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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156

정읍 태인 무성서원, 신라말 유학자 최치원 선생을 모시는 서원으로 호남지역 대표 서원

조선시대 태인현에 위치한 무성서원은 통일신라시대에 이 곳에서 군수를 지낸 최치원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조선중기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 선생을 비롯하여 지역 출신 인물들도 같이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많은 향약 중에서 그 내용이 가자 충실하다고 여겨지는 고현동 향약이 이 곳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시행되어 왔으며, 이 서원 건물 자체보다는 상당히 많은 문서류를 보관해 왔던 서원이다. 현재의 무성서원 건물은 19세기인 헌종 10년에 중건된 것으로 건물자체로서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고도 할 수 있지만, '상춘곡'을 지은 정극인 선생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의 실록과 어진을 피난 시킨 서비들을 비롯한 무성서원 관련 인사들의 역사적 중요성과 서원이 보관해온 각종 문서들로 인해..

김제향교, 김제군 관아 가까이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김제평야가 있는 지역으로 농업사회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중의 하나이다. 김제 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 강당인 명륜당과 문루인 만화루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사당인 대성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강당과 문루는 일제강점기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근에 옛 조선시대 김제군 관아 건물이 남아 있으며, 관아와 향교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관청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제향교는 김제관아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위치한 김제향교.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벌판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향교이다. 호남지역 벌판에 있는 향교는 땅이 넓어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명륜당 앞..

양천향교, 서울에 남은 유일한 향교로 조선시대 양천현 중등교육기관

양천현은 동쪽으로 양화도, 서쪽과 남쪽으로는 부평부, 동남쪽으로는 금천현, 서북쪽으로는 김포현과 경계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현단위 행정단위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강서구와 양천구가 옛 양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높은 산은 없고 김포공항 주변으로 넓은 평야가 들어서 있으며, 조선시대 소금창고였던 염창이 주변에 있다. 양천향교는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로서 현재의 건물은 옛터에 1981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조선시대 향교는 각 고을마다 수령이 설치.관리하였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수도인 한양의 동.서.남.중에 설치한 성균관의 부속기관인 사부학당이 있었고, 서울 주변 토지는 서울의 권문세가의 땅이었기때문에 향교에 대한 수요는 별로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고 법령에 정한바가..

김포향교, 김포현의 중등교육기관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가 있는 서해안까지가 현재의 김포시이다.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 현재의 김포시이고,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김포현이 존재했었다. 김포현은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루는 영역이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김포향교는 원래 김포장릉 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장릉의 조성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봐서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또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구한말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

양주목 관아, 양주향교

양주목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동북쪽 관문으로 지금은 경기북부지역에 있는 작은 도농복합시이지만 현재의 양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구리시, 남양주시, 서울 동북쪽 노원구, 강북구, 중랑구, 도봉구 일대를 포함하는 상당히 큰 고을이었으며, 정3품에 해당하는 목사가 고을의 수령이었던 곳이다. 양주목의 규모에 맞게 양주목 관아는 서쪽편 객사자리가 있었던 유양초양학교부터 시작하여 동쪽편 양주향교까지가 관아가 있었던 지역으로 그 넓이가 상당히 넓다. 양주목 관아지 동쪽편에 자리한 양주향교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양주목 관아를 구성하던 건물 중 제일 먼저 복원되었는데, 고을 규모에 걸맞게 향교 또한 넓고 규모가 있어 보인다. 양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

의정부 노강서원, 노량진에서 수락산으로 옮겨온 서울에서 가까운 서원

서울에서 의정부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노강서원이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노강서원은 숙종때 문신 박태보를 기리는 서원으로 원래 서울 노량진에 있었다가, 한국전쟁시 불타버린것을 지금의 자리에 복원한 것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서원으로 숙종때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이다. 박태보는 숙종때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다 귀향가서 돌아오는 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곳 수락산 자락 의정부 장암동은 그의 아버지 박세당이 지은 고택이 아직 남아 있는 등 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노강서원 입구는 수락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곳으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 등산로 입구에 있어서 그런지 계곡에 있는 많은 식당들로 인해서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서원 건물은..

서울 문묘 성균관, 조선시대 공립 교육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가장 오래된 대학

성균관의 정식명칭은 서울 문묘로서 제례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이 있으며 성균관은 보통 향교나 서원은 뒷편 안쪽에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고, 앞쪽에 교육을 담당하는 건물이 있으나, 성균관은 제사 기능을 하는 대성전이 앞쪽에 있고 강당인 명륜당이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성균관에서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도서관인 존경각, 관리들이 근무하던 정록청, 제2과장이 열렸던 비천당이 있다. 명륜당 앞에는 넓고 높은 월대가 있고, 지붕에는 잡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명륜당 앞에서는 조선시대 과거도 많이 치러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륜당은 성균관의 상징적인 건물로 주변 동네 이름도 명륜당에서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다. 성균관에서 제..

