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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영산강 유역의 백제문화, 독무덤과 움무덤

younghwan 2010. 1. 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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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은 마한시대부터 토착세력이 발전한 곳으로 3세기 후반 ~ 4세기 초에 독널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였다고 한다. 독널은 금동관, 금동신 등 화려한 꾸미개와 무기가 출토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한 이후의 이지역 토착지배세력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은 나주 반남면을 중심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영산강 일대에 많은 곳에서 당시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전남 영암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영산강 유역의 독무덤에서 발굴되는 독널. 독널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널리 사용된 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한성 백제기에 영산강 유역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나주 반암면 신촌리고분.  나주 반암면 일대 신촌리, 대안리, 덕산리에 많은 고분들에서 독무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영산강 유역 독무덤에 출토된 유물

영산강 유역의 초기 부구묘들은 내부의 매장 주체시설이 움무덤에서 지상식의 대형 독무덤으로 변화하면서 거대한 분구를 갖추게 된다. 분구의 형태 도한 부정형에서 원형과 방형으로 점차 정형화되고, 지역적으로 영암 시종과 나주 반남면 일대에 집중된다. 이러한 분구의 정형화와 거대화 그리고 지역적인 집중화는 고분축조집단의 정치적 성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고대국가 체제의 권력자와 같은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거대 고분들은 지역적으로 독특한 문화내용을 보여 영산강 유역을 배경으로 한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이해되고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나주 용호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나주 용호무던 부근 다시면 복암리고분. 대표적인 영산강 이북 백제계 고분으로 고분 주위에 도랑을 파서 묘역의 범위를 구획해 놓고 있다.

원삼국시대 후기에서 삼국시대초기에 이르면 영산강 유역에서는 새로이 움무덤과 독무덤이 유행한다. 초기의 움무덤은 분구의 유무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곧 자연지형을 이용한 자연 분구나 장타원형, 고구마형 등 이형의 낮은 분구묘로 발전한다. 분구의 중심부에는 움무덤이 배치되고, 여기에 독무덤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하나의 분구 내에 여러개의 매장시설이 만들어지면서 비교적 넓은 범위에 유구가 분산되어 있다. 분구의 둘레에는 도랑을 파서 묘역의 범위를 구획해 주는 특징이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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