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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대학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있다. 아마 당시 당쟁의 중심이 성균관 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웠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말을 잘안들어서인지 영조시대에도 탕평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당쟁이 해소되지는 못한것 같고, 결국 그것이 조선을 멸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영조가 세운 탕평비입니다. 《예기》 가운데 한 구절인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가 적혀 있습니다.

성균관 대학 입구에 있는 성균관 탕평비 뒷면에 적힌 글씨입니다.

성균관 탕평비 기단과 지붕입니다.

성균관 탕평비가 있는 누각은 성균관 대학 입구에 있습니다. 역사는 참 가까운 곳에 그 현장이 있습니다.

안내표지판

성균관 탕평비 앞에 있는 것이 하마비입니다. 당시에도 대학의 권위가 아주 높았던 것 같습니다.




1742년(영조 18) 영조가 자신의 탕평책을 알리고 붕당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하여 세운 비. 《예기》 가운데 한 구절인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를 친서하여 이 비에 새기도록 하여 성균관의 반수교(泮水橋) 위에 세웠다. 영조는 왕세제(王世弟) 때부터 붕당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였으므로 즉위 후 노론(老論)과 소론(小論) 등 각파의 인물을 고루 등용, 붕당 조정에 힘을 기울여 그 결과 어느 정도 탕평정국을 이룰 수 있었다. 탕평비는 이 성과에 대한 홍보와 열의를 과시하고 최고학부인 성균관 유생들에게 경계심을 주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다. <출처: 야후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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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동 |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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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펨께 2009.05.13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자의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지만 잘 되지않을때가 많이 있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