영주 소수서원, 최초의 서원 '백운동' 현판이 걸린 강학당

소수서원 강학당은 서원의 중요 기능인 학문을 논하는 강학 공간의 핵심 영역이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 선생에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을 모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입구에 걸려있고, '소수서원' 편액이 강학당 내부에 높이 걸려 있다. 서원의 구조는 성균관 구조를 축소한 형태로 강학당은 성균관의 명륜당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은 정면4칸, 측면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이다. 소수서원 강학당 입구에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주세붕 선생이 처음으로 지은 이 서원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용인 충렬서원,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서원

고려 후기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충렬서원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자리한 전형적인 소규모 경기지역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이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 변으로 근처에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명당으로 알려져서 많은 묘지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충렬서원은 강당과 사당, 그리고 내삼문/외삼문으로 이루어진 아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제사 위주의 기능만 하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경기도 용인 모현면에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충렬서원의 전경입니다. 사당과 강당 2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경기도 지역의 소규모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의 출입문인 외삼문입니다. 경기지역의 서원이라서 ..

나주 창계서원, 국도변에 있는 작은 서원

나주 창계서원은 복암리 고분군 근처의 호남선 다시역에서 나주로 들어오는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서원이다. 숙종때 문신인 창계 임영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아마도 이 지역이 나주 임씨 집성촌이라서 그런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후 없어진 서원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어서 복원되어 있다. 서원 입구에는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공덕비가 있고, 서원은 앞쪽에 강당, 뒤쪽에 사당을 두고 있는 형태이다. 나주와 목포사이의 국도변에 위치한 창계서원 전경 서원입구에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공덕비 창계서원 출입문. 보통 서원의 경우 삼문을 형식을 취하는데 이 곳은 솟을대문만 있다. 창계서원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 따뜻한 남쪽지방인데도, 마루를 두고 있지 않다. 뒷쪽 사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내삼문이 있다. 서원..

밀양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서원

표충사 입구를 들어서면 좌측면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서산, 사명, 기허당 대사를 모신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表忠祠)와 표충 서원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후 조선왕실 및 사회에서 세 분 대사의 위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표충사(表忠祠)라는 현판이 크게 보인다. 건물은 전형적인 70년대에 만들어진 사당의 형태를 보는 것 같다. 표충서원과 표충사, 서원 강당 역할을 하는 건물 지금은 팔상전으로 쓰이는 건물이 원래 사명대사를 모시던 표충서원 건물이다. 중심불전인 대광전과 나란히 하고 있는 아주 특징적인 사찰 가람배치이다. 안내 표지판 표충서원은 본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당 등 세분 대사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원래는 무안면 중산리 삼강동에 표충사(..

양평 벽계강당, 이항로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

양평 서종면 벽계구곡 깊은 골짜기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이 생가 옆에 있는 벽계강당이다. 이항로 선생은 과거에 합격했으며, 많은 추천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일생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구하말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분이다. 이항로 선생의 생가 건물 구조를 보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이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으며, 대부분의 후학 양성은 생가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저택 바로 옆에 큰 강당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은 서원을 중심으로 한 당쟁의 폐해가 많았던 것을 느껴서인지 서원을 건립하지는 않고 강당건물만 크게 지어 놓고 있다. 실제로는 서원의 ..

[성균관] 명륜당 마당 은행나무(천연기념물)와 고목들

성균관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수령이 5백년쯤 되는 은행나무 한쌍입니다. 성균관에서 잘 자꾼 나무라서 비슷한 수령의 은행나무에 비해서 줄기가 아주 두껍고 아주 울창하게 자랐습니다. 주위에는 여러 그루의 고목이 있기는 하지만 은행나무의 기세에 눌려서인지 크게 자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명륜당 마당의 은행나무보다는 약간 작지만, 대성전 마당에도 아주 크게 자라 은행나무가 있어 성균관대학 들어가는 길을 시원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성균관 문묘의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 마당에 우뚝 솟아 있는 한 쌍의 은행나무입니다. 임진왜란 경에 심었다고 하는데 사람이 잘 가꾼 나무라서 그런지 상당이 굵고 곧게 자라고 있습니다.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는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나..

나주목 관아,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향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우리나라 지방 교육기관이다. 서울문묘의 성균관과 비슷한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서울 성균관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그 중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물론 서울 문묘의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앞며5칸 옆면 4칸의 웅장한 나주 향교 대성전 나주향교 출입문인 외삼문. 나주향교라 적힌 돌기둥과 하마비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나주향교 내삼문 내삼문 담장 너머로 보이는 대성전. 궁궐 건물을 연상시키는 규모이다. 대성전 편액 나주향교 대성전 월대 대성전 부속 건물. 강학공간인 명륜당 월대에서 본 대성전 건물 안쪽에서 본 ..

