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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73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금.은 그릇, 유리잔, 청동자루솥

신라의 고분에서는 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관총과 서봉총에서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기는 했지만, 70년대에 시범적으로 발굴한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는 당시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것들을 금.은으로 만들어서 무덤의 껴묻거리로 묻은 화려한 금.은 그릇들과 서역에서 수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잔, 제사의식에 사용하는 청동제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주로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천마총을 비롯한 여러 고분들에서 출토된 것들은 경주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 중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유물 중 금..

지역박물관 2011.10.06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화려한 장신구

신라는 마립간시기인 내물왕대에서 지증왕때까지 중앙아시아 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황금문화를 남겨놓고 있다.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서봉총으로 대표되는 금관과 금제관식을 비롯하여 수많은 귀금속 장신구들을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어두고 있다. 이 시기의 고분들은 신라 도심부의 대릉원을 중심으로 넓게 펴져 있는데, 특히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들 고분들은 봉분 조성양식의 특성으로 인해 도굴이 상당히 어려웠기때문에 오늘날 많은 유물들을 우리에게 남겨 놓고 있다. 신라의 왕과 귀족들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금과 은으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를 하고 살았다고 하며, 얇은 금판으로 만든 달개를 달아 움직일 때마다 흔들려 더욱 빛났을 것으로 보인다. 마립간 시기의 신라는 금을 비..

지역박물관 2011.10.05

[경주박물관 고고관] 마립간의 등장, 금관을 비롯한 왕의 관식

신라에서 임금을 뜻하는 말은 시조인 박혁거세때는 거서간, 2대 남해왕때에는 차차웅, 3대 유리왕에서 김씨가 왕위를 세습한 내물왕 이전까지는 '임금'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내물왕때부터는 마립간이라 불렀는데 으뜸이라는 뜻의 '마립'과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왕을 부를때 사용하는 '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내물왕때 시작된 마립간이라는 칭호는 22대 지증왕 이전까지 사용하는데 이 마립간 시기에 신라는 화려한 황금문화를 남겨 놓고 있다. 경주 도심 역사지구의 대릉원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는 수많은 고분들에서 오늘날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데 1921년 처음 발견된 금관총 금관을 비롯하여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교동 등지에서 6개의 금관이 발견되었는데 이른..

지역박물관 2011.10.04

[경주박물관 고고관] 무늬토기와 토우, 토우장식장경호(국보 195호)와 서수형토기 (보물 636호)

토우(흙인형)란 보통 흙으로 만든 인물상인데, 넓은 의미로 동물이나 생활용구.집 등을 본떠서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을 일컫기도 한다. 토우는 주로 고대국가에서 조성한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많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무덤의 껴묻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메소포니마아,에게해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국 앙소문화, 일본 조몬시대에도 토우가 출토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와 가야에서 토우가 주로 출토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토우는 신라 토우를 일컫는 경향이 있다. 토우에는 간략하게 표현된 인물상, 동물상,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말을 탄 무사, 집모양 토기, 짚신모양토기, 등잔모양 토기 등 형태와 양식에..

지역박물관 2011.10.03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무덤의 변천과 껴묻거리용 와질토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들은 대부분 지배층의 무덤인 고분 발굴을 통해서 출토된 것들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삼한, 가야, 삼국의 고분들은 그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이며 가야를 제외하고는 초기에는 대부분 평지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으며, 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다. 무덤은 초기에는 현재와 비슷한 나무로 된 널무덤이 주를 이루었으며 후대에 들어서면서 돌무지 덧널무덤,굴방을 만드는 석실분으로 변했으면 특이한 형태로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독무덤의 형태를 한 곳도 있다. 후대에 화장이 성행하면서 뼈항아리를 묻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묻힌자들이 권위와 지위를 말해 주고 있다. 금관을 ..

지역박물관 2011.10.01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철을 바탕을 성장하다.

