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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는 안압지가 있다면, 백제의 수도 부여에는 궁남지가 있다. 궁남지는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 무왕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담겨있다. 궁남지는 규모나 아름다움으로는 안압지에 못지 않고 호젓한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다. 안압지에 비해 왕궁건물 터 같은 인공적인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연못자체 만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 사비성의 별궁 연못으로 사적 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 무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여들였으며,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도교적인 사상이 반영된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조성한 전형적인 정원의 연못으로 비교적 이른 시지에 조성된 것으로 신라 임해전지를 비롯하여 후대 궁궐 정원 연못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유적이다. 신라의 임해전지와는 달리 주변에 우물과 주춧돌 등이 일부 남아 있으나 건물터나 석축 등은 궁궐의 형태를 보여주는 유적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연못 자체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여 궁남지 전경. 백제 당시의 궁궐 유적이나 유물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백제 왕궁 남쪽편 평야에 자리잡은 상당히 아름다운 연못이다.


궁남지 중앙에는 작은 섬이 있고 만든 다리를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연못과 함께 상당히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궁남지는 인공연못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연못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방지원의 사상을 반영하여 사각형의 연못 한가운데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삼신산을 꾸며놓고 있다.


궁남지 가운데 있는 정자인 포룡정(抱龍亭).


궁남지 연못에서 솟아오르는 분수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백제시대 이궁터로 알려진 궁남지 일대에는 아명을 서동이라 했던 무왕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사비시대에 왕궁 남쪽 못 가에는 궁궐에서 나와 혼자사는 여인이 궁남지의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백제 30대왕인 무왕 장이다.". 그의 어머니가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왕이거나 태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궁궐 밖의 생활이 궁핍하였으므로 생계유지를 위해 그는 마를 캐다 팔았다. 그래서 그의 아명이 서동이 되었던 것이다. 서동의 어머니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성으로 키웠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한 장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방, 궁중에서 한 노신이 찾아와 왕의 밀명을 전하였는데 신라의 서라벌에 잠입하여 국정을 탐지하라는 것이었다. 서동은 기꺼이 받아들여 마를 파는 상인으로 위장하여 신라에 잠입, 탐지활동을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신라 26대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 싹텄다. 그러나 서로는 국적과 신분이 달라 맺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알았다. 그러나 헤어질 수 었었던 두 사람은 지혜를 짜내 서동요를 만들어 퍼트리기로 다짐했다. 서동은 서라벌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마를 나누어주며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온 나라에 퍼져 나갔다. 결국 대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오해를 받게 된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랑 이야기이다. <출처:부여군청>


궁남지에는 다양하고 많은 연꽃을 심어놓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꽃 명소이기도 하다. 장마가 지나는 7월말이면 연꽃이 개화를 하여 장관을 이룬다.


연잎에 맺힌 물방울


활짝핀 하얀 백련


분홍빛의 홍련


노란빛이 황금련


상이집트의 상징인 수련


궁남지 전경


☞ 궁남지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동쪽에 당시의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출처:문화재청>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는 왕궁의 남쪽 별궁에 속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부른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무왕 35년(634)에“궁성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현재의 연못은 1965~67년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자연늪지의 1/3정도의 규모이다. 이 연못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무왕조(武王條)에 "3월에 궁성(宮城) 남쪽에 연못을 파고물을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의 사방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라고 되어 있다. 사실, 백제에서 왕궁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이미 한성시대(漢城時代)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한성시대에조영된 왕궁에 딸린 연못은 아직 발굴된 바 없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웅진(熊津)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산성(公山城) 안에서는 당시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되는 건물지(建物址)와 함께 발굴되었다.  공산성에서 발굴된 이연못은 바닥이 좁고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원형의 연못인데 직경 7.3m, 바닥직경 4.8m그리고 깊이 3m의 크기를 보이고 있다.  이로써 보면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성시대와 웅진시대의 연못은 그 자체만확인될 뿐 여기에서와 같은 삼신산(三神山)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처: 부여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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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 궁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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