나주향교 명륜당, 강학공간

나주향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이 앞쪽에 있고,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쪽에 위치한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나주 향교의 강학공간은 중앙에 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명륜당이 있고, 마당 동.서로 유생들의 기숙인 동무.서무가 배치되어 있으며, 향교를 관리하는 건물이 명륜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나주향교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무.서무는 서울 성균관의 명륜당과 기숙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규모가 크다. 그래서 전국에서도 교육시설 규모로는 성균관 다음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나주향교 강학 공간의 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명륜당. 서울 성균관 명륜당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주향교 명륜당은 정면 중앙에 앞면 3칸의 건물이 있고, 좌.우에 3칸 건물이 날개처럼 달려 있다. 명륜당 가운데 건물 ..

강릉향교

강릉 도심 뒷쪽편 화부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강릉향교는 지방에 남아 있는 많은 향교들 중에서도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향교이다. 이 강릉향교는 명륜고등학교 교정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향교의 교육기능이 없어진 현대에도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향교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곳 향교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재.서재가 있다. 이 향교의 명륜당은 다른 지역의 명륜당에 비해서 상당히 규모가 큰 누각형태의 건물인데, 아마도 전국에서 피서를 겸해서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들리던 선비들이 많았던 까닭에 그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인다(?). 명륜고등학교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강릉향교. 뒷편에 대성전이 있고, 앞쪽에 누각형태의 명륜당이 있..

파주향교, 고을 크기에 비해 규모가 작은 향교

파주는 고려 수도인 개성과 서울을 연결해주는 넓은 지역에 담당하던 곳으로 지역으로 지금은 군사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서울과 중국으로 향하는 평양, 의주간 도로에 위치하고 있고, 임진강이 흐로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인 임진나루가 있었던 곳을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지역이다. 파주향교가 있는 파주읍은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까닭에 금촌이나 문산에 비해 도시화가 뒤떨어진 곳이지만, 조선시대 육로상에는 교통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파주목 관아가 있던 곳은 지금의 파주초등학교로 바뀌었고, 파주향교만이 군부대 뒷편 언덕에 남아 있다. 파주향교는 목사가 다스리던 파주목 규모에 비해서 그 크기는 일반 현이나 군에 있는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앞면 3칸 규모의 파주향교 대성전. 이 곳에서 유일하게 오래된 ..

인천향교, 인천도호부 청사와 함께 있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향교

인천향교는 인천 문학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인천도호부청사와 같이 있는 향교이다. 조선시대 인천의 규모는 도호부가 있을 정도로 크거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은 아니었지만, 세조의 비인 자성왕후의 외향이기때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 인천향교는 인천도호부 관할 구역이 크지 않았던 까닭에 건물의 규모도 크지 않고 학생 수용인원도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향교는 대체로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어 외지인이 방문하기는 쉽지 않으나, 이 곳 인천향교는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으며, 관광지겸 역사체험장으로서 도호부청사가 유지되고 있는 까닭에 방문객이 향교를 쉽게 둘러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특히 관리인이 상주하는 까닭에 건물이 깨끗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항상 사람이 오가는 살아있는 듯한..

고양향교, 벽제관지 근처에 있는 지역 교육기관

고양향교는 전국에 있는 수많은 향교 중의 하나로 큰 특색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이는 향교이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고, 뒷편에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문화재로서 가치는 높지 않은 향교인데도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다. 고양은 군수가 다스리던 크지 않은 고을이었던 까닭에 향교 규모도 큰 편은 아니다. 고양향교의 강학공간인 명륜당. 앞면 5칸의 건물로 지역출신 사람들의 유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향교 뒷편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대성전 앞에는 제사 준비를 하던 전사청이 있다. 고향향교 출입문인 외삼문과 홍살문 향교는 공자..

아산 온양향교

온양향교는 온양온천역이 있는 현재의 온양시가지 남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향교이다. 근처에 옛 온양군 관아 건물인 온주아문과 동헌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현재 온양향교가 있는 지역이 온양군의 중심지였다가, 철도부설에 따라 행정중심지 역할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지역이다. 온양향교는 조그만 산자락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는 평균적인 향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명륜당은 앞면5칸, 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를 하고 있는 중간규모의 향교이다. 기숙사건물로는 동재만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서재를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옛 온양군 관아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향교 전체 면적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약간 경사진 길 입구에 향교임을 알려주는 홍살문이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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