고조선 이후 삼한시대 진한의 중심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철을 생산하고 제련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신라 영역에서는 울산 달천 광산에서 철을 생산하여 경주 황성동 공방에서 이를 제련하고 가공하였다고 하며,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도 했다고 한다. 당시 철은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변한에서 많은 철을 생산하고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신라는 이들 지역을 위협하기도 하면서, 상호 거래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초기 철기 제작과 관련된 유적지로서 불국사 부근의 구정동 고분군과 경주 남산 동남쪽에 위치한 조양동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들과 초기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대릉원 동쪽편 고분과 주택들이 섞여 있는 쪽샘지구에 위..

지역박물관 2011.09.30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고조선의 유민을 흡수하다. (영천 어은동, 경주 사라리 출토 유물)

기원전 57년에 건국된 신라는 처음 나라를 세울때는 사로국이었다. 진한은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형성한 삼한 중 경상도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경주 사로국을 비로하여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들 소국은 그 규모가 작아서 큰 곳이 4~5천호, 작은 것은 6~7백호 정도라고 한다. 이 지역의 소국들은 주변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중 고조선 유민들과 함께 고조선 문화를 받아들였다. 경주 인근에서 발견되는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유적지로 영천 어은동 유적, 영천 용전리 널무덤, 경주 사라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경주박물관에서는 그 중 영천 어은동 유적과 경주사라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청동기와 철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출토유물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

지역박물관 2011.09.29

[경주박물관 고고관] 청동기시대의 경주, 청동제 무기와 토기

한반도에서의 청동기시대는 요동지역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 고조선이 있었다. 청동기시대는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가 있기는 했지만, 현대적인 의미로 전국을 통치하는 국가는 아니고 특정지역만을 세력권으로 두면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던 형태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한반도에는 고조선 이외에도 중요 교통로 및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형태의 소규모 국가가 건설되었는데, 이들 유적은 주로 평야지대와 강이 발달했으면서 한.중.일 해상무역로와 가까왔던 한반도 서남부 지역으로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유적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경주가 위치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는 울산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울산지역과 고령 알터마을을 비롯..

지역박물관 2011.09.28

[경주박물관 고고관] 석기시대의 경주, 빗살무늬토기와 도구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가 건국된 기원전 57년부터 고려에 멸망된 935년까지 약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도시로 대릉원을 비롯한 고분, 불국사를 비롯한 많은 절터들이 남아 있는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경주는 한반도 동남부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인 형산강과 태화강을 기반으로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던 국가이다. 이 지역의 역사는 기원전 수세기에 시작된 청동기시대부터 형산강 유역에 토착세력이 정주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 선사시대에는 이 지역에 주민이 정착해서 살았던 흔적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형산강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정착해서 살기에는 그리 적합한 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농경생활이 정착된 청동기시대부터는 형산상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지역에 정착하면서 일정..

지역박물관 2011.09.27

국립경주박물관 - 사천왕사터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

경주 황룡사, 불국사와 함께 통일 신라시대 대표적인 사찰인 사천왕사 목탑터에서 발굴된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녹유사천왕상이다. 녹유전에 있던 이 사천왕상 부조는 그 표현 방법이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간다라 미술에서 유래한 그리스 조각의 사실적 표현방법이 석굴암 불상과 함께 잘 구현된 작품으로 보인다. 이 사천왕상을 만든 사람은 양지스님이라고 전해지는 데 그 예술성과 천재성이 뛰어난 점,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점으로 보아서 중앙아시아 계통 사람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많은 분이다. 이 녹유사천왕상을 보면 그리스 조각 작품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상당히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이라는 느낌이 비전문가에게도 들게 해 준다. 경주 사천왕사터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 하반신은 1936..

