑이 보편화되던 시기, 석탑 제작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예술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아서 국보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녕읍 중심부 술정리에 위치한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이 삼층석탑은 이층의 기단부 위에 삼층의 탑신을 얹어놓고 있는 있는데 그 비율이나..

창녕 퇴천삼층석탑, 통일신라 석탑

창녕읍 만옥정공원에 있는 퇴천삼층석탑이다. 원래 민가에 무녀져 있던 것을 해체,보수하여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창녕의 술정리석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석탑으로 기단부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없어져서 보물급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만든 수법이나 형태로 봐서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석탑이다.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것으로 당대의 다른 석탑과 마찬가지로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퇴천삼층석탑의 기단부. 하단부는 낮게, 상단부는 높게 만들어져 있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는 듯하면 한쪽면은 없어져 새로운 돌로 수리해 놓고 있다. 3층으로 된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들의 비율이 잘 배치되어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

창녕 송현동석불좌상, 통일신라시대 석불

창녕읍 화왕산을 오르는 입구에는 비화가야 고분군이 능선을 따라서 있고, 그 한쪽에는 작은 비각같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석불을 모시고 있는데, 석불에 비해서 건물이 잘 안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석불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역시 석불은 건물안 보다는 노천에서 맑은 바람과 햇빛을 받을 때 그 느낌이 더욱 살아나 보인다. 이 곳 창녕 송현동 석불 또한 전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는데, 꽉 막힌 입구, 촛불, 어두컴컴한 조명 등 불국사 석굴암에서 보았던 좋지 않았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석불자체로는 석굴암보다는 많이 떨어지지만 나름 기교도 있고, 품위도 있어 보인다.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크 바위 앞면을 조각해서 만든 마애불로서, 석굴암과 비슷..

[강진 백련사] 백련사사적비, 고려시대 받침돌에 올려진 조선시대 비석

강진 백련사사적비는 백련사에 있는 거의 유일한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비석이다. 고려시대부터 받침돌만 남은 비석위에 조선 숙종때 비석을 세워서 올린 아주 특이한 비석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비석 받침돌답게 거북형상의 받침돌은 조각이 아주 생동감있고 힘이 넘치게 새겨져있다. 바로 옆에 있는 최근 세운 비석과 비교해보면 조각 수법이나 전체적인 구도에서 차이가 많이 남을 느낄 수 있다. 몸돌과 머리돌은 조선후기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백련사사적비. 이 사적비의 받침돌은 거북 형상을 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작품답게 생동감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받침돌 거북의 머리와 발 옆과 뒤에서 본 받침돌. 거북등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만덕산백련사비'라고 적힌 비석. 뒷면에는 불사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강진 월출산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 극락전 서쪽편에 위치한 탑비로 통일신라시대 고승 선각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이다. 고려초 광종이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 탑비는 비받침돌, 몸돌, 머리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당시에 세워진 탑비 중에서 큰 편은 아니지만, 받침돌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만들었다. 무위사 선각대서편광탑비. 탑의 받침돌. 몸은 거북이고,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이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한 받침돌 머리. 탑비에는 고려초 문장가 최언위가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탑비의 머리돌. 여러 방향에서 본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는 전라남도 강진의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의 명승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고, 명종 5년(1550) 태감(太甘)이 4번..

강진 무위사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무위사 삼층석탑은 경내 서쪽편에 선각대사편광탑비 아래에 위치한 고려초기 석탑이다. 석탑의 전성기였던 통일신라시대를 지나서 만들어진 석탑이라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이 없는 평범한 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돌이 재질이나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져서 지금은 잘 인식하기 힘들지만, 형식에 맞추어서 여러 장식을 새겨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 또한 극락전 앞에 2개가 있는데 다른 절의 당간지주에 비해 크기도 작고, 조각등 장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위사 삼층석탑은 석탑이 대중화되던 시기인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술적 가치는 많이 높지 않지만 원형은 잘 보존되어 있다. 삼층석탑의 기단부. 하단은 낮고, ..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고려 문인 이규보가 비문을 지은 비석

