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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 발해의 건축, 문자, 대외교류

younghwan 2011. 6. 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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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는 당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당시 동아시아에서 큰 규모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당나라와 일본과 적극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발해는 세계적인 초피(담비가죽)의 생산지이다. 이 초피는 후대에 러시아가 연해주까지 동진했던 동기가 되었던 무역상품으로 당시 중국,일본,신라,서역 간의 교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품목이다. 이를 통해서 생긴 부의 결과로 발해는 상당한 수준의 건축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해는 말갈족가 같이 공존했던 다민족 국가이지만 수도인 상경 등지의 주거지 유적에서 고구려 계통의 난방 시설인 구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발해 관련 유물은 거의 없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은 역사를 소개하는 일관성과 교육적인 면을 고려하여 일본과 러시아에서 소장하고 있는 발해를 대표하는 유물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발해의 용머리. 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건물기단에 끼워 장식했던 것이라고 한다. 여러개가 출토되고 있으며 현재 북경 자금성 월대 배수구 역할을 하는 동물의 얼굴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옆에서 본 용머리


또다른 용머리



북경 자금성 태화전 월대의 짐승머리 배수구. 비슷한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 기단에 끼워 넣어 장식하였던 것으로 벽면에 튼튼하게 끼워질 수 있도록 뒷부분을 쐐기 모양으로 길게 깎아내고 고정하기 위한 홈을 팠다. 상경성을 비롯한 발해의 도성에서 몇 개가 출토되었지만 형태와 조각 기법은 모두 같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 날카로운 이빨, 툭 튀어나온 두 눈, 머리에서 귀 뒷부분까지 이어진 갈퀴 등이 어떤 악귀도 얼씬하지 못한 상스러운 용의 모습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짐승얼굴기와, 헤이룽장성 낭안시 상경성에서 출토된 유물로 일본 도쿄대 소장하고 있다. 유약을 발라 구운것으로 현재 중국 궁궐 건물의 잡상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기와에서 도깨비의 형상을 연상키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부리부리한 눈, 크게 벌린 입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와 길게 내민 혀, 벌름거리는 코 등 사납고 험상궂은 짐승얼굴을 형상화하였다. 여기에 짙푸른 녹색 유약까지 입혀서 더욱 기괴한 인상을 주고 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치미, 헤이룽장성 낭안시 상경용천부에 출토된 유물로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소장하고 있다. 발해를 대표하는 유물로 유약을 발라서 구워서 아주 튼튼해 보인다. 치미는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후 거의 없으졌으나, 일본.중국에는 치미가 있는 건물이 아직도 많다.


뒷쪽에서 본 치미. 발해는 유약을 발라 구운 치미를 사용했으며, 궁궐이 상당히 화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한 녹색의 유약이 발렸으며, 두 날개는 각각 17개의 돌을 선으로 새의 깃을 표현하였다. 날개와 몸통 사이에 7개의 구멍을 뚫고, 거기에 머리가 꽃모양으로 생긴 장식을 맞추어 넣었다.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면서 펼친 두 날개 사이로 주둥이를 쑥 내민 형상이 녹색유약과 잘 조화되어 전반적으로 힘 있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주춧돌 장식, 헤이룽장성 낭안시 상경성에서 출토된 유물로 일본 도쿄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운 진흙을 사용한 것으로 표면에 녹색 유약을 발랐다. 나무 기둥과 주춧돌이 만나는 부분에 씌워 기둥을 장식하는 한편, 기둥 밑이 썩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참조:국립중앙박물관>



발해의 벽돌


발해의 기와


발해 건축의 특징은 도성 안밖에 있던 궁전, 관청, 집, 사원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건축물들이 서로 어울려 도성을 이루고 있었다. 발해의 건물터에는 고구려를 비롯하여  한민족 특유의 난방시설인 구들이 있어서 발해의 건축 양식이 고구려의 건축 양식을 이어받았음을 보여준다. 발해 건물터에서 발견되는 잘 다듬은 주춧돌과 녹색 유약을 발라 구운 주춧돌 장식, 건물 기단에 놓인 용머리 상, 그리고 갖가지 화려한 무늬와 기와 등 건축 부재에는 발해 특유의 미감이 잘 나타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발해는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의 5경을 두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상경, 동경, 중경 등으로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겼는데, 상경에서 가장 오랬도동안 머물렀다. 발해의 도성은 평지에 네모지게 쌓은 외성을 두르고 그 안은 궁궐이 있는 궁궁성과 관청이 있는 황성으로 나뉘었다. 특히 상경성은 외성의 둘레가 무려 17km로 당시 동아시에서 당나라 장안성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발해 도성에서 발견되는 문자가 찍힌 기와, 도장처럼 한 글자만 찍혀 있다. 기호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성첩 사본. 일본 궁내청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다. 발해 중대성에서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의 필사본으로 발해와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발해와 일본간의 교류를 보여 주는 목간들, 나라현 헤이조경에서 출토되었으며 글씨 중에 '발해사','교역','맥인', 발해의 특산물인 '초피(담비가죽)' 등의 글자가 보여 발해와 일본이 활발히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는 당과 서로 견제하면서도 당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신라에는 발달된 문화를 전해 주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당시 발해와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는 목간과 외교문서 등이 확인되고 있다. 발해의 도성에서는 문자가 찍힌 기와도 발견되는데, 마치 도장처럼 한 글자만 찍혀 있으며, 기호와 비슷하여 뜻을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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