중앙박물관 2010.08.29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감은사 사리갖춤, 각종 사리갖춤

통일신라 불교 예술품과 유물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리갖춤 들이다. 사리갖춤은 석탑을 만들데 그 안에 부처님의 사리를 넣게 되는데 상당히 귀중하기 때문 그에 걸맞게 화려한 사리갖춤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불경이나 석탑의 중수기 등 기록물도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 데 대표적인 유물이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에서 발굴된 무구정광 다라니경일 것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서탑에서 발굴된 사리갖춤. 경주 사천왕사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을 만든 조각가인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생감감있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완성한 감은사의 동서 양탑에 넣었던 사리갖춤이다. 서탑의 사리갖춤은 1956년에 동탑의 사리갖춤은 1996년에 각각 해체 ..

지역박물관 2010.08.26

국립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 건축부재와 공포, 기와

경주 안압지에서는 왕릉이나 사찰 등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건축자재, 생활용구, 토기 등 아주 다양한 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경주 박물관에서는 별도로 안압지관을 두어서 안압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종류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먼저 안압지에서 발굴된 건축관련 유물들을 보면 목조 구조물인 공포, 다양한 종류의 기와, 안압지 배수를 도와주던 물마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건축자재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본 통일신라시대의 목조 건축물. 기와의 화려함이 눈에 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목조 건축 구조물. 공포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전통 건축물인 목조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지붕의 부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둥과 지붕사이에 있는 부분을 말한다. 첨차,소루,부연 등의 나..

지역박물관 2009.09.16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황룡사실 - 금동약사불, 황룡사지 출토유물

국립 경주박물관 황룡사실에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이 있다. 황룡사가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해 왔던 대규모 사찰이었던 까닭에 불상, 생활용품, 염주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황룡사지 목탑터에서 발굴된 금동약사여래불 입상. 많이 발굴되고 현존하는 약사여래불 입상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제작된 불상이라 한다. 금당터와 강당터, 회랑터, 목탑터 등지에서 모두 9점의 작은 금동불상이 출토되었다. 목탑터 동쪽에서 발견된 금동약사불입상은 화재를 입었는지 표면의 도금층이 벗겨지고 목 부분도 일부 파손되어 고개가 약간 뒤로 젖혀진 상태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法衣를 입고 오른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이 불상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원래는 발과 대좌가 없는 모습으로 발견되..

지역박물관 2009.07.19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 금동반가사유상 얼굴, 금동 불상들

경주박물관 미술관에는 전시된 다양한 금동 불상들이다. 황룡사에서 발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유명한 것 같고, 당시에 유행한 각종 불상들이 아주 작은 금동불상으로 많들어 졌다. 아마도 개인이 소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로자나불상 좌상, 반가사유상, 약사여래불 입상, 보살 입상 등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졌다. 삼국시대 백제, 신라 그리고 일본에서 유행했던 불상으로 보이는 반가사유상. 이 반가사유상은 섬세한 멋은 떨어지나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반가사유상의 머리. 경주의 황룡사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보살상의 얼굴은 머리의 보관은 앞부분이 조금 파손되었지만 단순한 형식의 삼산관이며 통통하게 살찐 둥근 얼굴은 두 눈을 지긋이 감은 듯하며 뺨을 팽창시켜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역박물관 2009.07.19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 석조불상들, 장창골 석조미륵삼존불

경주박물관 미술관에 전시작 유물들 중 석조 불상들이다. 많지는 않지만 경주 일대에서 발굴된 석조 불상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주로 경주 남산에서 발굴된 유물이 많은 것 같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남산 봉우리인 장창골에서 발굴된 석조미륵삼존불이 예술적가치가 풍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유행한 비로자나불, 약사여래, 보살 등의 입상, 좌상 들이 많아 보인다. 경주 남산골에서 발굴된 유물이 석조미륵삼존불이다. 석굴암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나름 예술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삼존불은 1925년 경주 남산의 북쪽 봉우리인 장창골의 한 석실(石室)에서 옮겨온 것으로, 입가에 머금은 천진난만한 미소 때문에 ‘애기부처’ 로도 불리운다. 애기 같은 ..