월남사를 창건한 사람으로 알려진 고려중기 고승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월남사지 마을 입구에 세워진 탑이다. 원래는 누구의 비석인지 알 수 없어 '월남사지비'라고 불렸으나, 조사결과 '진각국사비'로 2002년에 그 이름이 정정되었다고 한다. 비문 적힌 글씨는 거의 판독하기 어려우며, 조사결과 고려중기 문인인 이규보가 글을 지었다고 한다. 월남사터가 있는 마을 입구 비각속에 있는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는 거북받침돌에 비몸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머리는 여의주를 문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생동감이 있다. 생동감 넘치는 거북의 발 측면과 뒷쪽에서 본 거북받침돌 비석에 쓴 글씨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298호), 백제 석탑 양식이 남아 있는 석탑

전남 남해안 부근의 명산인 월출산 자락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월남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이다. 월남사는 무위사 동쪽 수km 지점에 있으며, 절터 뒷쪽편에 월출산 봉우리가 보인다. 원래는 이 절에은 두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절터에 우뚝 선 석탑과 월남사를 창건한 사람으로 알려진 진각국사 탑비만 남아 있다. 보눌 298호로 지정된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모전석탑의 외형을 하고 있으며, 돌을 쌓은 것처럼 보여서 모전석탑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석탑으로 명칭이 정정되었다. 이 삼층석탑은 단층의 기단만 있는데 그 모양새로 보아서는 하층의 기단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한다. 월출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월남사지삼층석탑. 단층의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는데,..

[월출산 도갑사] 도선.수미비, 수미왕사비

도갑사 경내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지나서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길을 따라서 조금만 올라가면, 해탈문과 함께 이 곳 도갑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도선.수미비라는 탑비와 그 옆에 여러 고승들들의 부도를 한데 모아 놓은 부도전을 볼 수 있다. 도선.수미비는 조선후기 효종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도선국사와 수미왕시의 행적을 적어놓고 있는 비석으로 글자와 조각의 예술적 가치가 높고 조선후기 조각을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비각에 모셔진 도갑사 도선.수미비. 뒤쪽에서 본 도선.수미비 도갑사 도선.수미비의 귀부.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측면에서 본 귀부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귀부의 머리. 입안에 동전을 던져 놓고 있는데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섬세하게 조각해 놓..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1433호)과 석조

월출산 도갑사 경내를 들어서면 정면에 웅장한 대웅전 건물을 볼 수 있다. 도갑사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크기가 큰 건물로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 경내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보물 143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최근까지 탑신만 남아 있다가 하층기단부가 새롭게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도갑사 오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균형미, 조형미 등이 약간을 떨어져 보이는 느낌이다. 도갑사 오층석탑. 2층기단부 위에 5층의 탑신이 얹혀 있다. 도갑사오층석탑의 기단부. 상층기단는 높고, 하층 기단은 낮게 만들어졌는데, 그 비례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은 화려하다거, 웅장하다는 느낌은 많지 않고 평범한 고려시대 석..

[월출산 도갑사] 범종각, 주변 풍경

월출산 도갑사 출입문이 해탈물을 들어서면, 넓은 사찰 마당과 정면의 대웅전이 보이고 대웅전 경내 남쪽편에는 범종, 법고, 목어가 걸려있는 범종각을 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서 세워진 전형적인 범종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천왕문 다음에는 강당이 있고, 그 아래쪽에 범종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곳 도갑사는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이 나타난다. 이런 광경은 월출산 남쪽 무위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 복구하는 과정에서 마당을 넓힌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범종각.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3칸규모의 건물로 전형적인 범종각이 모습을 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범종각 도갑사 해탈물을 들어서면 월출산이 있는 남쪽 방향에 범종각을 볼 수 있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북쪽 방향..