지역박물관 2009.07.19

국립경주박물관, 백률사 금동약사불 입상 (국보)

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국보로 지정된 백률사 금동 약사불 입상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크기나 형태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불상이다.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이 많다고 하며 생동감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백률사 금동 약사불 입상은 세련된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으나, 생동감이나 힘이 넘치는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은 많이 주지 못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백률사 약사불 입상. 1930년 경주 백률사에서 옮겨왔으며, 현재 광배와 두 손 및 대좌(臺座)를 잃었으며 표면 곳곳에 도금 자국이 남아 있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우게 되어있는데 그 위치로 보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처럼 약단지를 받들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크기와 주조 기법 그리고 조각수법과 신체비례..

지역박물관 2009.07.18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금석문실 - 화랑정신의 표현 '임신서기석', 남산신성 축조 기록 '남산신성비'

신란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현재까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각종 비석에 글자를 새겨서 업적을 남기고 있고, 그 기록 중에는 다양한 연도표시가 되어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진흥왕이 전국 각지에 남긴 순수비일 것이다. 경주 박물관에는 진흥황 순수비는 없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화랑정신을 새겨 놓은 임신서기석과 남산신성 축성 기록을 남겨 놓은 남산신성비이다. 비석 외에도 사리, 기와 등에서 한문으로 각종 기록을 남겨 놓고 있다. 신라 화랑에 대한 기록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임신서기석'이다. 자연석에 74자로 이루어진 글귀를 새겨 놓고 있는데 화랑정신의 실천을 다짐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34년 경주 석장동(錫杖洞)에서 발견된 것으로, 비석의 첫머리에「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

지역박물관 2009.07.18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 도깨비 기와

경주를 대표하는 상징 중의 하나인 '신라의 미소'로 불리기도 하는 경주 영묘사터에서 발굴된 얼굴무늬 수막새와 도깨비 기와를 포함한 각종 수막새와 다양한 기와들이 경주박물관 미술관 불교미술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신라의 기와는 획일화된 형태가 아니라 다양의 형태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경주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이자 유명한 경주빵 상표이기도 한 '신라인의 미소'를 잘 표현하고 있는 얼룩무늬 수막새이다. 간결하고 단순화되었으면서도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경주 영묘사터[靈廟寺址]에서 발견된 얼굴무늬수막새이다. 대개 둥근 수막새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는데, 이처럼 얼굴무늬가 표현된 것은 매우 독특한 경우이다. 수막새 뒷면에 반원형 수키와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실제로 건물에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지역박물관 2009.07.18

국립경주박물관 사천왕사 특별전 - 발굴 유물들

경주 사천왕사는 경주 시내와 불국사 사이 선덕여왕 능이 있는 낭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거대 사찰이었습니다. 황룡사, 불국사와 함께 통일신라 경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예술적인 미가 뛰어난 녹유사천왕상을 비롯하여 치미,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불상 등 다양의 형태의 소조상들이 새겨진 건물 파편들 벼루를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 사천왕사 창건에 관련된 각종 유래가 적혀있는 문헌들(사본) 사천왕사 창건의 주인공은 단연코 문무대왕과 명랑법사라 할 수 있습니다. 문무왕은 잘 알다시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으며, 죽으면서는 동해의 용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위대한 왕입니다. 이 문무대왕은 사천왕사가 있는 낭산과는..

지역박물관 2009.07.01

국립경주박물관 사천왕사특별전 - 기와, 수막새, 암막새, 치미 등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사천왕사 특별전에 전시되어 있는 경주 사천왕사에서 발굴된 유물들 중 사찰 건물을 구성하는 기와, 수막새, 치미이다.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기와, 수막새 등과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치미가 전시되어 있다. 치미가 있는 건물은 우리나라 사찰 건물에는 없고 일본 나라의 동대사에 가서 보면 본당 건물에 치미를 볼 수 있다. 사천왕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세운 사찰로 선덕여왕 능이 있는 언덕 아래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로 황룡사, 불국사와 더불어 통일신라 경주를 대표하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사찰 금당이나 궁궐 등 대형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치미. 장식적 기능이 강했던 구조물로 당나라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화마(火魔)를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

지역박물관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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