양산 영축산 통도사 - 적멸보궁, 사리탑

양산 통도사의 상로전 영역의 주불당인 대웅전 뒷편에는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모신 사리탑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웅전 건물의 명칭이 북쪽 방향에서는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통도사의 사리탑이 우리나라 최고의 성지로 여겨지며 그래서 통도사를 불보사찰이라고 불리워지는 까닭입니다. 사리탑에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탑을 돌면서 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에서 본 쇠똥구리 석상을 도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가운데 석종 형태의 사리탑이 있습니다. 사리탑을 밝히는 석등, 통도사에는 길목마다 많은 석등이 있습니다.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라 건물이름이 적별보궁으로 바뀝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사리탑 측면을 지키는 부조상 통도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신라시대 석조계단. 국보 제290호. 높이 300cm, 너비..

[김제 모악산 금산사] 방등계단과 적멸보궁

금산사 뒷편 송대위에 세워진 방등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에는 속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내력이 있는 사리계단이이다. 이층의 넓은 기단위에 석종형 탑을 세워 놓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규모는 통도사 금강계단보다는 작지만 상당히 규모가 있고, 높은 송대위에 석탑과 함께 세워진 유서깊은 사리계단으로 보인다. 그 옆에 있는 적멸보궁은 최근에 지은 불전으로 보인다. 금산사 방등계단. 2층의 넓은 기단 위에 석종형태의 탑이 있다. 주위에는 많은 석상들로 둘러져 있다. 방등계단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석상들 방당계단 기단에 새겨진 불상 방등계단 귀퉁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금산사 방등계단은 미륵전 바로 옆에 높은 송대위에 세워져 있다. 사리계단과 석탑이 모여서 하나..

양산 영축산 통도사 - 봉발탑 (보물)

통도사에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탑인 봉발탑입니다. 아마 그 독창성으로 보물로 선정된 것 같습니다. 용화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봉발탑 봉발탑 안내표지판 입구에서 본 봉발탑 영축산(靈鷲山)에 자리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3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이며,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와 승복의 하나인 가사(袈裟),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모시고 창건하였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중요한 절이었다. 이 봉발탑은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

경주 토함산 불국사, 사리탑

불국사 비로전 옆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로 지정된 불국사 사리탑입니다. 석가모니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려시대에 만든 사리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우에노 공원을 장식하고 있다가 1933년 반환된 것이라고 합니다. 불국사 사리탑입니다. 비로전 서쪽편 비각에 모셔져 있는 이 사리탑은 석등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불국사 사리탑의 탑신입니다.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의 탑신으로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고 있으며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감실에는 여래상과 보살상을 새겨 놓고 있습니다. 불국사 사리탑의 지붕돌입니다. 불국사 사리탑의 기단은 반원형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기둥의 무늬는 ..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 보승탑, 보승탑비

서산 상왕산 동쪽편 자락에 자리잡은 보원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로 오층석탑과 함께 그 역사를 함께 해 온 법인국사 보승탑과 탑비이다. 탑과 탑비 모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고려전기 광종때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고 단순하면서도 볼록한 느낌을 주고 있다. 탑비는 용머리를 한 귀부를 비받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산 보원사지 금당터 뒷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법인국사 보승탑과 탑비. 법입국사는 보원사 내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당터 앞쪽에 신앙의 중심으로 오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법인국사 보승탑. 탑신의 지붕돌이 전체에 비해서 크게 보이고, 탑신과 기단의 몸돌이 굵어 보인다. 법인국사 보승탑 기단부. 아랫돌을 이층으로 쌓..

하동 삼신산(지리산) 쌍계사(雙磎寺) -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쌍계사 누각인 팔영루를 돌아서면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쌍계사 경내는 특이하게 석탑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탑비가 경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쌍계사의 내력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우리나라에 도입한 진감선사탑비입니다. 이 탑비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몸통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 같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입니다. 몸돌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역사적/문화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쌍계사의 팔영루를 지나서 본당이 있는 마당에 들어서면 다른 사찰에는 보통 석탑이 가운데에 자리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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